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 10㎞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면

2024-01-26 11:39:34 게재

6600만년 전 팔레오세 '공룡 멸종' 원인 … 합천 '초계분지'도 운석 충돌구

남준기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 운영위원장

1998년 개봉한 영화 '딥 임팩트'(Deep Impact)는 같은 해 개봉한 '아마겟돈'과 종종 비교된다. 두 영화 모두 지구와 혜성의 충돌을 다룬 재난영화다. 아마겟돈이 상업성에 치중한 할리우드 스타일이라면, 딥 임팩트의 결말은 과학적이고 현실적이다. 딥 임팩트는 나사(NASA)가 진행하는 혜성 충돌 프로젝트를 뜻한다.

영화는 어느 소년이 지름 11㎞의 혜성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이 혜성을 관측한 결과 지구와 충돌해 생태계 대량 멸종을 초래할 것으로 예측됐다. 혜성은 '울프-비더만'으로 명명되고 인류는 이 혜성을 폭파할 메시아 프로젝트 실행에 들어간다.

미국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팀을 구성한다. 오리온 우주선이 발사되고 온갖 어려움을 뚫고 혜성에 착륙해 100m 지하에 핵폭탄을 묻는다. 그러나 핵폭탄 폭발 후 혜성은 두개로 쪼개져 계속 지구를 향해 돌진한다. 혜성을 요격하기 위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지만 이 작전도 실패한다.

결국 혜성의 작은 조각 '비더만'이 대서양에 충돌하고 미국 동부지역이 거대한 해일에 휩쓸린다.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해 메시아 호는 자폭을 선택한다. 대원들은 남은 핵탄두로 지구로 날아오는 거대한 혜성의 잔해 '울프'의 갈라진 틈새 사이로 뛰어든다. 우주선이 두번째 혜성 조각과 충돌한 후 핵폭탄이 터지고 혜성은 잘게 부서진다. 인류는 대량 멸종의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는다.

멕시코 북쪽 얕은 바다에 충돌

이 영화와 같은 소행성 충돌이 실제 지구에서 일어났다. 6600만년 전 백악기 말이다. 이 충돌로 백악기가 끝나고 팔레오세가 시작된다.

길이 10㎞가 넘는 거대한 암석 덩어리가 초당 수천m의 빠른 속도로 지구에 접근했다. 이 운석은 성층권을 통과하면서 불을 환하게 밝히더니 비스듬히 60도 각도로 바다에 내리꽂혔다. 충돌 지점은 멕시코 유카탄반도 북쪽 칙술루브의 얕은 바다였다.

그 충격으로 지각에 지름 100㎞가 넘는 타원형 구멍이 뚫렸고 뜨거운 마그마가 하늘로 솟구쳤다. 충돌 직후 하늘로 뿜어져나온 액체 상태의 마그마는 찬공기를 만나 시뻘건 돌구슬로 변했다. 뜨거운 돌구슬이 사흘 내내 우박처럼 쏟아졌다. 그 열기에 전세계 나무 2/3가 타버렸다. 태평양 건너 뉴질랜드의 산림까지 초토화됐다.

'텍타이트'라 불리는 이 검은 입자는 지구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런 과열된 물질이 대기권에서 갑작스러운 열펄스를 일으켰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온도가 수천도까지 올라가 지구 표면의 모든 것을 구워버렸다는 것이다. 공룡을 포함한 대형 육상동물은 그 열기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충격파도 컸다. 지구 반대편 인도양의 해령이 갈라지고 가까운 육지에서는 충격파가 생태계를 초토화했다. 100m가 넘는 초대형 쓰나미가 발생해 카리브해 전역의 생태계를 모두 파괴했다. 바닷물 속을 헤엄치던 생물들도 충격파로 대부분 멸종했다.

충돌 후 2년 이상 겨울 계속돼

운석이 뚫은 구멍 아래 묻혀있던 석유는 순식간에 불탔고 연기와 그을음이 지구 상공을 뒤덮었다. 영화 '애니매트릭스'에서 태양광을 쓰는 기계문명을 말살하기 위해 인간들이 성층권에 탄소 검댕을 뿌린 것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어둠은 2년 이상 지속됐다. 햇빛이 사라지자 식물과 식물성 플랑크톤은 광합성을 할 수 없었다. 하늘에선 질산과 황산이 섞인 비가 내렸다. 육지 전체 평균기온이 0℃이하로 떨어졌다. 이 기간 동안 지구상 모든 생명들이 죽어나갔다.

그때 지구에 살았던 동식물의 3/4이 죽었다. 몇몇 익룡 종류를 제외하면 공룡들도 모두 사라졌다. 고생물학자 토머스 할리데이는 '아더월드'(김보영 옮김)에서 이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따뜻한 기온에 적응했던 종들은 낮은 기온에서 생존할 수 없었다. 대형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은 안정적인 먹이 공급이 끊겨 아사했다. 그 자리를 분해자들이 차지했다. 곰팡이 등의 분해자는 낮에도 깜깜한 하늘 아래에서 죽거나 죽어가는 동식물들의 잔해를 먹어치웠다.'

