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거래 신고 포상금 한도 상향 … 제보 활성화는 어려워

2024-01-30 12:04:06 게재

20억→ 30억원으로 확대 … 금융위 "지급액 1.8배 상승 예상", 평균 5318만원

미국은 제재금에 비례, 사실상 한도 없어 … 1명에 2억7900만달러 지급 사례도

정부가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신고 포상금 지급 한도를 현행 20억원에서 30억원으로 올리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포상금 한도 상향 등을 통해 시장의 자체감시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지만 한도를 10억원 확대하는 조치로는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0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18일 정례회의를 열고 포상금 관련 업무규정을 개정했다. 개정된 시행령과 업무규정은 내달 6일부터 시행된다.

금융위는 "개정 시행령과 업무규정은 포상금 산정기준의 기준금액을 상향 조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산정기준 개선을 통해 포상금 지급액이 이전에 비해 약 1.8배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지급된 총 10건의 포상금 평균은 2825만5000원인데, 산정기준을 변경하면 5318만3000원이 된다는 것이다.

◆"미국처럼 제재금 비례해 포상금 지급해야" = 성희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포상금 한도를 10억원 더 올려도 지금과 크게 달라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미국과 같이 제재금에 비례해서 포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2022년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신고 103건에 대해 2억2900만달러(한화 3060억원)의 포상금을 지급했다. 지난해에는 내부고발자 1명에게 2억7900만달러(3728억원)을 지급했다. 이 같은 조치가 가능한 것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100만달러 이상의 금전적 제재(민사제재금 및 부당이득환수 포함)를 부과하는 경우, SEC가 해당 공익신고자에게 징수된 제재금의 10~30%에 해당하는 포상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공정거래로 얻은 부당이득액이 클수록 포상금 지급액이 증가하는 방식이어서 사실상 한도가 없다. 금융위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부당 공동행위 신고포상금과 국세청의 은닉재산 신고포상금 최고한도가 각각 30억원인 점을 참고했다.

하지만 자본시장 불공정거래의 경우 수많은 불특정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공정위 또는 국세청의 포상금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금융당국에서 불공정거래 조사·수사를 담당했던 금융권 인사는 "자본시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공정위·국세청의 포상금과는 다른 기준을 설정해야 하고 충분한 인센티브가 없으면 내부고발을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2022회계연도에 1만2300건 이상의 공익신고자 제보를 접수했다. 유형별 신고 비율을 보면 시세조종 21%, 사기적 청약행위 17%, 가상자산 공개(ICO) 및 가상자산 관련 14%, 회사 공시 및 재무제표 13% 등이다. 이밖에도 내부자거래, 매매 및 가격책정, 증고신고서 미등록 청약 등 다양한 유형의 신고가 이어졌다.

◆포상금 없는 일본, 신고·수리 미미 = 금융위는 이번 시행령과 업무개정을 통해 "범죄수익 규모에 따라 포상금이 더 지급되도록 '부당이득' 규모를 포상금 산정기준에 새로이 반영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같은 방식인 것 같지만, 미국이 제재금에 비례해 포상금을 지급하는 것과 달리 가중치 점수를 반영하는 방식이다.

포상금은 중요도에 따른 기준금액과 기여율을 곱해 산정하는데, 중요도는 △자산총액 △일평균 거래금액 △적발된 위반행위의 수 △조사결과 조치 △부당이득 등 각각에 가중치를 곱해 산출된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이달 발표한 '불공정거래규제' 보고서에서 "기여율은 신고내용의 구체성과 조사 및 적발 기여도를 평가점수로 환산하는 등 복잡한 산식으로 인해 신고자 입장에서 포상금 예측이 어려울 수 있다"며 "향후 정책적으로 미국과 같이 불공정거래 행위자로부터 징수한 금전 대비 퍼센트(10~30%)를 규정하는 방식을 도입해 공익신고를 활성화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일본도 자본시장에 공익신고자 보호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요건이 엄격하고 별다른 보상시스템이 없다. 신고를 위해서는 당해 회사에 1년 이내에 고용돼 있었거나 거래처 관계 회사에 고용돼 있었어야 하고,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증거나 이유 등을 갖춰 실명으로 신고해야 한다. 일본 증권감독위원회에 신고·수리된 건은 2017년 1건에 불과했으며, 그 후 매년 2~5건, 2020년 10건에 그쳤다.

자본시장연구원은 "나라마다 정책 방향은 다를 수 있으나, 불공정거래 근절이라는 정책 목표와 효율적인 문제 해결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포상금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공익신고자에 대한 포상금을 지급하지 않는 일본의 경우 공익신고가 활성화되지 않는 점에 비춰 볼 때 미국과 같은 포상금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익명신고 제도 도입 = 한편 이번 개정 시행령에는 익명신고 제도가 도입됐다. 그동안 신고인이 자신의 인적사항을 밝혀야 불공정거래 신고가 가능했기 때문에 신고에 부담을 느껴 주저하는 사례가 있었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회계 부정 신고에서도 익명신고 제도를 도입한 이후 신고 건수가 늘고 있다. 다만 익명신고 후 포상금을 지급받기 위해서는 신고일로부터 1년 이내에 자신의 신원과 신고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허위 신고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도 필요할 것으로보인다. 미국 SEC는 잘못된 신고로 인한 행정력 낭비와 조사 방해 등을 막기 위해 3건 이상 부적절한 신고를 한 경우 영구히 공인신고 포상대상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실제로 수백건을 신고한 제보자가 포상대상에서 영구 제외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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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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