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발' 전 정부 수사 또 '제동'

2024-01-10 11:05:51 게재

'월성 원전 감사방해' 산업부 공무원들 2심서 '무죄'

법원 "감사 적법절차 안 지켜" … 수사 차질 예상

감사원 감사에서 시작된 문재인정부를 겨냥한 검찰 수사가 법원에서 또 제동이 걸렸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고등법원 형사3부(김병식 부장판사)는 전날 감사원법 위반과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방실침입 혐의로 기소된 전직 산업통상자원부 국장 A씨와 과장 B씨, 서기관 C씨에게 징역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감사원은 월성 원전 의혹에 대해 감사를 진행해 월성 1호기 원전을 부당하게 조기폐쇄 및 가동중단하게 한 혐의로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등을 수사의뢰하고 A씨 등 전 산업부 직원 3명에 대해선 자료 삭제 등 감사방해 행위를 했다며 징계를 요청한 바 있다. 이에 검찰은 감사원 감사 결과를 토대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해 백 전 장관 등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하고 A씨 등에 대해서도 감사원 감사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A와 B씨에게는 감사원의 자료 제출 요구 직전인 2019년 11월쯤 월성 원전 관련 자료 삭제를 지시하거나 묵인·방조한 혐의가, 부하직원인 C씨에게는 같은 해 12월 2일 감사원 감사관과 면담이 잡히자 일요일인 전날 오후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사무실에 들어가 관련자료 530건을 지운 혐의가 각각 적용됐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로 인해 감사 기간이 예상했던 것보다 7개월가량 지연되는 등 감사원 감사가 방해받았다고 판단하고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B씨와 C씨에게는 각각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다만 방실침입 혐의에 대해선 담당 직원이 C씨에게 PC비밀번호 등을 알려준 점을 고려하면 사무실 출입 권한이 있었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1심 선고에서 유죄를 받은 후 지난해 6월 산업부로부터 해임 징계를 받고 퇴사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자료는 담당 공무원이 개별적으로 보관한 내용으로 공용전자기록 손상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공공기록물에 해당하는 중요 문서는 문서관리 등록 시스템에 등록돼 있고 상당수 파일은 다른 공무원의 컴퓨터에도 저장돼 있어 손상죄 객체가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오히려 감사원 감사과정의 문제를 지적했다. 재판부는 "법령에서 정한 절차에 따른 감사활동으로 보기 어렵고, 디지털 포렌식 또한 적법하게 실시되지 않은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면서 감사원법 위반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히려 "감사 지연은 감사원의 부실한 업무 처리로 인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며 피고인들의 행위로 인해 감사 방해의 위험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감사원법에 따르면 감사를 방해한 경우 모두를 처벌 대상으로 하고 있어 감사원법 위반죄가 광범위하게 적용될 우려가 있는 만큼 범죄 구성요건을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실침입 혐의에 대해선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로 판단했다.

당초 검찰은 이들이 백 전 장관, 채 전 비서관,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윗선 지시에 따른 위법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자료 삭제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봤다.

하지만 1심 판결과 달리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됨에 따라 월성 원전 중단 과정에서의 윗선 지시나 개입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검찰 수사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가격 등 통계조작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도 핵심 피의자 신병확보에 실패하면서 타격을 입었다. 검찰은 문재인정부에서 각각 국토교통부 1차관과 주택토지실장으로 근무하면서 산하기관인 한국부동산원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해 통계수치를 조작하게 한 혐의로 윤성원 전 차관과 이문기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8일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역시 감사원의 요청으로 시작됐다. 감사원은 지난해 문재인정부 청와대와 국토부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최소 94차례 이상 한국부동산원으로 하여금 통계수치를 조작하게 했다며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등 22명을 수사의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지난해 10월 통계청과 한국부동산원, 국토부 등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를 벌여왔다. 검찰이 통계조작 의혹 관련자에 대한 신병 확보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법원이 영장을 기각함에 따라 핵심 실무책임자를 구속한 후 윗선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려던 검찰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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