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정비사업 현장 공사비 분쟁 '시끌'

2024-01-11 00:00:01 게재

원자재·금융비용 상승 등으로 곳곳 갈등

재개발·재건축 지연, 주택 공급물량 차질

서울의 재개발·재건축 현장이 공사비 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불안한 국제정세로 급등한 원자재 가격, 금융비용 인상 등이 원인이다.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은 신규 택지가 부족한 서울에서 사실상 유일한 주공급 방안인 만큼 주택공급 물량 확보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1일 내일신문 취재에 따르면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 현장 가운데 공사비 갈등을 빚고 있는 곳은 현재까지 26곳에 달한다. 갈등이 진행 중인 곳만 9곳이며 17곳은 서울시와 자치구가 개입해 갈등을 조정한 뒤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공사비 분쟁은 시공사가 치솟은 공사비 때문에 조합과 계약한 기존 금액으로는 더 이상 공사를 할 수 없다고 손을 들었을 때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시가 나서 인상분을 조정, 공사가 멈추지 않도록 양쪽을 조율하지만 추가 인상 요인, 분담금 인상으로 인한 조합 내 불만 등이 남아 있기 때문에 갈등이 완전히 봉합됐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한다. 조정 후 모니터링에 들어간 17곳도 안심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서울 주요 정비사업 현장은 전국의 눈길이 모이는 곳이다. 초대형 정비사업 단지 사례는 전국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강동구 둔촌 주공 사태가 대표적이다. 추가된 공사비로 인해 조합원들의 분담금이 1조원까지 늘어났다. 공사가 멈출 경우 양쪽 모두에 천문학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일단 갈등은 봉합됐다.

◆시공사 선정 불발된 곳도 = 갈등은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는 조합이 기존 시공사인 GS건설을 내보내고 새 시공사를 찾고 있다. 지난해 1월 선정했지만 새로 들어선 조합(비상대책위원회)이 기존 사업추진 체계를 모두 뒤바꿨다. GS건설이 책정한 공사비가 과도하고 공사 기간이 길다며 조합원을 설득했고 결국 토지 소유주 전체 회의에서 기존 집행부 전원 해임과 시공사 선정 취소 안건이 과반수 동의를 얻어 통과됐다.

지난 2일 공사비 미지급으로 공사가 중단된 서울 은평구 대조동 대조1구역 주택재개발 현장 입구에 공사 중단 안내문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송파구 잠실 진주아파트에선 시공사(삼성물산·HDC현대산업개발)가 조합측에 1평(3.3㎡)당 공사비를 660만원에서 889만원으로 올려야 한다는 입장문을 보냈다. 조합원들은 인상 금액이 지나치게 많다며 반발했고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검증을 위해 시공사측이 제시한 금액을 확정 짓는 안건이 지난달 총회에 상정됐는데 과반수가 반대해 부결됐다.

공사비 갈등은커녕 아예 시공사를 구하지 못하는 곳도 있다. 동작구 노량진1구역 재개발 조합은 지난해 11월 시공사 선정 입찰을 진행했지만 참여 건설사가 전무했다. 조합이 제시한 평당 공사비(3.3㎡당 730만원)에 선뜻 나선 건설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사비 갈등과 이에 따른 주택공급 차질이 예상되자 서울시와 정부가 진화에 나섰다. 시는 지난해 12월 28일 '공공지원 정비사업 시공자 선정 기준'을 개정했다. 최초 사업시행계획인가 시점에 공사비 검증기관에 검증 요청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전담했던 공사비 검증에 서울주택도시공사(SH)도 참여하도록 했다.

정부는 10일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민과 함께 하는 민생토론회'에서 공사비 조정과 분쟁 예방을 위한 표준계약서를 배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공사비 산출내역과 공사비 조정 가능 시기 등을 규정해 무분별한 공사비 인상을 방지한다는 구상이다. 이와 함께 지자체 도시분쟁조정위의 조정에 확정판결과 같은 재판상 화해 효력을 부여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대법원 최종판결 같은 효력을 지녀 이의신청을 할 수 없다.

양지연 R&C연구소장은 "미분양을 걱정하는 조합 입장에선 공사비 인상을 마냥 동의하기 어렵고 집값 하락 국면에선 더욱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며 "건설현장을 둘러싼 위기요인은 갈수록 커질 수 밖에 없는 만큼 민간에 지나치게 의존한 공급 구조에 변화를 줘서 공공주도로 질 높은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에 대한 모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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