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 구하려다 현재권력-미래권력 '공멸' 위기

2024-01-22 11:14:28 게재

총선 80일 앞두고 대통령-여당 비대위원장 '충돌' 초유사태

명품백 논란 '시각차' … "김 여사가 피해자" "국민 눈높이"

한, 사퇴하면 '수직 당정' 입증 … 버티면 '용산 리더십' 흔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윤석열정권의 '황태자' '2인자'로 불렸다. 당연히 윤 대통령을 이을 '미래권력' 1순위로 꼽혔다. 여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예상보다 빨리 한 위원장을 '여당 대표'로 내세우자,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숙명적 충돌'도 앞당겨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미래권력이 성공하려면 현재권력을 밟고 넘어가야 한다는 정치권 격언을 의식한 것이다.

윤 대통령,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 개회식 참석 |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강원 강릉시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 개회식을 응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피해자에게 사과하라고 하나" = 22일 여권은 현직 대통령과 여당 비대위원장의 충돌이란 사상초유의 사태에 직면해 있다. 2016년 청와대와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와의 갈등은 '비주류 대표'였다는 측면에서 이해가 됐지만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분신이나 다름 없다는 점에서 여권 내부의 충격이 큰 모습이다.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은 21일 한 위원장을 만나 사퇴를 요구했다고 여권 관계자들은 전했다. 윤 대통령이 밀어서 앉힌 한 위원장을 취임 한 달도 안돼 "나가라"고 통보한 것이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란을 놓고 김경율 비대위원과 일부 의원들이 김 여사의 사과를 촉구한 데 대해 한 위원장이 이를 제지하기는커녕 "국민이 걱정할 만한 부분이 있다"(18일)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19일)라며 동조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 게 용산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후문이다. 한 위원장은 김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를 직접 공개하면서 힘을 실어주기까지 했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장예찬 전 최고위원은 20일 유튜브를 통해 "김 여사는 사기 몰카 취재에 당한 피해자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들먹이면서, 딸의 효심을 이용한 파렴치한 범죄의 피해자다. 왜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피해자 보고 사과하라고 하나. 사과는 가해자가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장 전 최고위원의 주장에는 윤 대통령 부부의 상황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읽힌다. 김 여사는 명품백 논란의 피해자일 뿐인데, 한 위원장과 김 비대위원 등이 사과를 압박하는 건 "도저히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퇴 거부? 대통령실 재반격 가능성 = 대통령과 여당 비대위원장의 충돌 사태가 공개되자 여권에서는 "양쪽의 공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 요구대로 한 위원장이 사퇴할 경우 "수직적 당정이 새삼 확인됐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게 된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이준석 전 대표를 내몰았고 김기현 대표를 밀어서 대표에 앉혔다가 1년도 안돼 내쫓았다. 대통령실은 이번에는 취임한 지 한 달도 안된 비대위원장에게 다시 '해고'를 통보했다. 윤 대통령이 여당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모습이 되풀이되면 총선 민심이 '허수아비 여당'을 찍어줄 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여당의 총선 참패는 윤 대통령의 위기를 뜻한다. 한 위원장도 미래권력의 꿈을 접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한 위원장이 사퇴 요구를 거부해도 사태는 악화일로를 피하기 어렵다. 한 위원장은 22일"제가 사퇴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 제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안다"며 사퇴를 공개거부했다. 한 위원장이 사퇴를 거부한 데 이어 또다시 '국민 눈높이'를 앞세워 김 여사의 사과를 압박하면 대통령실이 재반격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임기가 3년 넘게 남은 마당에 윤 대통령이 여당 비대위원장의 '항명'을 좌시할 경우 '용산 리더십'이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이 재반격에 나서면 양측의 충돌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대통령과 여당 비대위원장의 충돌 사태를 보는 여권의 시각은 엇갈린다.

윤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뛰었던 여권 인사는 21일 "대통령을 공격해야 대권주자가 된다는 건 여의도의 망상에 불과하다. 한 위원장은 지금까지 윤 대통령에게 고분고분하면서 잘 지냈는데 이제와서 대통령을 공격한다? 그러면 배신자 프레임을 피할 수 없다. 둘 다 죽는다. 공멸이다. 한 위원장은 (명품백 논란을) 키워서는 안됐는데, 실수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수도권 인사는 윤 대통령 부부 책임론을 지적했다. 이 인사는 "명품백 논란을 놓고 (김 여사 본인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면 거기에 동의할 국민이 몇이나 되겠나. 그 논란은 윤 대통령 부부가 명백히 사과해야 할 문제다. 한 위원장은 국민 눈높이에서 그걸 전했을 뿐이다. 이 싸움은 민심을 업은 한 위원장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 부부가 상황 판단을 잘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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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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