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밸류업 성공 조건 ③일본 자본시장 재조명

역대급 증시 호황, 10년 전부터 진행된 거버넌스 개혁 영향

2024-02-07 13:00:01 게재

스튜어드십·기업지배구조 코드 시행으로 기업가치 높여

금융청·거래소·공적기금 통합 리더십 중추적 역할 담당

일본 증시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연신 사상최고치를 경신하며 역대급 호황을 맞이했다. 이는 일본 정부의 저금리정책과 엔저현상 등 거시환경 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 10년 전부터 진행한 거버넌스 개혁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 1990년 버블경제 붕괴 이후 30여년 이상 전개된 장기 박스권을 탈출한 일본 증시 상승의 중심에는 2014년부터 시작한 스튜어드십 코드와, 2015년부터 시행된 기업지배구조 코드가 있다. 또한 이를 강력하게 시행한 금융청과 도쿄증권거래소, 공적기금의 통합 리더십이 증시 부양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34년 만에 최고 … 역사상 최고치 경신 주목 =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일본 대표지수 니케이(NIKKEI) 225지수는 전일 종가기준 3만6160.66으로 장을 마감했다. 작년부터 꾸준히 오름세를 보이던 니케이 지수는 올해도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8% 이상 올랐다. 지난달 22일에는 3만6546.95를 기록해 1990년 2월 이후 34년 만에 최고점을 찍기도 했다. 23일 장중엔 3만6984.51까지 찍었다. 이후 차익실현 매물이 나오며 조정을 받았지만, 여전히 3만6000선에서 거래 중이다. 버블경제가 최고조에 달했던 1989년 12월 29일 역대 최고치(3만8915엔)까지는 이제 7.6% 가량 남은 상황이다. 시장은 니케이 지수가 언제 역사상 최고치를 경신할까에 주목하고 있다.

토픽스(TOPIX)지수도 6일 종가기준으로 2539.25를 기록하며 작년 말 대비 7% 이상 상승했다. 니케이지수가 3만6900선을 찍은 지난달 23일 토픽스도 장중 2565선까지 올랐다.

일본 증시가 ‘잃어버린 30년’을 무색하게 하는 의미 있는 상승세를 이어가자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이 달아올랐다. 특히 지난해 워렌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적극적인 매수 기조까지 더해지면서 국내 투자자들 또한 적극적으로 일본 시장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우리 정부와 금융투자업계는 일본 증시의 역대급 호황 원인을 분석하며 한국 증시 활성화 방안을 찾고 있다. 금융당국은 일본 증시를 벤치마킹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도쿄증권거래소, PBR개선 요구 = 일본 증시 반등 원인을 찾아보면 먼저 작년 4월 도쿄증권거래소(TSE)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 미만인 상장사에게 주가 상승 개선안을 마련하도록 요구한 일본판 밸류업 프로그램 시행을 들 수 있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TSE는 작년부터 PBR 1배 이하 상장사를 대상으로 자본 수익성과 성장성 제고를 위한 개선 방침, 구체적인 이행 목표를 공개하도록 요구했다. 또 자기자본주가이익률(ROE), 자본비용, PBR 1 이상 기업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일본거래소그룹(JPX) Prime 150 지수를 출시하고 기관투자자가 벤치마크 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기재한 기업명단을 매월 공표하고 있다.

TSE가 개선안을 요구한 후 올해 2월 니케이지수와 토픽스지수는 30% 가까이 상승하며 선진국 내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일본 주식 상승은 매크로 환경의 영향도 있었지만 일본판 밸류업 프로그램에 따른 기업가치 제고가 상당부분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2023년 일본 증시의 자사주 매입규모는 10년래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대표적인 비효율적인 자본 활용의 케이스였던 전략적 투자비중도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김채윤 NH투자증권 연구원은 “PBR에는 재무가치(순자산) 외에 재무제표에 나타나지 않는 비재무가치(무형자산: 영업권, 산업재산권, 고객만족도, 브랜드 가치, 협력사와의 관계, 조직 연령 등)도 포함되어 있다”며 “PBR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ESG로 상징되는 비재무가치를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ESG는 지속가능경영에 의한 사회적 평가 등 ROE(자기자본이익률)를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다”며 “투자자들은 ROE(자기자본이익률)가 자본비용을 웃도는 타이밍을 ‘투자의 기회’로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공적기금, 적극적 주주권 행사 = 하지만 일본 정부는 단순히 PBR에만 집중한 게 아니다. 일본 증시의 박스권 탈출 움직임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준비되고 있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니코자산운용에 따르면 2013년 아베 총리 시절 일본의 기업 거버넌스 개혁이 시작됐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모회사와 자회사 이중 상장과 순환출자, 인수 방어책, 소수주주 권리 외면 등으로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비판받았다. 이에 아베 전 총리가 경제 성장 정책 일환으로 기업 거버넌스 개혁과 이를 통한 기업가치 증대를 강조했다. 이를 위해 2014년 금융청(FSA) 주도로 일본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정했고, 일본 공적기금(GPIF)은 투자기업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도쿄증권거래소 주도로 주주환원 확대에 대한 이해 관계자 논의도 활발히 진행됐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최고경영자(CEO)가 상장사와 행동주의 투자자의 “솔직하고 공개적인 토론”을 촉구하는 등 건설적인 대화로 기업 가치를 높이고자 했다. 거래소는 PBR(주가자산비율) 1배를 밑도는 상장사에 주가 상승 방안을 요구하기도 했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 야마지 히로미 CEO는 일본 기업들에게 ①기업이 주주들과 ‘건설적인 대화’를 나눠라 ②경영진은 (손익계산서상) 매출, 이익, 시장점유율에 집착하지 말고 (재무상태표 파헤쳐) 투자자가 관심 있는 자본비용(Cost of capital)과 주가에 지속적인 관심 가져라. ③독립된 이사회가 PBR이 낮은 이유를 제대로 분석해, 구체적인 개선책을 발표해라. 아울러 개선 상황을 정기적으로 공유해라. ④단기적 미봉책보다, 장기적 주주가치 제고에 주목해라 (배당, 자사주 vs. 투자, R&D, 비핵심자산 매각 등) ⑤ ROE 개선 계획은 최소한 1년에 한번 업데이트해서 공유해라 등 5가지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후 자기자본이익률(ROE)이 10% 이상인 상장사는 25%에서 33%로 증가했고, 지배구조 코드에 따른 수익성 개선 기대로 해외 투자자의 매수세가 증가했다. 작년부터 시행된 도쿄거래소의 PBR 개선 요구가 기업들에 잘 적용된 이유다.

조재운 대신증권 연구원은 “일본 재계 단체인 경제단체연합회가 아베의 개혁을 희석하려고 하는 등 저항도 있었지만, 아베는 꿋꿋하게 구조개혁을 추진했고 이를 도울 해외 행동주의 펀드와도 접촉했다”며 “기업에 주주가치 제고를 요청하는 외국계 펀드를 ‘기업 사냥꾼’으로 몰아가던 분위기를 총리가 직접 나서서 바꿨다”고 설명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일본 거버넌스 개혁 프로그램의 핵심은 ‘기업이 매출과 이익의 성장에만 집중하지 않고 주주 입장에서 자본비용과 투자 효율성을 따져보는 것’”이라며 “(경영진이 아닌) 이사회가 중심이 돼 주가 저평가 원인을 따져본 뒤 해결책을 공표하고 이를 주주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피드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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