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채는 부채인가 자본인가…여전히 논란 중

2024-02-21 13:00:15 게재

IASB, 기존 원칙 유지…관련 계약내용 공시 강화해야

기존주주 가치하락 일으키는 금융상품 발행 자세히 공시

자본 조달 목적 발행 뒤 중도상환 포기 땐 후폭풍 거세

자본의 형태를 띤 신종자본증권(영구채) 등 ‘자본의 특성이 있는 금융상품(FICE)’이 부채인지 자본인지에 대한 논란이 여전하다. 특히 영구채의 경우 무늬만 자본으로 부채로 분류해야 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런 가운데 국제회계기준(IFRS)을 제·개정하는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는 작년 11월 말 발표한 공개초안에서 영구채를 자본으로 분류하는 기존 방침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다만 복잡한 계약 조건은 공시를 통해 재무제표 이용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기존주주들의 가치하락을 일으키는 금융상품 발행 시에도 자세한 공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계나 회계업계, 증권가에서는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자본으로 분류하라고 해도 부채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실제 지난 2022년 11월 흥국생명이 중도상환을 포기하고 새 영구채를 발행을 추진하다 채권시장에 큰 충격을 줬던 사건과 같이 후폭풍이 거세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회계기준원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FKI 타워에서 IASB 공개초안(ED) ’자본의 특성이 있는 금융상품(FICE)‘을 소개하고 국내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한 포럼을 개최했다. 사진 한국회계기준원 제공

◆3월 말까지 전세계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중 = IASB는 올해 3월 29일까지 작년 11월 말 발표한 공개초안에 대한 전 세계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회계기준원은 20일 IASB가 발표한 공개초안에 대해 소개하고, 국내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포럼을 개최했다.

FICE 공개초안(ED)을 발표한 배경은 기업이 발행한 금융상품을 부채와 자본 중 어느 것으로 분류할지 판단할 때 IAS 32(금융상품:표시) 등 현행 회계기준에 불명확한 부분 때문이다. 또한 최근에 다양한 유형의 복잡한 금융상품 발행이 증가함에 따라 기업이 발행한 금융상품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공개초안의 기본방향은 현재 IAS 32의 원칙을 유지하되 그동안 IAS 32를 실무에 적용하면서 식별된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각 실무이슈와 관련된 규정을 명확히 하기로 한다는 점이다. 아울러 기업이 발행한 복잡한 금융상품의 계약조전에 대한 주석공시 정보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요 내용으로는 전환증권의 확정대확정 요건, 조건부 결제조항, 자기지분상품 매입의무, 공시 등에 대한 주요 개선사항을 소개했다. 확정대확정 요건은 원칙적으로 자기지분상품과 교환할 대가의 금액이 확정되어야 확정대확정 요건을 충족하나, 미래 주주의 상대적인 경제적 이익을 현재 주주의 이익 이하로 보존하는 경우에도 확정대확정 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자기지분상품 매입의무 및 조건부 결제조항 관련 측정, 상대방의 상환권 행사 및 미래 우발사건의 발생 가능성 및 시기를 고려하지 않고, 상환이 가능한 가장 이른 시점에 상환될 금액의 현재가치로 금융부채를 측정한다는 원칙을 명확히 했다.

◆만기 1~5년짜리 채권으로 전락한 영구채 =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이 발행하는 신종자본증권이 만기 1~5년짜리 채권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영구채는 만기 때마다 회사의 뜻에 따라 상환하지 않고 30년씩 연장해나갈 수 있다. 원금을 갚지 않고 이자만 계속 물어도 되기 때문에 자본으로 인정해고 있다. 그런데 영구채에 삽입된 조기상환가능 조건이 있다.영구채는 발행 회사에 만기 전 중도 상환할 수 있는 권리, 즉 콜옵션(call option)을 부여한다. 자본시장에서는 영구채 발행 회사가 중도상환일에 콜옵션 행사하는 것을 거의 불문율처럼 여긴다. 거의 모든 영구채에는 중도상환일에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금리가 급등하는 이자율 조정 ‘스텝업(step up)’ 조건이 달려있다. 이에 회계업계와 신용평가사, 증권가에서는 “중도상환이 실질적으로 강제되고 있고, 이행되어야 한다면 신종자본증권을 부채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무적 리스크 대비 방안 마련해야 = 이날 패널토론에 참여한 오명전 숙명여대 교수는 “이번 공개초안에서 부채·자본 분류 원칙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으면서, 국내 대부분의 영구채는 여전히 자본으로 분류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그러나, 시장에서 거의 모든 기업들이 첫 번째 콜옵션일에 콜옵션을 행사해 영구채를 상환하는 상황에서 영구채 투자자에 대한 배당결정 또는 원리금 지급 결정이 회사의 의사결정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최근 다양하고 복잡한 금융상품의 발행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의 특성이 있는 금융상품이 기존의 실무상 해석과 다를 가능성, 그리고 그에 따른 소급적용에 대한 면밀한 영향 분석이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재무적 리스크에 적극적으로 대비하기 위한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의존도는 향후 부담으로 바뀔 수 있다. 만일 신종자본증권이 자본이 아닌 부채로 재분류될 경우 신종자본증권은 부채로 계산돼 기업들의 부채비율은 급등할 수밖에 없다.

◆전환사채 등 금융상품 공시 강화 = 서정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재무제표 이용자 관점에서 투자자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강조했다. 최근 무분별한 전환사채(CB) 발행으로 일반 투자자(특히 기존주주)의 투자위험이 증가하고 있다. 최대주주 등은 편법적 지분확대 및 이익취득에 이를 악용하는 상황이다. 서 연구원은 “그런데 공시를 살펴봐도 CB를 발행한 회사인지, 발행한 CB가 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어있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전환사채 발행시 예상 희석효과를 공개하는 등 바람직한 공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서 연구원은 “특히 기존주주의 가치하락을 불러일으키는 발행인 금융상품 공시를 강화해야 하며 이를 자세하게 공시할 수 있게 강제성을 부여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금융상품의 신뢰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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