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K-컨벤션과 기후악당, 한국외교의 두 얼굴

2024-02-23 13:00:01 게재

지난해 11월 30일부터 12월 13일까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8)가 열렸다. 154개국 정상들을 포함해 8500여명이 참석한 최대 규모의 총회였다. 두바이 COP28은 2015년 파리협정의 이행정도를 점검하는 첫 총회로 주목받았다.

지구온도 상승을 1.5℃ 내로 억제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COP28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생산량을 3배로 늘리고 배출가스 저감이 미비한 석탄 화력발전소를 신속히 폐기하고 신규 허가를 제한한다는 등의 ‘아랍에미리트 컨센서스’에 합의하고 기후변화에 따른 개도국의 손실과 피해 보상을 위한 기금이 공식 출범되는 등 가시적 성과가 있었다.

대규모 국제회의 성공의 또 다른 포인트인 행사 준비와 운영 측면에서 한국의 경험이 숨은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두바이 COP28은 최대 규모의 행사였는데도 과거 어느 총회 때보다 혼란없이 원활하게 진행된 것으로 평가됐다. UAE정부는 이번 총회 준비를 자국 행사대행사(PCO)와 한국 영국 호주의 PCO가 연합해 운영하도록 했다. 특히 한국 PCO는 UAE정부가 역점을 둔 ‘세계기후행동정상회의’ 준비 자문을 맡아 전반적인 행사 준비과정을 자문하고 정상회의의 개회식 진행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 UAE 정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 행사·의전 플랫폼이 K-컨벤션 수출로

다양한 국제회의 중심지가 되려는 UAE정부는 관계 공무원들이 한국의 정상회의 준비경험을 배우는 교육프로그램까지 기획했다. 1월 말 아부다비에서 시행된 교육에는 정부관계자 약 60명이 참석했고 교육내용은 한국의 정상회의 준비체제, 의전, PCO 역할로 구성됐다. 필자도 한국 개최 다자정상회의의 준비체제에 관해 소개하면서 그들의 진지한 관심을 실감했다.

UAE정부가 한국의 정상회의 행사 준비와 성과에 주목했던 배경은 2010년 G20 서울정상회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 다자정상회의의 준비 때와 달리 의제 행사·의전 홍보기능을 통합한 대통령직속 G20 서울정상회의 준비위원회를 설치했고 행사·의전을 관장하는 행사기획단이 행사준비를 총괄했다.

당시 필자는 행사기획국장으로 준비 초기에 PCO 선정 검토에 고심했는데 결국 준비위원회는 국내 PCO를 복수(3개사)로 쓰고 미국 PCO의 자문을 받기로 했다. 자문료를 꽤 지불했지만 미국 행사전문팀이 여러차례 방한해 한국 PCO도 포함한 합동회의 등을 통해 실질적 자문을 주었고 그 결과 우리 PCO의 역량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됐다.

이러한 자문을 활용해 준비위원회는 행사장 조성에 한국적 실내 디자인과 디지털 강국 이미지를 구현하고 정상들의 경호안전을 확보하면서 참가자들 편의도 배려하는 자연스런 행사 흐름을 기획하는 데 큰 역점을 두었다.

결국 G20 서울정상회의는 참가대표들로부터 행사장 의전 참가자 지원 등에서 전례없이 잘 조직되고 물 흐르듯 진행된 행사였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는 2년 후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 성공적 개최로 이어졌고 한국의 정상회의 개최 수준에 대한 평가를 한층 높였다. 이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UAE 대표가 2022년 UAE 대통령에 취임했고 그의 뜻으로 COP28 행사준비에 한국의 PCO가 참여하게 된 것이다. 10여 년 전 우리는 선진국 PCO의 자문에 의지했지만 이제 우리 PCO가 ‘K-컨벤션’ 이름으로 자문서비스를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우리의 정상행사 준비와 의전 플랫폼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았지만 이 총회에서 한국은 ‘기후악당’에게 주는 불명예스런 상을 받았다. 총회기간 중 세계기후환경단체 연대인 ‘기후행동네트워크’가 기후협상 진전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한 나라를 선정해 ‘오늘의 화석상’을 수여하는데 총회 6일차에 한국이 노르웨이, 캐나다 앨버타주에 이어 3등상을 받았다. 소위 기후불량국가 인증서를 받은 셈이다.

에너지 정책에서 기후악당 불명예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가 ‘RE100’을 모른다고 해 국제적 화제가 되더니 현 정부의 에너지 기후환경 정책도 뒷걸음질이다. 인류가 기후위기에 대응할 시간이 촉박하다는 세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에 대한 긴박한 위기의식이 없다. 화석연료 대체 전환을 위한 글로벌 협력 분위기와 달리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추진 등으로 세계 추세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컨벤션과 의전이라는 한국외교의 우수한 하드웨어가 기후총회행사 성공을 도왔다는 평가와 함께, 기후정책에 관한 안일한 소프트웨어로 인해 기후악당이라는 불명예를 동시에 얻게 되었다.

서형원 전 크로아티아 대사/주일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