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기업 파산 급증 … 2015년 이후 최고

2024-01-19 10:51:47 게재

가파른 금리 인상 여파 … 상업용 부동산 위험 커져

고금리 장기화로 글로벌 기업들의 디폴트(채무불이행)가 급증하는 가운데 특히 유로존 기업들의 파산 건수는 2015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증가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장기 저성장 국면이 지속되고 있는 유럽경제가 글로벌 경제권역 중 위기에 가장 취약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제금융센터가 18일 발표한 '유로존 기업 채무불이행 급증 배경 및 전망'에 따르면 2023년 유로존 기업의 파산 지수가 2019년 4분기 92.3에서 2023년 1분기 96.0, 2분기에는 101.4, 3분기 95.5로 팬데믹 이전을 초과했다. 이는 Bankruptcy Index 기준으로 2015년 이후 8년래 최고 수준이다.

기업여신 연체율 및 부도율도 증가했다. 기업여신의 3개월 미만 연체율은 2022년 3분기 0.27%에서 작년 3분기 0.33%으로 증가했다. 3개월 이상 미지급 상태인 부도율은 2022년 3분기 0.63%에서 작년엔 0.95%로 높아지는 등 기업여신에 대한 잠재부실 위험이 증대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장기 저성장 국면이 지속되고 있는 유럽경제가 글로벌 경제권역 중 위기에 가장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기간 적체된 구조적 문제로 침체를 겪던 유럽경제가 코로나19, 중국경기 둔화 및 글로벌 탈세계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글로벌산업 첨단화 등의 외부 요인과 맞물리며 리스크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특히 경기회복이 부진한 상황에서 가파른 금리 인상의 여파가 지속되면서 유로존 기업들의 금융비용은 증가하고 채무상환능력은 약화됐다.

유로존 예금취급기관의 기업대출 금리가 작년 1월 3.63%에서 11월 5.23%로 상승하면서 기업의 이자부담이 가중되는 가운데 신규 회사채 발행이 감소하고 은행의 기업대출태도 강화로 추가 자금조달이 제약되는 상황이다.

수익성 저하 및 이자비용 상승으로 유로존 기업들의 이자보상 배율은 2022년 2분기 12.0배에서 작년 2분기 9.3배로 하락하면 부채 수준이 높고 이자보상 배율이 낮은 기업들의 부채상환 능력은 떨어졌다.

이런 가운데 올해는 정부와 유럽 중앙은행 차원의 지원이 종료된다. 유럽연합은 2020년부터 작년까지 코로나19 피해, 에너지가격 급등, 금리인상 등으로 급증하는 기업의 비용을 경감시키기 위해 범유럽차원의 지원을 시행하면서 한시적으로는 파산이 줄어들면서 퇴출되지 못한 좀비 기업이 증가했다.

김예슬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유로존의 경우 올해부터 만기도래 부채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고금리가 지속될 경우 저신용기업의 부실이 확대되고 우량기업의 실적도 악화되면서 금융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석우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글로벌 경제의 주요 경제권역인 유럽의 저성장 장기화는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요인"이라며 "투자 기업의 리스크 관리 및 모니터링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유럽의 경기회복이 부진한 상황에서 가파른 금리 인상의 여파가 지속되면서 상업용 부동산 부문에서 가파른 가격 하락세가 나타나고 있어 2008년 이후 급속히 성장한 상업용 부동산 펀드 및 부동산 투자회사의 위험이 확대되고 있다. 이로 인한 다양한 파열음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유럽 내 고금리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부분은 상업용 부동산 부문이다. 공실률은 미국과 비교할 때 높지 않으나, 가격은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며, 거래규모는 급감한 상황이다. 은행부문의 상업용 부동산 익스포져 비중을 보면, 주요국 중 가장 높은 독일이 10% 수준이며, 나머지 주요국은 모두 8% 이내로 높지 않다. 또한, 대부분이 LTV 60% 이하의 선순위 채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과 앞에서 언급한 은행부문의 자본완충력을 고려할 때 상업용 부동산 부문의 문제가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가파르게 성장한 상업용 부동산 펀드와 부동산 투자회사에 미치는 영향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상업용 부동산 거래 구조 상 전체 투자금액의 50 ~ 60% 가량을 비교적 낮은 금리에 은행으로부터 차입하고, 나머지 투자금액을 중순위 대출, 우선주, 보통주 등으로 조달한다. 이들은 대부분 중후순위 채권 및 Equity 형태로 투자했기 때문에 가격하락 부분을 우선적으로 흡수해야 한다. 또 차환 시점에서 조달금리상승의 영향도 직접적으로 받게 된다. 차환에 실패할 경우엔 선순위 채권자의 채권 회수를 위한 저가 매각 과정에서 추가 손실을 입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미 오스트리아의 대형 부동산 투자회사 시그나그룹이 파산 신청을 했다. 이외 다수의 부동산 관련 회사에 디폴트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상업용 부동산 펀드의 환매 중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지속되면서 금융시장 내 긴장감을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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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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