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행동

탄소중립과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 리스크

2024-05-08 13:00:03 게재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전세계적으로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고,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면서 글로벌 공급망과 통상질서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기후정책들도 변화하는 통상질서와 연계되어 자국 산업의 탈탄소 전환과 경쟁력 제고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도록 설계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전기자동차 배터리 신재생에너지 등 친환경에너지 산업을 미국 내에 유치하기 위해 대규모 세액공제와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시행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에서는 유럽 내로 수입되는 역외제품에 대해 탄소세를 동등하게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했다.

전세계는 지금 탄소중립과 국가경쟁력 확보라는 양립이 결코 쉽지 않은 두가지 목표를 쫓아 복잡한 방정식을 풀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국가의 지리적 입지 특성에 따라 발전량과 발전 비용에 큰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높은 에너지 비용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산업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치게 돼 있다. 미래 탄소중립 시대가 되면 호주 미국 캐나다 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 천혜의 환경을 보유한 국가들은 재생에너지가 풍부하고 저렴해 수출국가가 될 수 있는 반면, 우리나라와 일본 독일은 그 반대의 경우가 된다.

산업구조상 탈탄소 비용 엄청날 듯

특히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아 재생에너지 발전이 규모의 경제를 갖추지 못해 경제성이 좋지 못한 데다가 지역간 시차가 없고 인접 국가와의 육로 연결이 불가능하다 보니 변동성과 간헐성이 높은 재생에너지를 수용하기 위한 대규모 송배전망과 에너지저장장치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소요될 전망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에 비해 탄소중립 전환이 까다로운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철강 석유화학 등 에너지 집약도가 높은 제조업 비중이 전체 GDP의 약 28%로 독일 22%, 일본 21%, 미국 12%, 영국 10% 등에 비해 높은 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산업의 탈탄소를 위해서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그린수소를 국내 생산해 활용하거나, 해외에서 수소를 수입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방법 모두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산업과 사회 모두에 엄청난 비용을 발생시킨다.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하는 철강 석유화학 산업이 다름아닌 에너지 비용 때문에 경쟁력을 잃거나 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하고 저렴한 국가로 이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달 국제 저명학술지 네이처 에너지에 실린 한 연구에서는 국가별 지리적 입지와 재생에너지 자원의 차이가 철강 석유화학 산업의 생산 및 가치사슬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Verpoort et al. 2024)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자원이 부족하고 비싼 우리나라와 같은 국가의 기업들이 생산설비의 일부를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국가로 옮기면 비용을 18~38%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들 국가에서 선박을 이용해 수소를 수입하고 자국의 생산설비에서 이용하는 것은 잠재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고 위험한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저자는 향후 기업들이 친환경 생산을 하기 위해서 설비를 재배치할 유인이 크기 때문에 공급망 재편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전통적인 에너지집약 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미래 선점 경쟁이 치열한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전력 사용량 급증이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학습과 추론을 위해서는 고성능 반도체를 기반으로 방대한 데이터 연산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AI는 우리 사회와 산업의 기반 기술로써 전방위로 확산될 것이기 때문에 전력 사용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따라 AI 선두주자인 마이크로소프트(MS)는 재생에너지와 핵융합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추후 AI 기업과 데이터센터, 반도체 생산설비 등 첨단산업 역시 저렴한 재생에너지를 찾아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전담 부처 만들어 산업재편 선제 대응해야

이제는 우리나라도 열악한 자원과 환경 속에서 탈탄소와 산업경쟁력 제고를 동시 달성하기 위해 정교한 탄소중립-산업 정책과 전략을 수립해야 할 시점이다.

우선 영국 네덜란드 독일의 모델을 참고해 기후경제부라는 정부부처를 만들어 기후정책을 환경문제에만 국한해 다루는 게 아니라 경제까지 고려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친환경 에너지를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동시에 탄소중립에 따른 산업 재편 가능성을 평가하고 선제 대응하도록 해야 한다.

우종률 고려대 교수 에너지환경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