윤석열 대통령, 다음은 누구인가

2024-01-09 14:35:16 게재
『포스트 윤석열』 - 한동훈에서 김관영까지 / 황형준 저 / 인물과 사상사
모든 책이 유익한 것은 아니다. 읽어서 득이 되는 책이 있고 되레 해로운 (읽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정신을 어지럽히거나 사실과 다른 지식을 전달하는) 책이 있다.이 책은 나에겐 매우 해로운 책으로 기억될 게다. 

우선 매일 5시에 기상해 출근하는 월급쟁이를 새벽 3시까지 잠 못 자게 한 점이 그렇다. 독감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요즘, 면역력을 급격히 저하시켰다. 

두번째 해로움은 열패감 조장이다. 저자와 같은 직종, 책 속 다수 에피소드에 동석했던 사람으로서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이걸 어떻게 다 기억하고 기록했지?" 라는 못된 기분을 안겼다. 

무엇보다 해로운 점은 그토록 끊으려 애썼던 정치에 대한 관심을 한방에 되살렸다는 것이다. 이건 '용서'가 되지 않을 정도다.

■출간 즉시 정치판 달구는 책 속 일화들 = '포스트 윤석열' 제목부터 불경스럽다. 임기가 절반도 지나지 않은 대통령의 다음(포스트)을 논하다니. 더구나 소위 현 정부 역린에 해당하는 김건희 여사에 얽힌 숨은 에피소드라니. 제 정신인가.

그런데 책을 읽는 사이 깜짝 놀랄 일이 발생했다. 책에 소개된 일화가 벌써 정치 뉴스 한복판에 등장했다. 새해 첫날 모 신문 컬럼에는 2021년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의힘 입당을 권유하러 정치인들이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자택에 방문했을 때 김 여사가 "우리가 입당하면 저를 보호해 주실 수 있나요"라고 말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뉴스로 이 이야기를 처음 들은 사람도 놀랐겠지만 나는 이 책 속 저자가 전한 정치 예언이 너무 빨리 실현되는 것에 소름이 돋았다. 본문 259쪽 '이준석 편'에서 2003년 초 저자와 만난 이준석은 "내가 김건희 여사를 만나고 통화도 여러 차례 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건데 내년 총선 총선 과정에서 파동이 난다면 분명이 김 여사 때문일 것"이라고 얘기한다. 이준석은 '김 여사와 통화하고 문자 주고받고 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특히 대구 경북 등 내년에 영남 공천 노리는 사람들이 공천을 못 받으면 난리 칠 게 뻔하다는 의미다. 그런 사람만 100명이 넘는다. 그 경우 김 여사랑 주고받은 대화들이 다 공개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준석은 김여사가 코바나컨텐츠를 찾아간 자신에게 "우리가 입당하면 저를 지켜줄 수 있냐"고 물었다는 일화를 가감없이 전한다. 책을 읽은지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 책 속 일화가 뉴스가 되고 불경한(?) 예측이 실현되는 장면을 목도한 셈이다.

■대통령 윤석열, 다음은 누굴까 = 흔히 대통령 선거는 '미래'가 중심이고 국회의원 총선은 '현재'를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총선이 회고적·심판적 투표 성격을 가진다면 대선은 국가의 장래를 결정하는 미래지향적 선거라는 의미다. 그러면서 우리는 투표의 근거를 얻기 위해 무대에 오른 이들의 과거를 본다. 하지만 제대로 적힌 과거는 좀처럼 만날 수 없다. 기껏 장관직에 오르려는 이들의 부동산 취득 행적, 금융자산, 언론에 공개된 과거 발언 등을 맛보기 수준으로 접할 뿐이다. 이 책이 밤잠을 해치는 해로움의 핵심은 알려지지 않은 '그들'의 과거를 만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지금은 이대남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이준석이 과거엔 여성의 정치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비례대표 중 여성을 5대 5가 아닌 8대 2로 공천하자는 주장을 폈다는 것, 한동훈이 강릉 공군 제18전투비행단에서 군법무관으로 복무하던 시절에 소속 부대 영관급 간부를 혼자 인지 수사해 수뢰죄로 구속시킨 일, 오세훈이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섰던 초창기 당내 현역의원 아무도 그를 거들떠 보지 않았다는 것 등 여럿 모인 식사 자리에선 여간해선 들을 수 없는 숨은 이야기들이 곳곳에 담겨 있다. 과거는 때로 가려지긴 하지만 숨길 순 없다. 우리가 정치인들의 지난 시절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살아온, 걸어온 발자취를 통해 그들이 펼칠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라떼' 말고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과거. 책에 출연한 14명 모두에게서 쓸 만한 과거를 들춰내 이곳저곳에 심어 놨으니 나로선 피해갈 재간이 없다.

