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례 칼럼

선거와 전쟁의 그늘

2024-01-17 11:39:27 게재
차미례 언론인·번역가

지난주 가자지구 휴전을 논의하기 위한 유엔총회의 회의장에 유엔주재 이스라엘 대사가 갑자기 하마스에 억류된 최연소 이스라엘 아기(납치당시 9개월)의 이름 크피르와 얼굴 사진이 든 생일케이크를 들고 연단에 올랐다. 케이크에는 1살을 의미하는 숫자 1과 "나를 집에 데려다 줘요"란 문구가 장식되어 있었다.

대사는 "이 아기가 당신들 아이라고 생각해보라. 수백년이 걸려도 아이를 데려오기 위한 싸움을 멈추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크피르여, 이 케이크는 너를 위한 것이며 이스라엘이 밤낮으로 싸우는 이유다"라고 목소리를 높여 가자 전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길라드 에르단 이스라엘 대사의 공들인 연출은 극적이긴 하나 지나쳤다. 크피르 아기의 생사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가자지구에서는 그 동안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9000명의 아이들이 죽었다. 게다가 매일 평균 10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한쪽 또는 양쪽 다리의 절단 수술을 받았고, 의약품 공급이 끊겨 대부분 마취 없이 수술을 받고 있다고 유니세프는 밝혔다(CNN).

유엔 긴급구호기구 현지 대표 등이 지속적으로 보고하는 가자지구의 엄청난 어린이와 민간인 학살 참상을 알고 있는 유엔총회 참석자들은 에르단 대사의 언행에 분노의 반응을 보였다. 그런 행동은 왜 나올까. 그건 이스라엘 아기는 소중하지만 2만3000명을 넘은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죽음이나 팔다리가 잘리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 작은 새떼처럼 죽어간 그 쪽 신생아나 조숙아들은 도무지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 편향된 정치적 렌즈 탓이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폭발 부상의 경우 사망할 가능성이 거의 7배 더 높다고 한다. 두개골이 완전히 형성되지 못했고 근육이 발달되지 않아 보호력이 떨어져 내부 장기가 파열될 가능성도 높다. 인도주의적 지원과 의약품공급을 위한 즉시 휴전이 시급한 이유다. 게다가 유니세프는 아이들이 심각한 식량부족과 물부족, 위생시설의 전무로 기아와 전염병 감염등 공중보건 재앙에 직면에 있다고 밝혔다. 과밀상태의 수용시설에서도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극심한 양자대립 양상 보이는 미국 대선

극단적인 양극화와 증오, "이기고 보자"는 격한 감정적 대립의 심화로 세계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미국 대통령 선거 상황도 마찬가지다.

15일 치러진 공화당의 아이오와주 코커스는 트럼프가 압도적인 과반의 51% 지지로 선거인단 40명 중 20명을 확보하며 승리했다.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21.2%,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가 19.1%로 뒤를 이었다. 4위의 최연소자 비벡 라마스와미는 후보를 사퇴하고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헤일리는 아이오와 코커스와 달리 당원 외에 일반 유권자도 투표할 수 있는 다음 경선지 뉴햄프셔의 프라이머리에선 승리를 자신한다.

유권자 통계 전문기구인 AP통신과 NOR연구센터가 공동수행한 AP보트캐스트(APVoteCast)의 코커스 참가자 예비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500명의 10명 중 9명은 미국정부의 운영방식과 법률시스템을 불신하며 개혁과 변화를 요구했다. 백인 인구가 90%가 넘는 이곳 지지율은 트럼프가 여전히 공화당 내 보수 백인층을 장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코커스 표심이 대선 전체의 지지성향을 확정하는 건 아니다. 국경장벽 등 트럼프의 이민정책을 지지하며 경제보다 이민문제를 미국의 부정적 요소로 여기는 비율이 높고, 국경뿐 아니라 전국의 이민 유입 제한을 원하는 당원들이 많아서 트럼프의 과격한 연설에 환호한다. 편향적이고 선거제도의 공정성을 믿지 않는 이들은 트럼프의 범죄혐의 수사와 기소에 대해서도 정치적 목적의 마녀사냥이라는 그의 주장을 추종한다. 선거제도의 공정성도 믿지 않고, 의사당 폭동 당시와 비슷한 반감을 유지하고 있어 앞으로도 격전이 예상된다.

전의만 불타는 한국 총선도 마찬가지

불안하긴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미래를 위한 비전은 없고 서로를 향한 비난과 조롱, 심지어 상대에 대한 격한 싸움의 의지만 난무한다. 혐오와 적대의 언어를 쏟아내기는 여야가 따로 없다.

여기에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이 지역을 순회하며 주민들에게 발표하는 내용은 아파트 재건축 안전진단을 면제하거나 재건축관련 규제를 확 풀어버리는 건 물론이고 국고가 휘청일 정도의 대형 사업이 많다. 시원하게 말은 할 수 있겠지만 시행하기엔 엄청난 문제가 많고 뒷감당은 누가 하나 걱정이 뒤따른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정부가 오랫동안 그 중심축이었던 각종 규제와 안전장치들을 인심좋게 단칼에 폐지하면 피해는 누가 입고 이득은 누가 취하게 될지, 급조된 약속들이 총선이 끝난 뒤까지 제대로 시행될 수나 있을지도 걱정이다. 북한의 전쟁 위협도 현실화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건국 이래 최대로 걱정이 많은 국민이 되었다.

차미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