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도로에서 죽어가는 미국인들의 비명

2024-01-23 11:43:05 게재
김찬송 위스콘신대

지난해 여름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항공 여행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보도했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 민간항공사에서 사고로 사망한 승객은 2명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36만5000명 이상의 미국인이 자동차가 유발한 사고로 사망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자동차사고로 인한 사망률 관련 보고서를 보면 미국은 최악의 국가 중 하나로 꼽혔다. 2021년 OECD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10만명당 교통사고 사망률은 12.9명으로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2000년에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던 벨기에 프랑스 스페인 체코는 코로나 이후 절반 아래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동안 미국 내의 교통사고 사망률도 감소했지만 그 폭이 크지 않았고, 오히려 다시 증가할 조짐이 보인다.

모순적이지만 교통량이 크게 줄었던 팬데믹 기간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비영리 단체인 미국안전위원회(NSC)의 추산에 따르면 2020년 자동차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4만2060명으로, 2019년 3만9107명보다 소폭 증가했다. 이러한 증가는 자동차 평균 주행거리가 전년 대비 13% 감소했음에도 발생했다. 거의 한세기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미국 자동차 사망률이다.

또한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의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에는 약 4만3000명의 미국인이 자동차사고로 사망했다. 지난해에도 1월부터 9월까지 이미 3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나, 2023년 자동차사고로 인한 총 사망자수는 4만명을 쉽게 넘길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우선 팬데믹이 미국인들의 운전습관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셧다운 기간 도로에 운행되던 차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교통혼잡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고, 미국인들은 쉽게 과속의 유혹에 빠지게 되었다. 2019년에 비해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거나 음주운전을 한 경우도 훨씬 더 많아졌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도 교통사고 증가

그러면 교통량이 다시 회복되어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음에도 이러한 급증세가 지속되고 악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팬데믹으로 인한 교통패턴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분명 현재의 전체적인 교통량은 2020년보다 늘었지만 팬데믹 이전과 비교하면 출퇴근 시간의 교통량이 크게 분산되었다. 즉 전체 교통량이 정상으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도로가 이전보다 덜 막히게 되었고, 운전속도는 빨라져 운전자와 보행자가 더 높은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팬데믹 기간 교통량이 거의 없을 때 추가로 넓게 건설되었거나 보수된 도로는 제한속도를 무시하고 매우 빠르게 운전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게다가 미국 시골 지역은 상대적으로 교통량이 적은 도로가 많아 과속운전을 부추기고, 이로 인해 교통사고 사망률이 도시 지역보다 훨씬 높은 독특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고속도로와 달리 시골의 고속도로는 시속 40~60마일(65~95㎞) 이상으로 달릴 수 있게 설계되어 있으면서도 중앙차로에 충돌사고를 줄여줄 수 있는 물리적 장벽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또한 미 고속도로안전협회의 연례보고서는 보행자들에게 노출된 위험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보행 중 자동차에 치여 사망하는 미국인의 수가 매우 증가했으며, 최근 교통사고 사망자 증가의 대부분을 보행자가 차지할 정도다.

2020년 이전에도 이미 보행자에게 위험한 도로환경이 조성되고 있었지만, 팬데믹으로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협회 조사결과 2022년 7508명의 보행자가 사망했는데 이는 7837명이 사망한 1981년 이후 가장 많은 보행자 사망자수다. 이미 직전 해인 2021년에는 7624명의 보행자가 사망했으며, 이는 6721명의 보행자가 사망한 전년 대비 13% 증가한 수치다. 2010년과 2021년 사이에 보행자 사망자가 무려 77% 증가했다.

자동차 중심 도로설계 자체의 문제

미국에서 인도를 걷는 것이 점점 더 위험해지는 몇가지 주요 요인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보행자를 배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도로설계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수십년 동안 정부와 도시 공학자들은 운전자들의 빠르고 편한 이동을 위해 넓은 다차선 간선도로를 설계하고 건설했다. 자동차 중심의 설계로 곳곳에 안전하지 않은 도로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추세는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통근자들을 위한 도로가 많은 도심에도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후 교통체증을 해결하기 위해 교통 설계 공학자들은 또 다시 도로를 넓히거나 차선을 추가하는 작업을 지속했지만, 다른 한편에서 지역 관료들은 상업지역 개발을 빈번하게 승인하고 있었다. 그 결과 인도와 차도가 불분명한 길이 상업지역 곳곳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상업지역 도로들은 보행자가 주변 상점에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했지만, 당시 공학자들은 초기 목표였던 자동차의 효율적 이동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보행자가 다녀야 하는 이 길은 자동차의 이동이 편하도록 넓게 설계되었고 시속 25마일(40㎞) 이상의 속도가 보장되었다. 유턴도 쉽게 허용되는 이러한 도로들은 자전거까지 다닐 수 있게 허용되면서 상황이 더 심각하게 되었다.

게다가 충분한 조명과 건널목 등 보행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인프라가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보행자 사망자 중 상당수가 야간에 사고를 당했다. 고속도로안전협회의 2021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보행자 사망 사고의 60.4%가 이런 류의 도로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보행자 사망자수 증가의 또 다른 주요 요인은 미국인들의 대형차 사랑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미국 소비자들은 점점 더 큰 SUV와 경트럭을 선호하고 있다. 크고 무거운 차량은 사각지대가 넓어 보행자,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더 치명적이다.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세단과 같은 소형차량은 전체 차량의 60%에서 약 40%로 감소했지만 SUV는 10%에서 30% 이상으로 급증했다. 2021년에는 트럭과 SUV가 신차 판매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점점 더 수익성이 높은 고급 차량 생산에 집중하면서 이러한 추세가 완화될 조짐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또한 제조업체와 정책 입안자들은 친환경적인 전기자동차를 장려하지만, 전기자동차는 가스 자동차보다 훨씬 더 무거워 사고 발생 시 치사율이 높다.

보행자 사망 줄일 정책 의지 안보여

교통안전 운동가들은 미 행정부의 보행자 사망을 줄이겠다는 목표는 허울뿐이고 정치인들은 정작 필요한 정책을 실행할 의지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연방정부가 대형차량이 보행자에게 더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수년 동안 알고 있었음에도 SUV와 트럭의 대형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피트 부티지지 교통부장관은 대형자동차에 세금을 물려 대형차량의 확산을 막기 위한 정책 입안을 거부한 바 있다. 그는 지난해 2월 인터뷰에서 차량 크기와 보행자 사망자수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와 관련된 새로운 정책을 입안할 계획이 없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교통안전 운동가들의 강력한 캠페인 끝에 마침내 미 도로교통안전국은 지난해 5월 유럽 규제당국이 오랫동안 해온 것처럼 차량 외부의 사람들에 대한 안전을 고려할 정책들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안전정책은 신차 안전 등급 시스템에는 적용되지 않아 여전히 보행자에게 치명적인 자동차를 판매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려면 얼마나 많은 교통사고 사상자가 발생해야 할까?" 미국 고속도로안전협회가 2022년 보고서에서 제기한 이 질문은 당분간 해결할 길이 요원해 보인다.

김찬송 위스콘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