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ELS, 불완전·사기 판매 공방 다시 불거져

2024-01-24 11:17:50 게재

상반기 만기 10조원 … 손실률 60%

손실 급증 … ETN 상장폐지로 확산

홍콩증시 추락으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 손실이 급증했다. 홍콩 증시 급락 여파는 상장지수증권(ETN)으로 확산되어 항셍테크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품이 조기에 청산되면서 국내 상장지수증권(ETN)의 상장폐지도 진행된다. 이런 가운데 최근 손실을 본 투자자들 중에는 90대 치매 노인과 중증 장애인도 있는 것으로 타나면서 ELS 불완전 판매, 사기 판매 공방이 다시 불거졌다. 투자자들은 은행의 불완전판매 행태를 제대로 조사할 것을 금융당국에 촉구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양정숙 의원은 23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홍콩 H지수 ELS 피해자, 금융 전문가 등과 함께 '금융소비자 보호에 취약한 한국금융의 과제와 대안 (ELS 사태 중심으로 )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 양정숙 의원실 제공


◆"이름만 적으세요" = 23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양정숙 무소속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금융소비자 보호에 취약한 한국금융의 과제와 대안(ELS 사태 중심으로) 토론회'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300여명의 투자자들이 몰렸다. 당초 예고했던 장소를 급하게 큰 회의실로 바꾸고도 앉을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많은 투자자들이 모여들었다.

금융정의연대,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와 함께 공동으로 개최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홍콩H지수ELS피해자 모임 길성주 대표를 비롯해 피해자 3명의 사례발표와 함께 금융기관의 법적 책임소재를 따져보고 업계와 당국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은행을 통해 투자했다는 투자자 A씨는 은행이 치매 초기 증상이 있는 90대 고령자인 자신의 아버지에게 ELS 상품을 판매했다고 주장했다. 글을 읽지 못하는 노모에게 서명 부분만 체크한 뒤 "이름만 적으세요"라고 말한 사례도 있었다.

이런 투자권유 사례에 대해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이후 정부가 고난도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투자자 보호 강화로 녹취 의무나 설명의무 등을 강화했지만,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며 실질적으로 투자자를 보호하지 못 했다"며 "결국 과거와 똑같은 사태가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애초에 은행에서 고위험·고난도 금융상품인 ELS 상품 판매를 허용한 게 큰 문제"라며 "금융당국은 판매사들의 현장검사를 통해 판매원칙에 대한 준수 여부를 철저히 조사하고 위법사항에 대해 CEO까지 강력히 제재하는 등 엄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주선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는 "ELS는 투자상품임에도 불구하고 예금성 상품, 나아가 보장성 상품처럼 표현해서 금융소비자보호법상의 취지와 목적을 완전히 무시했다"며 "금융소비자보호법상 설명 의무, 적합성 원칙, 적절성 원칙을 다 위반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양정숙 의원은 "금융사들이 소비자 보호대책에 소홀히 한 결과로 H지수 ELS 피해 사태가 발생했고 금감원은 뒷수습을 하면서도 우왕좌왕 허둥대고 있다"라며 "금융사와 금융당국은 사태 수습 방안과 재발 방지 대책,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2021년 2월 1만2000선이었던 홍콩 H지수 = 한편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홍콩H 관련 ELS 만기 상환 금액은 10조207억원에 달한다. 만기 시점에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수준을 밑돌면 원금 손실이 발생하는 ELS 상품 구조를 고려할 때 올 상반기(1∼6월) H지수가 2021년 상반기의 65∼70% 수준까지 상승해야 손실을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2021년 2월 1만2000선을 넘었다. 국내 판매된 H지수 ELS 대부분이 2021년 초에 집중돼 있다. 당시 홍콩증시가 계속 상승할 것이라 믿은 투자자들이 막차를 탄 것이었다.

홍콩 H지수 하락은 국내 투자자의 손실을 더욱 키울 것으로 예상된다. 홍콩 H지수 기반 ELS 만기 손실률이 일부 상품에선 17일 기준 56.1%를 기록하기도 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에서 판매된 홍콩 H지수 ELS에서 올해 들어 19일까지 2296억원의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

H지수가 반등해야만 H지수 ELS 손실률이 떨어지지만 전망은 어둡다. 미중 갈등 장기화, 중국 경기침체 등 호재보다 악재가 많아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내부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외국인 자금 흐름으로나 H지수가 돌아서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중국 증시 부양책 증시 반등 시킬까 의문 = 다행히 전일 중국 당국의 증시 부양책 기대감에 23일 홍콩H지수는 5140.93으로 전일대비 2.78% 상승했다.

국내 증시에서 홍콩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와 상장지수증권(ETN)도 오랜만에 큰 폭으로 반등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2조위안(373조원) 규모의 증시안정기금을 조성해 투입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금액은 국영기업을 통해 조달할 방침이며 이 밖에 3000억위안(56조원) 규모의 국가대표펀드를 설립해 주식 매입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증시 안정기금은 지도부의 승인이 이뤄질 경우 이번 주부터 투입될 전망이다.

다만 증시 전문가들은 당장 중국 증시가 반등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수현 KB증권 연구원은 "중국증시가 반등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증시 안정 기금 유입이 아닌 △전방위적인 정책 조합과 △경제지표 회복 △미국의 대중국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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