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사교육 제로’ 모델 정말 가능한가

2024-02-16 13:00:06 게재

유기농은 ‘꿈의 농법’이다. 생명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고 기후변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유기농은 인류의 위대한 도전이다. 하지만 난제다. 현실적으로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을 최소화하는 친환경 농법과는 달리 유기농은 둘 다 ‘제로’여야 하니 말이다.

유기농은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하면 망할 수도 있다. 예컨대 우리 집 논만 농약을 안 치면 어떻게 될까. 농약을 살포한 인근 논에서 해충이 날아들어 벼를 작살낸다. 추수는 하나마나다. 고추재배도 그렇다. 옆집 밭에서 탄저병이 발생하면 서둘러 농약을 쳐야 한다. ‘무농약’ 유아독존(唯我獨尊)이 불가능하다. 해충은 점점 내성이 강해진다. 신종 농약도 점점 농도가 세진다. 결국 야외 논밭의 유기농은 온 마을, 온 지역 전체가 일심동체로 인고(忍苦)의 세월을 감내해야 하는 위대한 여정이다.

대한민국 사교육도 유기농과 흡사하다. 사교육은 내성이 강해져 만성이다. 사교육이 초·중·고생들의 12년을 짓누른다. 집 엘리베이터에서 밤에 우연히 만난 초등 5학년생은 축 늘어져 있다. “무슨 학원에 다니니?”라고 물으면 “수학요, 논술요, 영어요”라는 식으로 요일별로 다르다. 그 아이가 중·고교 때까지 저런 생활을 할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대학생이 돼도 토익 공무원 로스쿨 약대 교원임용고시 편입학 등 온갖 학원이 기다린다. 이런 나라는 세상에 없다.

역대정부 ‘사교육과의 전쟁’은 대국민 사기극

사교육은 망국병이다. 역대 정부는 여러 처방을 내놓았다. 약발은 들지 않았다. 그러니 정부가 외친 ‘사교육과의 전쟁’은 대국민 사기극이다. 2022년 사교육비가 역대 최고인 26조원을 넘어섰다는 교육부의 발표도 가짜다. 26조원의 최소 두배는 넘고 여기에 통계 뒤에 숨은 고액 과외, 컨설팅, 성인 사교육비를 합하면 대체 그 규모가 어떻겠나.

학부모들은 ‘내 아이만 안 시키면 내 아이만 뒤처진다’라는 의식에 짓눌린다. 더구나 1자녀 시대다. 예전엔 여럿 중 한두명에 투자했던 ‘선택형’ 사교육이 ‘1자녀 올인’ 사교육으로 바뀌었다. 한정된 ‘지위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하려는 부모의 욕망은 용렬하다.

그런데 교육부는 ‘사교육 제로 모델’을 만들겠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한마디로 코미디다. 교육발전특구와 연계해 모든 학생에게 맞춤형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해 사교육 없는 모델을 만들겠다는 게 요지다. 실천 방안은 늘봄학교와 방과 후 프로그램 확대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교육비를 줄이고 저출산에 대응하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중·고생에게 대학교수 특강을 제공해 학원 수요를 차단하겠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교수가 국·영·수 문제풀이를 해준다는 것인지 모르겠고, 혹여 그런들 학생들을 학교에 붙잡아 놓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교육 제로 모델’은 꿈의 농법인 유기농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우리 모두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키지 맙시다’라는 학부모의 구호가 거창해도 이탈은 있게 마련이다. 그게 세상 이치다. 서슬 퍼런 전두환 군사정권이 과외를 금지했어도 일부 계층은 은밀하게 과외를 한 사실만 봐도 그렇다.

교육부는 솔직하게 ‘사교육 제로’가 아니라 ‘사교육 최소화’ 모델이라고 해야 했다. 대통령에게 2024년 업무보고를 하면서 너무 나갔다. 의지는 이해하지만 과포장이 심하다.

2024년, 교사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일부 초등교사는 늘봄교실의 보육까지 감당해야 할 상황이다. 교권 문제까지 겹쳐 사기(士氣)가 떨어졌다. 일부 MZ세대 교사는 “급여가 적다”며 교단을 떠나 다시 의대 입시 준비를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아이들을 가르치던 20대 교사가 다시 대입 사교육을 받는 모습이 정상인가.

‘사교육 최소화’로 정책 패러다임 전환 시급

대한민국에서 사교육은 ‘숨바꼭질’과 같다. 공교육의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일 뿐인데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다. 친환경 농사를 유기농으로 전환하려면 농민과 지역의 공감이 필수이듯 사교육도 국민적 공감이 필요하다.

그런데 늘 정책은 일방적이다. 대입을 포함한 공교육 체계의 대전환을 위한 사회적 공감을 얻으려는 노력이 미흡하다. 의대 정원 증원과 무전공 입학 이슈로 사교육은 더 기세등등하다. ‘대입 결과는 절대 사교육 투자를 넘지 못한다’는 세간의 우스갯소리가 부끄러울 뿐이다.

냉정하게 교육발전특구의 사교육 제로가 아니라 사교육 최소화가 현실적이다. 유기농보다 친환경 농법이 더 현실적이듯.

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