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양안관계와 중국의 통일전선전술

2024-02-15 13:00:01 게재

대만 독립 성향의 민진당은 2018년 총통선거에서 불리하던 국면을 중국의 홍콩민주화 탄압 역풍으로 극복한 바 있다. 그런데 지난 1월 선거에서는 중국이 2019년 시진핑 주석의 군사적 수단 불배제 등 압박을 강화하면서 ‘중국이 주도하는 통일은 자유의 박탈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일어나 다시 승리했다.

선거 직전 친중 성향인 국민당의 마잉주 전 총통이 시진핑을 신뢰한다고 발언한 것, 그리고 중국이 정찰용 풍선을 대만상공에 띄운 것 또한 반중 분위기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과거 한국 선거에서 북풍이 역풍을 초래했던 영향과 유사하다.

민진당이 총통선거에서 승리했으나 대만유권자는 양안관계의 긴장보다 유지를 원했다. 민진당은 민주냐 독재냐, 국민당은 전쟁이냐 평화냐 선거프레임을 내세웠지만 내심 양안관계의 악화는 원치 않았다. 입법원 선거에서는 민진당이 과반 달성에 실패한 것도 ‘총통선거는 안보 이슈, 의회선거는 민생 이슈’라는 대만선거의 특징을 담아냈다. 향후 대만의 양안정책에 캐스팅보트를 쥔 신생정당 민중당도 민생과 실용을 중시하는 양안관계를 강조한다. 선거 이후 양안관계는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한 대화기조를 이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 선거 이후 통일전선을 들고 나온 까닭

이번 선거를 지켜보는 중국의 속내는 착잡하고 복잡하다. 선거과정에서 해상 군사활동으로 긴장을 고조하는 한편 양안 경제협력의 틀인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연장 보류와 품목 축소 시사, 친중인사 선거활동 지원, 언론 및 SNS상 친중여론 조성 등으로 선거판세에 영향을 미치려 했으나 중국의 압박에 대한 대만유권자의 ‘면역력’이 축적된 탓에 오히려 역효과만 불렀다.

중국은 표면적으로는 강경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양안관계에 대한 전술의 변화를 모색하는 모습이다. 시진핑 주석은 1월 16일 중국 공산당 이론지 치우스(求是) 기고에서 ‘새시대 당의 통일전선사업’과 관련해 “대만내 애국통일세력을 키워 대만인의 마음을 얻으라”고 했다.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도 “평화통일과 일국양제와 대만인민에 희망을 거는 방침을 견지할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누그러뜨렸다.

중국이 유화적인 통일전선전술을 들고나온 것은 선거결과에 기인한다. 총통선거에서 민진당의 득표율이 지난번 차이잉원 총통의 56%에 비해 현격히 낮은 40%였다. 입법원 선거에서도 민진당(51석) 국민당(52석) 모두 과반을 넘지 못하고 실용주의 성향의 민중당이 8석을 차지함으로써 민진당 정부를 고립시키면서 두 야당과 협력을 증진하는 방식의 통일전선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대만사무판공실이 양안간 인적 왕래와 교류협력의 정상화를 추진해 조국통일의 위대한 과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의 유화적 자세로 양안관계의 긴장은 낮아질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양안통일의 걸림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지 않는 한 통일의 미래는 밝지 않다. 대만의 여야 정당 모두 양안관계의 평화적 발전을 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를 중심으로 한 교류협력에 대한 장애는 크지 않다. 중국이 경제교류 중심의 현상유지를 넘어 통일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대만 유권자들이 민주와 자유 등 가치가 위협받거나 대만 자체의 정체성이 상실될 것을 우려해 독립성향의 민진당을 선택했던 선거 결과에 대한 냉정한 인식과 함께 창의적 대응이 필요하다.

시진핑 주석이 통일전선사업을 강조하면서 “중국 공산당의 성공은 마음을 얻는 역량에 달려있으며 이것이 최대 정치다”라고 한 말은 통일논의를 발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과거 중국 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군사적으로 우세한 국민당을 극복하고 승리를 거둔 것도 거대한 농민층의 마음을 얻는 정책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대만 주민들의 마음을 얻는 정책이 “대만 애국통일세력을 발전 강화해야 한다”는 식의 일방주의적 접근에 머물러서는 ‘희망적 사고’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허울만 남은 일국양제, 대만인 마음 못 사

중국은 무엇보다 일국양제의 개념을 전향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홍콩의 일국양제 실험이 자유의 박탈과 홍콩경제의 쇠락으로 이어진 현실을 목도한 대만 유권자들에게는 허울만 남은 지금의 일국양제로는 호응을 얻기 힘들다. 대만유권자들이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양안관계의 긴장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만큼 대만의 정체성 유지에 대한 유연성을 발휘하지 않는 한 통일논의의 진전 가능성은 낮다.

특히 지금의 강성 정치체제를 고수하는 한 양안관계가 호혜협력과 평화공존의 단계를 넘어서기는 어렵다. 2000년대 초반 보여줬던 것과 같은 정치체제 발전의 노력이 재개될 때 통일논의 환경은 보다 성숙될 것이다.

이창열 한국통일외교협회 부회장 중국사회과학원 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