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중대재해법 논란’ 일본 사례에서 배워야 할 것들

2024-02-05 13:00:01 게재

우리나라에서 최대 노동현안 중 하나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중대재해법)을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적용 유예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였다. 정부여당의 2년 유예 제안을 더불어민주당이 거부하면서 1월 27일부터 시행상태로 들어갔지만 여전히 재협상 여지는 남아 있다.

3년 전 이 법이 제정됐을 때 50인 이상은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3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산재사망자는 2021년 2080명이고, 근로자 1만명당 사망자수를 나타내는 사망만인율은 1.07이다. 10년 전인 2011년, 각각 2114명 및 1.47보다는 개선됐다.

이 법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많은 산재사망 등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생명과 신체를 보호할 목적으로 도입됐는데 그 실효성이 기대됐다. 산재사망 비중의 약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므로 이 법의 실효성을 기대한다면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도 적용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한국 산재 사망만인율은 일본의 8.2배

일본의 경우 2021년 산재 사망자수는 778명이고, 사망만인율은 0.13이다. 산재사망률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8.2배의 수준이다. 일본의 산재사망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배경에 관해 예방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1972년 ‘노동안전위생법’ 제정과 1975년 대법원에서 안전배려의무를 확립하는 판결로 사용주의 산재예방 조치가 의무화된 것을 들 수 있다. 이것의 영향으로 산재사망자수는 1970년 6048명에서 1980년 3009명으로 반감했다.

후생노동성(한국의 고용노동부에 해당)은 5년마다 ‘산업재해방지계획’을 세우는데, 1958년 제1차 계획을 시작으로 2023년에 제14차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는 산재 저하 목표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많이 발생하는 산재 예방을 위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많이 발생하는 여성 고령자의 전도(넘어짐)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기업은 근력 유지를 위한 운동프로그램 도입과 스포츠의 습관화를 추진할 것, 정부는 ‘건강경영 우량 법인 인증제도’ 등의 시책과 연계해 넘어짐 허리통증예방 대책의 구체적인 메뉴얼을 마련하고 실천을 지향하는 기업을 지원할 것 등이다.

기업도 산재예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2023년 12월 1일 필자는 도요타에 부품을 납품하는 기업(근로자 약1700명)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 회사는 2008년부터 ‘기능안전연수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안전체감 연수, 위험예지 연수를 수료한 자는 1만여명에 이르렀다. 연수 수료자에는 해당 기업의 근로자뿐만 아니라 협력회사 등의 근로자도 있었다. ‘안전은 모든 것에 우선’이라는 표어에 걸맞은 실천적 안전 연수를 하고 있었다. 재해발생건수는 2007년 26건에서 2022년 10건으로 줄어들었다.

노동조합도 산재예방을 최우선 운동으로 삼고 있다. 필자는 올해 일본 최대 전국노동조합인 렝고(조합원 약 700만명) 신년회에 참가했는데, 렝고 회장(위원장)이 인사말에 앞서 가장 먼저 발언한 것이 “안전하게”였다. “안전하게”로 인사하는 것은 철강산업 조선산업 노동조합에서 처음 사용했는데 이제는 전체 노동조합으로 확대되고 있다.

늦었지만 법 시행의 순서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법 시행은 대체로 대기업 중소기업 순으로 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위한 조치로 볼 수 있으나 실은 그 반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중대재해법의 경우 대기업부터 시행하면 산재발생 위험이 높은 작업이나 부품 생산은 중소기업에 위탁해 자사의 산재를 떠넘기는 경우가 있다. 이런 위험을 떠맡은 중소기업이 산재를 줄이기는 매우 어렵다. 이런 것을 고려해 법 시행 우선 순서를 중소기업으로 하고 대기업에서 산재를 자사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법 시행의 효과를 생각하면 지금까지의 법 시행 관행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부터 법 시행하는 것 고려할 필요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은 보람있는 직장 생활에 가장 기본이다. 정쟁의 대상이나 노사대립적인 사항이 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정쟁의 대상이 되어 다행히 그 내용이 모든 국민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것을 기회로 삼아 선진국에 걸맞은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 가길 바란다. 그것을 지향할 때 일본의 사례는 적지 않은 참고가 될 것이다.

오학수 일본 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 특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