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구속도 불사’ 엄포 먹힐까

2024-02-22 13:00:18 게재

“의료현장 복귀안하면 수사·기소”

업무방해·공정거래법 위반도 적용

개별 전공의 처벌사례 없어

정부가 의대 입학정원 증원에 반발해 집단 사직한 전공의들에 대한 강경대응에 나서면서 실제 법적 처벌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정부는 전공의의 집단행동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강조하고 있지만 과거 유사 사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엇갈려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해 집단행동에 나선 전공의들에 대해 ‘구속수사’ 원칙을 공언하며 강경대응을 공식화했다. 21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법무부·행정안전부·대검찰청·경찰청의 의료계 집단행동 대책회의에서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도 불구하고 의료현장에 복귀하지 않고 불법 집단행동을 주도하는 주동자 및 배후 세력에 대해서는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복귀를 거부하는 개별 전공의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정식 기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특히 불법적인 집단행동으로 환자의 생명과 건강이 훼손되는 결과가 발생하면 적용할 수 있는 모든 법률과 사법적 조치를 강구해 가장 높은 수준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집단행동을 방지하고 수습할 책무를 방기해 의료 시스템의 공백을 초래하는 의료기관 운영 책임자들에 대해서도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묻기로 했다.

정부가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있는 근거는 의료법에 있다. 의료법 59조에서는 국민 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으면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한다.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1년 이내 범위에서 의사면허 자격을 정지할 수도 있다.

다만 법조계 일각에선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에게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의 자유의지가 반영된 사직을 업무개시명령 대상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 정부가 의료기관에 전공의들의 사직서를 수리하지 못하도록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은 경우 업무개시명령이 유효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업무개시명령의 송달이 적법하게 이뤄졌느냐도 쟁점이 될 수 있다. 지난 2000년 의약분업 반대 파업 당시 법원은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제대로 송달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무죄 선고를 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전공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전화기를 꺼놓으라는 등 송달을 피하기 위한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2022년 행정절차법이 개정되면서 ‘공공의 안전 또는 복리를 위해 긴급하게 처분할 필요가 있을 때는 문자 전송·팩스 또는 전자우편 등 문서가 아닌 방법으로 처분할 수 있다’는 규정이 추가돼 끝까지 송달을 회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집단적으로 진료를 거부해 병원 운영에 장애를 일으켰다면 업무방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지난 2011년 대법원은 전국철도노동조합의 파업 지시로 인한 업무방해 혐의를 인정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파업이 언제나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고 볼 것은 아니지만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뤄져 사업 운영에 심각한 혼란이나 막대한 손해를 초래한 경우 업무방해죄가 성립된다”고 판시했다. 반면 헌법에서 보장된 기본권인 직업선택의 자유에는 직업이탈의 자유도 포함돼 폭력적 수단을 수반하지 않는 근로자 집단 퇴사로 인한 근로제공거부는 사용자의 사업 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업무방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는 판례도 있다.

정부는 대한의사협회(의협)나 대한전공의협회(대전협) 등이 부당하게 개별 의사의 행위를 제한했다는 점에서 공정거래법(사업자단체 금지행위) 위반 혐의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의협 등이 단체행동을 강제했느냐가 유·무죄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 2000년 의약분업에 따른 집단폐업·휴업 당시 이를 주도한 김재정 전 의협 회장은 업무방해와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유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의협이 의사들에게 자기의 의사에 반해 휴업·휴진토록 사실상 강요하며 구성원들의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판단했다.

반면 2014년 원격의료 도입에 반발, 집단행동을 주도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휴업은 사업자 각자의 판단에 맡긴 것으로 사업내용 또는 사업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한 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정부의 법적 대응과는 별개로 의사들의 집단 사직으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피해를 본 환자와 가족들의 민·형사상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피해를 본 환자와 가족에 대해 대한법률구조공단·법률홈닥터·마을변호사 등 법률지원 인프라를 활용해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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