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제도권 진입

현물 ETF 상장·거래 … 투자가능 자산군으로 자리매김 시작

2024-01-16 11:18:31 게재

기술혁신 사이클에 대한 시장 신뢰도 강화 … 여러 산업 새로운 사업 창출 기회로 활용

회계문제 해결되며 기관투자자 매수세 유입 … 국내 제도 7년 전 머물러 투자자들 '혼란'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상장 거래되면서 자산배분을 위한 투자가능 자산군으로 자리매김을 시작했다. 미 정부차원에서 비트코인을 제도권 자산으로 인정한 배경에는 기술혁신 사이클에 대한 시장 신뢰도 강화가 있다.


암호화폐 등 가상자산은 여러 산업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 기회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서는 그동안 규제 및 회계 처리 문제로 비트코인을 담지 못했던 기관투자자들의 매수세가 대거 유입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암호화폐 접근성 높아져 =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10일 미국 SEC(증권거래위원회)는 비트코인 현물 ETF 11개를 공식 승인했다. SEC는 승인 과정에서 감시-공유 계약 등 코인거래소에 대한 직간업적 규제 권한을 획득하면서 암호화폐의 제도권 진입이 가시화됐다. 다음 날 뉴욕증시에서 11개 ETF는 바로 상장, 거래를 시작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는 투자자가 코인베이스와 같은 암호화폐 거래 플랫폼에 계좌를 열거나 디지털 지갑 없이 손쉽게 증권시장에서 매매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또한 현물 비트코인 ETF의 승인은 선물 투자와 관련된 비용을 줄이고 규제되지 않은 거래소를 통한 매매 위험을 낮추기 때문에 암호화폐 자산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진 장점이 있다.

증권가 전문가들은 암호화폐 관련 시장 성장을 기대했다. 조수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암호화폐를 비롯한 가상자산은 여러 산업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 기회로 활용될 공산이 크다"며 "한국은행도 올해 디지털화폐(CBDC) 모의 테스트 추진 계획을 공표한 바 있다"고 말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정책 당국이 비트코인을 제도권 자산으로 인정하는 배경에는 비트코인으로 대변하는 가상화폐가 각종 기술혁신 사이클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며 "미 금융당국은 기술혁신 흐름을 지원하기 위해 비트코인 제도권 편입을 인정하는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연구원은 또 "이는 기술주 랠리를 재차 자극할 요소가 있다"며 "금융시장은 물론 매그니피센트7 등 시장의 기술혁신 사이클에 관심을 한층 제고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수수료 인하경쟁 치열 = 제도권 자본시장에 공식적으로 들어온 비트코인 현물 ETF는 거래 첫날 46억달러(약 6조원) 넘게 거래됐다.

거래량 1위를 기록한 비트코인 현물 ETF는 그레이스케일의 비트코인이었다. GBTC의 하루 거래액은 23억달러 가량으로 집계됐다. 시장 전문가들은 기존 비트코인 현물 펀드를 ETF로 전환해 상장한 그레이스케일이 비트코인 현물 ETF 시장을 선점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보고 있다. 블랙록의 아이셰어스 비트코인 신탁도 10억달러 넘게 거래됐다.

비트와이즈 비트코인은 낮은 보수비용(0.20%)을 무기로 3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프랭클린템플턴이 보수비용을 0.19%로 낮춘 점, 인지도 등을 고려할 때 순위가 변동될 가능성이 있다.

시장전문가들은 이번 현물 ETF 승인으로 그동안 규제 및 회계 처리 문제로 비트코인을 담지 못했던 기관들의 매수세가 유입될 것으로 기대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에 앞서 비트코인 현물 ETF를 출시한 유럽과 캐나다 사례를 통해 추산한 미국 비트코인 ETP 자산규모는 1년 내 320억달러에서 740억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초기 자금을 유치하기 위한 운용사들 간 수수료 경쟁이 치열해진 이유다.

◆현금정산 방식에 기관투자자 대거 참여 = 현물ETF는 선물 ETF와 달리 기초자산을 담아야 한다. 때문에 현물 ETF에 대한 수요 증가는 기초자산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킬 수 있다.

SEC는 비트코인 현물 ETF의 지정참가회사(AP)가 기존 보유 비트코인(현물)을 납입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시세 조정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현금 정산 방식을 요구했다. AP는 운용사에게 현금을 전달하고 운용사가 직접 기초자산(비트코인)을 매수해야 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AP는 ETF 설정과 해지를 중개하는 기관으로 기초자산 또는 현금을 운용사에게 넘기고 그에 상응하는 ETF 주식을 받아 시장에 유통하는 중간자 역할을 한다.

미국 IB들도 비트코인 현물 ETF의 지정참가회사(AP)로 참여할 수 있게 되어 향후 IB들의 참여가 증가할 가능성 높다.

임민호 신영증권 연구원은 "현물 ETF는 헤지펀드, 연기금, 독립투자자문사(RIA) 등 제도권의 대규모 자본의 유입 기회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여전한 변동성 … 투자 주의 = 하지만 이번 현물 ETF 승인이 비트코인의 즉각적 주류 자산군 편입을 의미하거나 투자자산으로서 비트코인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은 아니다. 이에 주의해야한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높다. SEC 겐슬러 위원장은 비트코인을 보유한 ETP에 국한됐으며 암호화폐 자체를 승인하거나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또한 여전히 암호화폐에 가치가 연계된 상품의 관련된 위험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조수민 연구원은 "투자자 입장에서 볼 때 비트코인에 투자하든 비트코인 현물 ETF에 투자하든 가격의 높은 변동성에 노출되는 부분은 변함 없다"며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이 암호화폐 자본시장 진입에 있어 이정표인 것은 맞지만 이후에도 비트코인이 투자자들에게 주된 투자 자산군으로 인정되기 까지는 관련 시장의 확대와 투자 안정성을 증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 이더리움 현물 ETF가 곧 등장할 수 있다는 예상에 급등하는 이더리움에 대해 주의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더리움 현물 ETF가 등장하는 것에 가장 큰 걸림돌은 이더리움이 증권인지 원자재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비트코인 거래 42%는 한국인 =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비트코인을 거래한 돈 중에서 우리 원화가 42.8%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를 할 수 없다. 관련법이 아직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증권사의 ETF 중개가 자본시장법상 위반 소지가 있다"며 "가상자산은 아직 자본시장법 상의 상품 범주에 포함돼있지 않아 이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TF 거래를 증권사가 중개하는 것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이 현물 ETF 중개에 대해 위법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기존에 거래하던 비트코인 선물 ETF까지 거래가 중단되는 등 시장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시 금융당국이 비트코인 선물 ETF에 대해서는 허용한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다시 거래는 재개됐지만 7년 전에 머물러 있는 국내 가상자산제도로 투자자들은 혼란을 겪는 중이다.

투자자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시스템"이라며 "비트코인 실물은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으면서 ETF는 투자는 불가능하다는 건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또 국내 증권사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캐나다와 독일 거래소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를 중개해오고 있었다.

국내시장에서는 오는 7월 가상자산 거래자의 예치금을 보호하고 시세 조종을 예방하기 위해 제정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법)'이 시행될 예정이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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