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원회 풍경

한류 질주를 위해 노사가 합의점을 찾다

2024-01-12 10:58:34 게재
김은영 중앙노동위원회 조정과 사무관

"이젠 필요 없습니다. 2년간이나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회사는 노조를 무시한 채 자신들의 의견만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젠 파업으로서 노조의 힘을 보여 줄 수밖에 없습니다."

한 달여전 중앙노동위원회 조정회의장에는 쟁점사항에 대한 노사간의 대립으로 싸늘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사전조사 기간 동안 노조위원장은 2년간의 교섭에도 단협을 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분노와 함께 향후 투쟁에 대한 결연한 각오를 지속적으로 표출했다. "사측의 주장이 워낙 강경하니 조정을 통해서도 합의가 안될 것이다. 그냥 조정중지해달라"며 조정에 대한 기대감도 접은 상태였다. 조정위원회의 조정중지 결정이 있게 되면 노조는 쟁의행위권을 확보하게 되고 결국 노사는 극한 대립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사측 대표는 "회사가 외부기관 평가에 따라 등급이 결정되고 있어 노조의 요구사항을 마냥 들어줄 수는 있는 상황이 못 된다"고 하소연을 하면서도 적절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음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쟁점사항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한 조정위원회(위원회)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됐다.

조정회의를 하면서 위원회는 노사관계가 지금보다 더 악화가 된다면, 건국 이래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한류 산업이 치명타를 입을 것이고 그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매우 클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노사가 위원회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음에도 노사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고심에 고심을 했다. 그러나 해결책은 요원했다.

2년간 교섭했지만 단체협약 체결 못해

조정회의 마지막날, 노사 모두 "어차피 합의는 안 될 것이니까 빨리 조정회의를 끝내달라"고 위원회에 요구를 하면서 회의장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위원회는 마지막 전략회의를 가졌다. 그리고는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단초를 찾았다. 회사는 어려운 근무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맡은 역할을 수행해 왔지만 그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근로자들의 어려움을 알고 있었다. 노조도 조합원의 근로조건을 무조건 향상시켜 줄 수 없는 사측의 현실적인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위원회는 거기에서 해결책을 찾기로 했다.

조정회의 막바지에 합의점이 도출될 듯하면서도 새로운 쟁점사항이 대두되고 다시 갈등 속에서 노사가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버릴 것 같은 분위기가 2시간 이상 계속됐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살얼음을 걷는 듯한 쉽지 않는 순간들을 넘기고 나니 저 멀리서 합의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조정회의 7시간 만에 합의점을 찾았다.

감동의 순간이었다. 치열하게 대립했던 노사가 조정회의를 통해 상생의 첫 단추를 끼운 만큼 계속해서 더불어 상생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해보기를 기대해 본다.

협약을 체결한 이후 회의장을 나가면서 서로 간에 주고받은 젊은 노조위원장과 사측 교섭위원의 뒷담화는 지금도 뇌리에 잔잔하게 남아 있다.

살얼음 위를 걷는 7시간 조정 끝에 합의

"노사 간의 입장 차이가 너무 커서 합의점이 도출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위원들이 이렇게 장시간 동안 해결책을 찾기 위해 같이 고민해 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조정위원회는 근로자 대표, 사용자 대표, 공익위원으로 구성돼있다. 조정회의 때마다 위원들은 노사가 상생할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를 찾기 위해 전략회의를 하고 노사 개별면담도 진행하게 된다. 개별면담을 통해서는 노사의 입장을 듣고 설득하고 전략을 수정해주는 등의 다양한 과정을 통해 노사 각각에게 새로운 수정안을 탄생시킨다.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수정안을 가지고 노사간에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도록 토대도 마련해주고 있다.

노동위원회 역사는 상당히 깊다. 노동위원회법은 6.25 전쟁 중인 1953년 3월 8일 임시수도 부산에서 통과되면서 1954년 2월 20일에 중앙노동위원회가 설립됐다. 우리나라는 민법과 상법보다 노동법이 먼저 제정됐고 노동법 중에서도 노동위원회법이 근로기준법에 앞섰다.

올해가 중노위 설립 70주년이 되는 해다. 노동위원회는 금년도 사업으로 분쟁 해결 전문가 양성을 위한 K-ADR 스쿨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협상, 의사소통, 화해 및 조정 분야와 노동법의 단계별 교육과정을 설계해 내실있는 운영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현행법상 본 조정기간이 10일∼15일로 매우 짧다는 점을 고려해 사전 조정 및 사후 조정도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