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필리핀이 대만해협 문제에 대응하는 태도

2024-01-26 11:49:47 게재
한동만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전 필리핀 대사

1월 13일 치러진 대만 총통선거에서 '친미 반중 독립' 성향의 라이칭더 민진당 후보가 제16대 총통으로 당선됐다. 동남아시아 국가 중 필리핀과 싱가포르가 친미·독립 성향 후보의 대만 총통 선거 승리를 축하하면서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충돌하고 있는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1월 15일 엑스(X, 옛 트위터)를 통해 "필리핀 국민을 대표해 라이칭더 당선자의 선출을 축하하고 앞으로 긴밀한 협력과 상호이익 심화, 평화조성 번영보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마르코스 대통령의 관련 발언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엄중히 위반했고 중국 내정에 대한 간섭"이라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중국의 반발에 필리핀 외교부는 "대통령 메시지는 필리핀 이주 노동자들을 받아준 대만에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라면서 "필리핀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한다는 점을 재차 확인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길버트 테오도르 필리핀 국방장관은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수준 낮고 저속한 언급으로 비열하게 우리 대통령과 필리핀 국민을 모욕했다"며 "대변인의 발언은 국격인데 우리는 물론 전세계가 중국에 더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양안 갈등, 필리핀 안보 위협하는 핵심 이슈

필리핀이 중국의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대만 총통 당선자에게 축하의 뜻을 표시했을까? 사실 1946년부터 1975년 6월 9일 이전까지 필리핀은 대만을 유일한 중국으로 인정했으나 1975년 이후 중국과 외교를 맺으면서 관계를 단절했다. 이후에도 필리핀과 대만은 여전히 많은 투자와 문화적 교류를 이어 나가고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 필리핀은 대만과 가장 인접해 있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가 있는 루손 섬에서 대만까지 거리는 300㎞, 최북단 섬에서는 190㎞도 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필리핀은 대만해협에서 고조되는 중국과 대만의 갈등을 안보를 위협하는 핵심 이슈로 꼽았다. 2023년 8월 16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필리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작성한 '국가안보정책 6개년(2023~2028년)'에는 "대만은 필리핀군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20만명이 넘는 필리핀인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대만해협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면 필리핀까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중국·대만의 관계는 필리핀의 주요 관심사"라고 밝혔다. 필리핀은 중국의 군사위협을 견제하고 유사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필리핀 북부 섬 4곳에 위치한 군기지 사용권을 미국에 허용했다.

둘째로 필리핀은 중국을 신뢰할만한 파트너로 간주할 수 없다고 본다. 2023년 초 마르코스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 남중국해 분쟁 지역에서 평화적 수단에 의한 해결 노력을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필리핀 선박에 대해 물대포를 발사하는 등 공격적인 입장을 취하자 불신이 가중됐다. 바이든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해 동맹국과 연대와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인식하고 필리핀과 동맹 관계 강화에도 협조적이라는 점도 필리핀 전략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전략적 요충지인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의 군사적 긴장은 우리에게도 심각한 도전 요인이다. 우리는 어떠한 전략적 사고와 태세를 갖추어야 하나?

첫째,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아세안 및 호주 등과 연대해 건설적인 중재외교를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다자차원에서는 아세안이 중심이 된 역내 주요 안보협의체인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에서 관련국가 간 신뢰회복, 예방외교, 분쟁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아세안 3원칙'이 이루어지도록 외교적인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

둘째, 양자차원에서는 한미동맹관계를 더욱 강화해 나가면서도 우리의 첫번째 교역국인 중국과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유지해야 하며, 우리의 여섯번째 교역 파트너이자 동아시아 안정의 주요 당사자인 대만과의 경제적·사회적 관계를 조화롭게 유지해나가는 실용외교를 전개해야 한다.

건설적 역할 할 수 있도록 외교역량 총동원

앞으로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문제 등 지역안정을 위해 급변하는 지정학적 지경학적 요인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필요하다. 또 외교와 경제안보 협력이 중층적으로 이루어져 역내 안정과 경제적 번영, 평화를 위해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우리의 복합외교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