■"정치를 보호하는 방법은 정치를 공격하는 것 뿐" = 이 책 '포스트 윤석열'이 제공하는 해로움의 정수는 거리두기다. 언론계에는  '종군기자는 돼도 참전기자는 되지 말 것'이라는 유명한 격언이 있다. 하지만 한국 정치, 어쩌면 - 외국 신문·방송까지 다 들쳐보지는 못한다 - 세계 정치와 여론 동향의 가장 큰 문제는 '편향'과 '왜곡'이 아닌가 싶다. 팩트(fact)보다 초이스(choice)가 앞장선다. 사실을 알려하기보다 내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뉴스만 찾는다는 것이다. 지나친 편향은 현상과 사실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봐야 할 언론인들을 '참전'으로 이끈다. '언론은 중립'이라는 말을 믿는 시민은 적어도 한국에선 한명도 없는 것 같다. 누구나 누군가의 편을 들고 있다는 얘기다.

저자는 이 점에서 양쪽 모두에서 욕을 먹을 각오를 단단히 한 것으로 보인다. 누구는 명예훼손 수준의 뒷얘기를 썼고 누구에게는 정치하는 태도 좀 바꾸라고 말한다. 신문과 방송지상에서 보기 힘든 직언을 깊은 인터뷰와 치열한 기록으로 생산한 '정치 비평서'라는 외피(?)를 쓰고 마구 해댄다. 누군가의 편을 들지 않고 일반 독자, 평범한 정치 소비자 시각에서 직언을 해대니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진영 논리에 깊숙히 물들어 우리 편이 좋아할 이야기와 논리에 흠뻑 빠져 들고 있다'는 자신감이 사라진다. 또 해롭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상투적인 표현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이를테면 장대같은 비, 다사다난했던 한 해, 거장 화가 따위다.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라서가 아니라 아무런 자극을 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거다. 상투적 표현과 언어가 우리 생각의 범위를 한정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 '포·윤'(MZ세대 유행따라 제목 줄이기 한번 해봤다)의 저자는  포스트 윤석열을 꿈꾸는 정치인들이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쳐 어떤 계기로 정치를 시작했는지, 정치 입문 뒤엔 어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거쳤는지, 그리고 그들의 덜 알려진 과거사를 통해 그들이 지향하는 정치의 지향점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저자가 이처럼 지난한 과정을 통해 정치와 정치인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들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달라졌으면 하는 바램에서"다. 그것이 관심 혹은 비판이든 응원이든 감시든 우리가 시선을 떼는 순간, 그들이 펴는 정치가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려는 시도 앞에 속수무책인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프루스트. 그는 상투적 표현과 뻔한 이야기들이 우리 생각을 한정 짓는 걸 막기 위해 "언어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언어를 공격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종전이 아닌 참전, 그를 위한 진영으로부터의 거리 두기, 책에 소개한 여러 인사들에게 칭찬은커녕 전화 테러를 받았을 정도로 감춤없이 솔직한 일화를 전한 것 등. 정치를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저자는 요새 언론에서 찾기 힘든 '납득할 수 있는 공격'을 택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프루스트의 말을 이렇게 바꿔도 통하는 건 아닐까. "정치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정치를 공격하는 것이다"라고.

명색이 서평을 쓰면서 해로운 점만 써댄 게 미안해 미덕 하나 소개하고 넘어가야겠다. 정치에 관심이 있든 없든 누구나 관심 있는 이야기.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될 것 같냐고? 책에 소개된 14명은 물론이고 미처 소개 못한 사람을 포함해서? 필자 뇌피셜 이 책의 유일한 장점(?)은 이 책을 보면 그가 누구일지 어렴풋이 보인다는 점이다. 본문 207쪽에 나온 박지원의 너스레처럼 모두가 "Next is me"를 외치지만 '포스트 윤석열' 속에 'Next 윤석열'을 발견할 실마리가 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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