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살리고 K-브랜드 성장까지 ‘서울시 로컬 크리에이터’

2024-02-23 13:00:04 게재

골목상권 발전 위해 청년창업 지원

최대 3000만원, 창업후 경영자문도

지난해 12팀 성공, 올해 7팀 추가

#. 오예준(25) ‘우리예술’ 대표는 고등학교 때부터 막걸리에 심취했다. 조리고등학교 재학 중 접한 막걸리 제조 수업에서 이른바 ‘필’이 꽂혔다. 전국의 양조장을 돌며 막걸리 제조법을 배웠다. 2022년 서울시 로컬 크리에이터 지원사업에 선정된 이후 지난해 중구 장충단길에 양조장을 갖춘 가게를 차렸다. 오 대표는 “창업 이후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고 지역과 함께 상생하는 길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아직 규모는 작지만 매출이 제법 오르고 단골도 늘어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고 말했다.

#. 서초구 양재천로에 위치한 ‘블레숑(BLESSION)’은 핸드메이드 모자 전문점이다. 파리 런던 밀라노 뉴욕 등지에서 패션사진작가로 활동했던 손종우(33) 대표는 여러 나라를 돌며 이른바 ‘찐’ 멋쟁이들을 많이 만났고 이들이 한결같이 모자를 멋있게 쓴다는 점을 발견했다. 하지만 미국 유럽 일본과 달리 한국에는 수제 모자로 유명한 브랜드가 없다. 직접 모자 만드는 일에 도전하기로 했다. 유럽에서 1600년대부터 이어져 온 핸드 크래프트(hand craft) 방식을 도입했고 ‘햇메이커(hat maker)’ 라는 직업을 스스로 만들었다. 손 대표는 향후 세계 시장 진출을 목표로 삼고 있다.

서울시 로컬 크리에이터 양성사업이 청년창업과 골목상권을 동시에 살리는 상생 효과로 주목받고 있다.

23일 내일신문 취재에 따르면 서울시 로컬 크리에이터 양성사업에 선정된 팀들은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도 빠르게 안착하고 있다. 해당 사업은 서울시 로컬브랜드상권 육성사업과 연계해 특색있는 아이템을 보유한 예비창업팀을 선발, 양성한 후 해당상권에 창업하는 것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엄격한 심사와 6개월 이상 교육과정을 이수한 팀에게 지원금 최대 3000만원과 경영 컨설팅을 지원한다.

오예준 ‘우리예술’ 대표가 중구 장충단로에 있는 매장 내 양조장에서 직접 만든 막걸리를 따르고 있다. 사진 우리예술 제공

◆대형 점포 아니라 더 필요한 ‘차별화’ = 청년 사장들의 열정과 창의, 여기에 서울시 지원이 더해지면서 골목상권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지만 창업 성공은 결코 녹록치 않다. 손 대표는 “업종 선택, 차별화된 품목과 마케팅 등 로컬 크리에이터로 안착하기까지 고민하고 준비할 일들이 정말 많다. 특히 대다수가 음식점인 창업 아이템에도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로컬크리에이터를 골목상권 전용으로 생각하는 인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며 “매장과 매출이 작다고 해서 동네 장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말했다.

오 대표는 “골목상권은 고객이 제 발로 찾아오지 않으면 안되는 곳”이라며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 등은 규모로 승부할 수 있지만 오히려 로컬 크리에이터 매장이야말로 차별화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금 흐름을 확보하는 것은 창업자들이 겪는 최대 고민이다. 장밋빛 전망과 달리 창업 이후 현실은 냉혹하기 때문이다. 오 대표는 “수제 막걸리만 판매하고 요리 교실을 여는 등 멋진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돈’이 안되더라”며 “현금 흐름을 확보하는 것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핵심인 걸 알게 됐고 막걸리와 함께 간단하지만 특색있는 안주꺼리를 곁들여 팔고 있다”고 말했다.

◆가게 알아보는 데만 6개월 = 서울시 로컬 크리에이터 양성 사업은 골목상권 활성화와 청년창업 독려에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지원방안이 보다 현장 지향적이고 정교하게 설계돼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예를 들어 로컬 크리에이터 지원사업에 선정된 한 예비청년사장은 가게 자리를 찾는데만 6개월이 소요됐다. 서울시 선정 기준이 정해진 상권 안에서 입지를 정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상권 지정기준을 현실화한다던가 아예 가게 입지 선택을 돕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로컬 크리에이터 양성사업에 보다 많은 관심과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청년창업과 골목상권을 활성화하는데 로컬 크리에이터들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성수동 문래동은 물론 힙지로로 불리는 을지로 등은 모두 대기업 점포나 대형 개발자들이 아닌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작품이다.

로컬 마케팅 분야에 종사하는 한 도시계획 전문가는 “1년에 10개 20개가 아닌 100개 이상 팀을 선정하고 양성해서 서울 곳곳 골목으로, 낙후한 원도심으로, 산업구조 변화 때문에 쇠락한 동네로 이들이 들어가게 해야 한다”면서 “공공의 전폭적 지원과 청년 창업가들의 열정이 합쳐지면 제2의 성수동, 제2의 문래동, 제2의 힙지로가 새로 생겨나 지역을 살리고 내·외국인 관광객도 크게 증가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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