팔레오세 직전 백악기 지층에서는 다양한 생물의 화석이 나타난다. 초식공룡 '렙토케라톱스', 육식공룡 '티라노사우루스', 익룡 '아즈흐다르코과', 바다에도 거대한 해양 파충류들이 많았다. 이런 생물과 식물들의 3/4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 자리를 새로운 생물들이 차지했다.

이런 전이는 과학자들을 당황하게 할 만큼 빠르게 진행됐다. 전세계에서 발견되는 이리듐층은 외계에서 날아온 소행성 충돌의 명백한 증거다. 이 충돌로 지구 생물종의 3/4이 사라졌는데 그 몇㎝ 위 지층에는 중소형 포유류, 악어, 거북이 등의 화석이 곧바로 나타난다.

토마스 할리데이는 "지질 연구를 통해 팔레오세라는 새로운 세가 시작되었음을 확인하는 데만 100년도 더 걸렸다"며 "마침내 익룡, 공룡, 악어의 친척 등 지배파충류가 지배하던 세계와 말(馬) 영장류 육식동물의 시대를 잇는 중간 단계를 에오세 앞에 삽입하기에 이르렀다"고 덧붙인다.

2억년 이상 살아남았던 공룡도 멸종

공룡은 지구 역사상 가장 오래 번성했던 대형 척추동물이다. 중생대 트라이아스기(2억 5190만년~2억 130만년 전) 후기에 지구에 나타나 2억여년 넘게 살아남았다. 인간은 원생인류부터 시작해도 400만년 전이니 아직 그 1/50도 채 못 살았다.

공룡은 쥐라기(2억 130만년~1억 4500만년 전)를 거쳐 백악기(1억 4500만년~6600만년 전) 말까지 살았다. 25㎝의 작은 크기에서부터 40m가 넘는 크기까지 있었다. 물속에 살던 수장룡과 하늘을 날던 익룡을 포함하면 서식지와 서식 형태도 매우 다양했다.

원시파충류와는 달리 몸 아래로 곧게 뻗은 다리를 가져 높은 운동능력을 갖고 있었다. 익룡 아즈흐다르코과는 라이트 형제가 만든 비행기보다 더 크고 가벼운 몸을 가진 뛰어난 비행 생명체였다.

공룡이 갑자기 멸종한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학설이 제기됐다. 빙하기에 의한 동멸, 초식공룡 먹이 부적응, 화산 활동, 포유류와의 생존경쟁 등이다. 대부분 지질학적 증거가 부족하고 생물학적 설득력이 떨어지는 추론에 불과했다.

과학계의 정설은 칙술루브 소행성 충돌이 백악기 말 공룡을 포함한 생물종의 75%가 멸종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소행성 충돌 때 발생한 에너지는 약 100테라톤으로 2차대전 때 투하된 원자폭탄 리틀보이의 45억배에 이른다.

2020년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지구과학공학과 개리스 콜린스 박사 연구팀은 "3차원(3D) 충돌 시뮬레이션과 칙술루브 충돌구의 지구물리 자료를 분석한 결과, 문제의 소행성이 수평선에서 약 60도 각도로 지구와 충돌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영국과학기술시설위원회(STFC) 슈퍼컴퓨팅 시설을 이용해 소행성 충돌에서부터 칙술루브 충돌구 형성 전 과정을 3D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했다. 90도와 60도, 45도, 30도 등 4개의 충돌 각도로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소행성은 수평선과 약 60도 각도로 지구와 충돌했다. 이 때문에 기후변화 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했다. 특히 대기로 배출된 '황'(黃) 수십억톤이 햇빛을 가로막아 광합성을 차단하고 지구 기온을 떨어뜨린 것으로 밝혀졌다.

200m 운석 충돌한 합천 초계분지

지구 전체에 영향을 끼칠 만큼 큰 소행성이 충돌할 확률은 1/7만5000이라고 한다. 지구가 태양계 안에 자리를 잘 잡은 덕분이다. 지구로 오기 전 목성의 중력이 이런 천체들을 먼저 붙잡아주는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거대한 운석 충돌구가 있다. 경남 합천군 적중면과 초계면에 걸친 '초계분지'다. 최근 연구 결과 지름 7㎞에 이르는 초계분지의 그릇 모양 지형은 천체 충돌로 인해 만들어진 운석 충돌구(크레이터)인 것으로 밝혀졌다. 연대 측정 결과 초계분지는 5만여년 전 지름 200m에 달하는 운석 충돌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중기 구석기 시대로 청원 두루봉동굴과 제천 점말동굴 유적 등이 만들어졌을 무렵이다. 당시 반경 50㎞ 이내는 초토화되고 반경 200㎞까지 초강력 폭풍이 몰아쳤을 것이다. 남한 전역이 크게 파괴되고 구석기 인류는 물론 생태계 전체가 큰 타격을 입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초계분지는 중국 랴오닝성 슈옌(岫巖)에 이어 동아시아에서 두번째로 발견된 운석 충돌구로 기록되었다. 중국 슈옌의 운석 충돌구는 지름 1.8㎞에 깊이 150m 정도로 초계분지의 1/4 정도 크기다.

남준기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