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필수의료 의사 부족과 불균등한 배치가 핵심 문제다

2024-01-19 11:57:01 게재
조용균 가천대길병원 내과 교수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으뜸항은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의술을 행할 때 나의 능력 안에서(according to my ability and judgement) 환자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겠노라'이다(Corpus Hippocraticum). 이 선언은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2500년 전에는 매우 낯설었을 것이다.

선언 이전 시기에는 대부분의 고대인들이 그렇듯 신의 사랑을 잃는 것이 질병의 원인으로 간주되었다. 환자들은 오로지 자신의 종교적 사회적 책무를 다함으로써 치유를 기원할 수 있을 뿐이었다. 반면 히포크라테스와 그 추종자들은 질병은 자연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 치료법도 인체의 작동원리를 바탕으로 한 식이요법, 운동, 약초의 배합 등을 고안해냈다. 신의 요구를 따르는 것에서 인간의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는 치료법으로의 전환은 의학이 종교적 또는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자연적이고 개인적 문제로 바뀜을 의미한다.

이후 근세에 이를 때까지 히포크라테스학파는 질병의 면밀한 관찰을 통해 정확한 예후를 이해하고, 지킬 수 없는 치료 약속을 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환자의 몸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행위를 금지하고, 더 나아가서 의사와 환자 사이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사제, 정치인, 여타 권력자 그 누구도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도덕률을 확립했다. 환자 개인에 대한 헌신을 바탕으로 최고 수준의 환자-의사 신뢰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윤리적 기초를 세웠다.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말하는 진실

현대 의학은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자식이다. 20여년 전부터 우리는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를 배반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고 자조한다. 의사 증원을 반대하는 의료계의 집단휴진에 대해 3년 전 대통령이 청와대 회의에서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번째로 생각하겠노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히포크라테스가 머나먼 한국에서 국민과 의사 간의 불신을 조장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

자신의 능력 안에서 최선의 노력을 맹세한 의사의 직업적 사명은 질병 완치, 생명 연장, 삶의 질 향상, 돌봄(요양), 편안한 죽음이다. 일반적으로 앞의 둘은 시간의 연장, 나머지 사명들은 시간의 질과 연관되어 있다. 생명시간의 양과 질 모두 최대한을 요구하는 환자들 앞에서 '언제든지 최소한의 비용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때 환자의 이익은 실현될 것이다.

고대 그리스 문헌에 '위기(crisis)'를 처음으로 개념화한 사람들 중에 한명이 히포크라테스였다. 위기의 어원 'krino'는 '생사의 분수령 갈림길 판단' 같은 의학적 의미와 '전쟁할지 말지 결정한다'는 정치적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

생명의 위기를 치료하는 의사들은 요즘 이른바 '필수의료'직으로 불린다. 이 직업군에 속한 의사들은 가족 휴가 휴식 등 개인적 삶을 일정하게 포기해야 한다. 외상외과 이국종 교수의 푸념대로 팀 전체가 온몸을 던져 일해도 적자를 면하지 못해 병원에서 대접을 못받기도 한다. 아직 배우고 있는 과정의 전공의라도 전지전능한 치료를 하지 못하면 구속될 가능성이 있다.

세계적으로 희소한 이런 국가에서 흉부외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을 선택하지 않은 의사들에게 돌을 던질 이가 몇이나 될까 자문해보자. 윤리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의사들이 위험 대비 보상이 큰 직종을 선택하는 것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배신하는 행위는 아니다. 의사는 자신이 선택한 전공과목 내에서('나의 능력 안에서') 환자 개인의 이익을 실현할 뿐이다.

공공병원, 공중보건 인프라 투자 안해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며칠 후 정치권에 의사 증원문제가 다시 출현했다.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비해 인구당 낮은 의사 수와 높은 수익을 연결시켜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한다. 공급자 독점의 폐해가 있다는 단순한 논리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환자가 의료서비스 공급부족에 곤란을 겪는 것이 아니고 일부 지역에서 혹은 일부 응급상황에서 특정 전문의의 치료를 받기 어려운 것이 실상이다. 즉 필수의료 의사의 부족과 불균등한 배치가 문제의 핵심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이라는 것도 의사당 외래환자수는 OECD 평균의 3.7배, 입원환자를 반영하는 인구당 병상수는 OECD 평균의 3배 높은 점을 함께 봐야 한다. 한국 의사의 노동강도와 이에 수반되는 책임부담이 OECD 의사들에 비해 3배 이상이라는 의미다. 노동강도는 3배인데 임금이 평균을 넘는 정도라면 오히려 히포크라테스가 요구한 헌신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정부도 인정하듯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는 도입 초기부터 환자가 싸고 쉽게 의료서비스를 받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저보험료 저수가 체제다. 환자에게 최소한의 비용으로 치료를 제공하면서 자신의 경제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노동강도를 높이는 것이 선서를 배신하는 행위라 단정할 수는 없다. 환자의 불만족은 정부의 건강보험 지불체계와 같은 제도적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의 의사협회 지도부는 보험재정의 유지를 위해 필수의료를 푸대접하고 환자에게 꼭 필요한 약제를 수입하지 않는 보험공단이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실현을 방해하고 있다고 여길 수도 있다. 진료거부와 같은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전국민의료보험이 도입된 1989년 이후에 시작되었다.

실제로 그동안 정부는 공공병원이나 공중보건 인프라사업에 충분히 투자하지 않았다. 대신 건강보험을 고리로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민간의 의료자원과 기능에 대한 관리통제를 통해 의료의 공공성을 확보하려고 했다. 지난 50년간 공공의료기관의 비중이 40%에서 5%로 감소한 통계수치는 정부가 민간에 진 부채의 정도를 반영한다.

반면 의사는 환자의 몸에 집중해 치료법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지만 건강보험체제 아래서 환자를 둘러싼 사회에 적응하지 않고는 의사의 사명을 실현하기 불가능해진 시대가 됐다. 존경받는 의학자인 루돌프 비르효가 말한 '크게 보면 정치는 의술과 같은 것이다(Politics is nothing but medicine at a larger scale)'는 이제 '의술은 과학을 넘어 정치가 됐다'로 읽혀야 한다.

분열과 불신보다 문제의 경중 숙고해야

의사수를 증원하더라도 10년 이후에 효과가 발생하는 중장기 계획이다. 증원 여부와 상관없이 필수의료 부족이나 지역편중 문제는 계속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한국은 이보다 더 시급하고 명확히 예견되는 위기(crisis)의 징후들이 있다. 한국은 올해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국민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10여년 후에는 현재의 일본처럼 75세 이상의 후기고령자인구가 20%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0월에 발간된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의 법률이 유지되는 조건에서 국가 요양급여의 양대 축인 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각각 올해와 2년 후에 적자로 전환되며 결국 4년 후와 7년 후에는 두 재정의 누적 준비금마저 소진된다. 보험재정 고갈에 따른 의료서비스의 제한은 환자의 이익을 최선으로 여기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정면으로 배치한다.

필자는 양비론을 펴거나 어느 한편을 들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분열과 불신을 부추기기보다는 문제의 경중과 해결책의 완급을 숙고해야 한다. 만일 그런 성의도 없다면 의사들에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갱신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의사들도 시대에 뒤지는 과거의 선언에 얽매이지 말고 히포크라테스의 결기를 본받아 새로운 선언에 동의해야 할 것이다. '의술을 행할 때 국가의 허용범위 안에서(within the permitted limits of nation) 환자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겠노라'.

조용균 가천대길병원 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