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금융권, 부동산PF 사업장 '요주의 → 고정이하여신' 확대

2024-01-26 11:04:14 게재

금감원, 충당금 적립 강화 지침 제시 … 충당금 최소 30% 이상 늘 듯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가 경제 위기의 주요 불안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는 가운데 2금융권이 부실 사업장에 대한 충당금 적립 강화를 통해 손실에 대비하기로 했다.

발언하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4일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증권업계 간담회에 참석해 부동산PF 리스크관리 강화와 충분한 충당금 적립을 강조했다. PF 예상손실을 느슨하게 인식할 경우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부동산PF 사업장은 '양호', '보통', '악화우려' 등 3단계로 나뉘고, 금융회사들은 '보통' 사업장에 대해서는 요주의 여신으로, 악화우려 사업장은 부실채권(고정이하여신)으로 분류한다. 금융당국의 충당금 적립 기준 강화로 그동안 '보통'으로 평가받던 사업장들이 점차 '악화우려'로 바뀌면 고정이하여신이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전날 2금융권(저축은행, 상호금융, 여신전문금융회사) 관계자들을 불러 업권별 특성에 맞도록 부동산PF 충당금 적립을 강화해서 2023년 결산시 반영해달라는 지침을 제시했다.

저축은행의 경우 약 9조8000억원 규모의 부동산PF와 함께 PF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사실상 비슷한 유형의 토지담보대출 규모가 10조원을 넘는다. 부동산PF대출의 충당금 최소 적립률은 정상(2%), 요주의(10%), 고정(30%), 회수의문(75%), 추정손실(100%) 등 연체 상황에 따라 다르다. 토지담보대출의 경우 충담금 최소 적립률은 정상(0.85%), 요주의(7.0%), 고정(20%), 회수의문(50%), 추정손실(100%) 등으로 부동산PF에 비해 낮다.

금감원은 토지담보대출에 대해서도 부동산PF와 같은 기준으로 충당금을 적립하도록 했다. 그럴 경우 '요주의'로 분류한 대출은 최소적립률이 현재 7%에서 10%로 늘어나게 된다. 100억원 규모의 대출이라면 충당금은 7억원에서 10억원으로 30% 증가한다.

부동산PF로 기준이 바뀌고 요주의로 분류했던 대출이 고정이하로 변경되면 충당금 최소적립률은 7%에서 30%로 확대되기 때문에 금융회사들의 부담은 훨씬 커진다.

일부 악성 사업장에 대해 고정이하여신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금감원이 제시한 만큼 금융회사들은 사업성이 낮은 브릿지론 사업장 중심으로 옥석가리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도 지난 16일 올해 주요업무 추진계획에서 "저축은행과 여신전문금융회사(캐피탈)의 경우 토지담보대출 충당금을 부동산 PF 대출 수준으로 증액하도록 유도하고, 농·수·신협, 산림조합에 대해서는 부동산·건설업 대출 충당금 적립기준 상향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2금융권은 전체 부동산PF에 대해 약 5%의 충당금을 적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충당금 적립 강화조치로 적립률이 올해 안에 10% 가량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있어서 충당금 규모는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다만 이 같은 조치는 금융회사들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수익을 낸 금융회사들은 배당과 성과급을 줄여서 충당금을 추가 적립할 수 있지만, 적자가 났거나 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BIS) 비율이 낮은 곳은 충당금 강화가 오히려 건전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2023년 결산 전까지는 주로 브릿지론 사업장이 고정이하여신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지만 이후부터는 범위가 단계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23일 임원회의에서 "본PF 전환이 장기간 안되는 브릿지론 등 사업성 없는 PF사업장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금융회사가 2023년말 결산시 예상손실을 100% 인식해 충당금을 적립하고 신속히 매각·정리해야 한다"며 "공사지연이 지속되거나 분양률이 현격히 낮은 PF 사업장에 대해서는 과거 최악의 상황에서의 경험손실률 등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충당금 적립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날 열린 금융위원회·금감원·증권업계 간담회에서 이 원장은 "단기적인 이익목표에 연연해 PF 예상손실을 느슨하게 인식하는 잘못된 행태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일부 회사의 리스크관리 실패로 인해 금융시장에 충격요인으로 작용할 경우에는 해당 증권사와 경영진에 대해 엄중하고 합당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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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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