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칼럼

행동주의와 지속가능한 사회혁신

2024-01-16 11:29:51 게재
김종대 인하대 녹색금융대학원 주임교수, 지속가능경영연구소 ESG 센터장

뉴욕시립대 교수인 바르가바(Bhargava)와 루스(Luce)가 최근 발간한 저서 '현실적 급진주의자(Practical Radicalists)'는 새로운 행동주의자(activists) 세대의 사회변혁 길잡이가 될 진보주의의 역사와 이론,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급진주의는 기존 체제를 비판하면서 현존하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이념이지만 이 책은 이념보다는 사례를 이용해 현실사회 및 경제문제 해결을 위한 전략을 제시함으로써 행동주의 운동가들뿐 아니라 비즈니스, 군대, 정치 엘리트들이 조직 내 갈등을 극복하고 사회진보를 추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15달러 투쟁'이나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화석연료 종식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구하는 '350.org' 같은 조직의 활동을 사례로 설명한다.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저자들은 성공전략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첫째, 사회적 약자가 수적인 우위를 활용해 노조, 지역사회 연합 등을 조직한 기초구축(base building)에서 시작한다.

둘째, 자신들의 운동의 의미를 잘 표현하는 서사의 변화(narrative shift)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면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은 '1% 대 99%'라는 슬로건으로 운동의 배경과 목적을 대중에게 어필했다.

셋째, 키스톤 XL 파이프라인 반대를 위해 오바마 시절 백악관 앞에서 시위와 체포를 계획한 경우처럼 모멘텀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키스톤 프로젝트는 2008년 캐나다의 TC 에너지사가 타르 샌드오일을 파이프라인을 통해 미국에 공급하려는 계획으로 2021년 폐기됐다.

ESG 투자도 행동주의 관점에서 설명

넷째, 미국 자동차노조(UAW)와 같은 엄청난 힘을 가진 조직과 달리 스타벅스, 아마존과 드레이드 조 등은 노조 결성 후 최초 노사협의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심지어 테슬라는 일론 머스크의 반대로 노조 설립도 못하고 있다. 저자들은 다른 형태의 연합체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공동의 힘을 합쳐 거대 기업의 힘을 이길 수 있는 노조와 비노조 구성원 연합체가 지역사회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사회변혁을 위해 선거가 중요하며 특히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위해 조직적인 접근을 강조한다. 선거 참여 독려만으로 부족하고 다수를 이루는 진보적 유권자들이 중요시하는 사회적 이슈를 위해 여러 사회 조직과 함께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커뮤니티 중심 접근법이 중요하다.

ESG 투자도 투자자 행동주의의 흐름에서 설명될 수 있다. 최근 ESG 투자자들이 경영에 관한 사항을 요구하는 경영관여(engagement)가 증가했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전문적 행동주의 투자자와 달리 사회적 행동주의 투자자는 환경 및 사회적 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지속가능경영을 요구하는 이해관계자가 늘어 양자 구분이 애매해졌다. 이익 추구가 최상의 목적인 보수적인 투자자 그룹이 지속가능한 사회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흐름에 발빠르게 전략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배구조, 환경 및 사회성과를 요구하는 것이다.

급진주의 이념은 진보주의 사고와 본질을 공유한다. 급진주의가 실용주의를 만나면 현실적 진보주의가 된다. 마찬가지로 극우주의가 합리성을 가지면 보수주의와 다를 바 없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극단주의(extremism)이지 진보주의나 보수주의가 아니다. 진보와 보수는 사회발전과 경제성장을 이끌어가는 두 바퀴다. 어느 한쪽이 합리적 경계를 넘어 극단으로 치달으면 사회는 불안정해지고 사회적 동요 또는 쿠데타적 변화로 엄청난 사회비용을 발생시킨다.

기회주의적 정치인 학자 언론 등이 의도적 이념 강화로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며 자신의 야망을 추구하는 동안 공정한 언론과 학계, 심지어 산업계마저 건전한 비판과 대안 제시 능력을 잃어간다. 우리나라에서도 극우정치인 검찰 고위관료, 그리고 이념을 제공하는 뉴라이트와 같은 세력들이 극단적인 우파 이념을 소환해 국가의 지속가능한 성장잠재력을 훼손하고 사회적 불안정과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사회발전 위한 회복탄력적 파괴 필요

슘페터는 기업가의 혁신적 활동으로 인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라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회발전을 위해서는 회복탄력적 파괴(resilient disruption) 과정이 필요하다. 비생산적이고 반민주적인 기존 사회체제나 정권을 변화시키기 위해 파괴 또는 붕괴의 과정을 거치되 사후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보장하는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는 합법적으로 국민을 대표해 통치와 입법활동을 하지만 국민은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정치권력을 탄핵과 선거란 절차를 통해서 붕괴시킬 기본권을 가진다. 다만 탄핵의 경우에도 사회적 합의와 회복탄력성 확보를 전제로 사회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김종대 인하대 녹색금융대학원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