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 칼럼

정책 공약의 ‘유효슈팅’ 전술

2024-02-13 00:00:00 게재

운동경기는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 하지만 카타르 아시안컵은 영 뒷맛이 씁쓸하다. 이번 축구대표팀은 유럽리그에서 활약하는 월드클래스 여럿이 포함돼 역대 최강 전략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실제 경기력은 ‘좀비축구’로 불릴 정도로 최악이었다. 특히 요르단과의 준결승에서 아시안컵 사상 처음으로 유효슈팅을 하나도 기록하지 못했다. 볼 점유율은 높았지만 슈팅은 8개로 요르단(17개)의 반도 안됐다. 이로써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3위 한국은 64계단 아래인 랭킹 87위 요르단에 무릎을 꿇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대표팀 주장 손흥민은 ‘죄송하다’는 말을 5번이나 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이와 달리 위르겐 클린스만 대표팀 감독은 요르단 감독과 악수하며 미소를 지었다. 한국 축구를 무시하는 것인가. 공감 능력이 없는 것인가.

클린스만 감독은 치밀한 전술과 색깔 없이 그저 선수들이 해주길 바라는 ‘해줘 축구’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아시안컵 경기를 지켜본 외신들이 ‘한국 축구의 불안요소’로 거론했을 정도다. 축구경기만 지도자의 현실 인식과 리더십이 중요한 게 아니다. 국정은 더욱 그렇다. 국가 운영을 책임지는 정부 여당은 물론 야당의 인식과 일머리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주 방송 대담에서 “지금 전세계 경제가 좋지 못하다”고 했다. 그렇지 않다. 미국경제는 고용시장이 너무 좋아 상반기에 금리를 인하하기 어려울 정도다. 세계경제도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가 지난해말 내놨던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할 정도로 회복세를 탔다.

한국경제는 그동안 세계경제 및 미국경제 흐름과 보조를 맞춰왔다. 그런데 지금은 이들과 겉도는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을 빚고 있다. 미국과 세계경제가 좋아지는데 왜 한국경제는 뒷걸음 제자리걸음인지 세심히 들여다보고 정책 대안을 모색할 때다.

축구나 정치나 리더십이 문제

윤 대통령은 낮은 국정운영 지지율에 대해 “국제금리가 높고, 외국도 다 경기가 위축돼 있다. 그리고 세계 정상들의 지지율도 많이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국정수행 지지도가 낮은 원인을 대외환경 탓이 아닌 내부 요인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국정운영의 난맥상을 풀고, 국가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유효슈팅’ 정책으로 실현시켜야 한다.

총선을 앞두고 쏟아지는 각종 공약 등 정치행위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폴리코노미(Policonomy) 현상도 경계 대상이다. 폴리코노미는 정치(politics)와 경제(economy)의 합성어다. 연초부터 대통령실과 정부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세제 혜택 확대 등 감세 시리즈 공약을 내놨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경부선 지하화를 공약했다. 그러나 이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정치권은 철도 지하화 성공 사례로 경의선 서울 가좌~용산간 지선, 강릉시내 철도 구간을 거론한다. 두 구간 지하화에는 전제조건이 있었다. 공사하면서 철도 운행을 중단했다.

경부선 서울시내 구간은 6개 선로가 지난다. 통과 열차도 KTX와 무궁화호, 광역전철까지 다양하다. 이 선로를 지하화하기 위해 열차 운행을 중단할 수 있을까. 열차 운행이 중단되면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 서울을 오가는 지방 주민들까지 발이 묶인다. 국내에선 열차를 운행하며 선로 아래를 파헤쳐 지하 선로를 뚫은 사례가 없다. ‘철도 강국’ 일본에서 한 적이 있는데, 복선 전철 1km에 1조~2조원 비용이 들어가는 난공사였다. 도시 단절과 소음 등의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제한적 구간의 지하화는 필요할 것이다.

닥공(닥치고 공격)식 철도 지하화에 앞서 선로 상부 공원화 방식을 검토하자. 추가적인 접근도로나 보행로 개설 방안도 있다. 막대한 사업비가 들고 안전에 문제가 있는 ‘전 구간 지하화’ ‘시내 전부 지하화’ ‘고속도로 40km 지하화’ 공약은 골대를 벗어나는 ‘뻥축구’다.

‘뻥공약’ 말고 ‘참정책’ 승부를

뻥축구는 한국 축구의 대명사였다. 해외무대에 진출하는 등 기량이 나아졌지만 선수들 체력과 지도자의 전술은 여전히 밀린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정체 상태인 ‘경제 13강’ 허들을 뛰어넘으려면 중소기업과 중산층 이하 가계의 기초체력을 보강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선거에 올인하며 세계적 흐름을 놓치거나 역행하면 경제 랭킹은 미끄러진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탄소중립 및 신재생에너지 전환, 글로벌 공급망 재편, 반도체 전쟁, 인공지능(AI) 기술 경쟁 등에서 뒤처지면 따라잡기 힘들어진다.

여든 야든 여의도를 향해 뻥뻥 질러댄다고 골로 연결되지 않는다. 세계적 추세와 미래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진정 국민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합리적 현실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필드골이 가능할 것이다. 아시안컵 호주와의 8강전에서 승리한 뒤 대표팀 손흥민 주장이 말했다. “나라를 위해 뛰는데 힘들다는 건 핑계일 뿐이다.”

가천대 겸임교수 경제저널리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