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자발적 참여 유도 위한 인센티브 제공

2024-02-26 13:00:01 게재

금융당국, 상반기 중 기업가치제고 가이드라인

보험·금융·증권 등 저PBR 업종 일제히 하락 중

한국증시 저평가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유관기관과 함께 기업 밸류업 지원에 나섰다. 기업 스스로가 기업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노력하고 주주가치를 존중하는 기업문화를 확산하고 정착할 수 있게 하자는 의도다. 이를 위해 금융당국은 다양한 세제지원 등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스튜어드십 코드를 반영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업들의 적극적인 호응과 시장 참여를 유인할 구체적인 지원책이 마련되지 않는 등 과감한 인센티브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그동안 기대에 부풀어 상승했던 보험·금융·증권·운수장비 등 저PBR 업종이 일제히 하락 중이다.

◆한국 증시, 만년 저평가 = 26일 오전 금융위원회는 한국거래소 등 유관기관과 함께 서울 여의도 KRX 마켓스퀘어 컨퍼런스홀에서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를 열고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주요방안을 발표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우리 기업들이 자본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아 성장하고 그 과실을 투자자들이 함께 향유하고 재투자하는 선순환적 자본시장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며 “기업가치를 제고하고 주주가치를 존중하는 기업경영 문화가 확산·정착될 수 있도록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을 중장기적 과제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작년 말 한국 증시 시가총액은 2558조원으로 주요국 13위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시가총액 비율은 116.2%로 주식시장이 실물경제를 상회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또한 작년 말 한국 주식시장 상장기업 수는 2558개로 주요국 중 7위 수준이다. 최근 10년간 상장기업 수 증가율도 주요국 중 높은 수준으로, 기업의 주식시장 접근성이 제고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하지만 이런 양적성장에도, 기업의 낮은 자본 효율성 등으로 주요국 대비 저평가되고 있는 상황이다. 순자산(PBR) 또는 순이익(PER) 대비 주가 수준은 주요국 대비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 주식시장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작년 말 기준 1.05배, 10년 평균 1.04배로 집계됐다. 코스피 상장사 526개(65.8%)와 코스닥 상장사 533개(33.8%)의 주가는 장부가보다도 저평가된 PBR 1배 이하를 기록했다. 이는 작년 말 기준 미국(4.55배) 등 선진국 평균(3.10배)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일 뿐 아니라 대만(2.41배), 인도(3.73배), 중국(1.13배) 등 신흥국 평균(1.61배) 대비해서도 낮은 수준이다.

작년 말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19.78배로 주요국과 비교 시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 대비 주가가 저평가된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10년간 한국 주식시장 ROE(8.0%)는 주요국 대비 낮은 수준으로, 자본 생산성이 낮음을 시사한다. 배당성향(10년평균 26.0%)도 낮은 수준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자본 활용이 미흡함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배당 등 미흡한 주주환원 정책과 저조한 수익성, 불투명한 지배구조등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유력 원인으로 꼽아왔다.

◆주주가치 존중 기업문화 필요 = 이날 세미나에서 첫 번째 기조발제를 한 정지헌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상무는 정부·유관기관 논의를 통해 마련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의 세부내용을 발표하며 “주주가치 존중 기업문화로의 자발적 변화를 통한 한국 증시의 도약을 위해서는 먼저 △상장 기업의 자발적 기업가치 제고 노력과 △투자자들의 시장평가·투자 유도 △거래소 및 유관기관의 체계적인 상장기업 밸류업 확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본부장은 “이를 위해 상장사들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자율적으로 수립·이행·소통하게 하고, 정부는 세제지원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자발적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투자자들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코리아 밸류업지수 및 상장지수펀드(ETF)를 개발하고 스튜어드십 코드 반영, 투자지표 비교공표 등도 할 예정이다.

이는 기업가치 우수 기업에 대한 시장 평가 및 투자 판단을 지원하는 내용으로 우선 수익성이나 시장 평가가 양호한 기업들로 구성된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오는 9월 개발해 기관·외국인 투자자들이 벤치마크 지표로 활용할 수 있게 한다. PBR이나 ROE, 배당성향, 배당수익률, 현금 흐름 등 주요 투자지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우등생’ 종목들로 구성하기로 했다. 해당 지수를 추종하는 ETF도 오는 12월 출시·상장돼 일반투자자들도 기업가치 우수 기업에 투자할 수 있게 한다. 분기별로 각 기업의 주요 투자지표(PBR·PER·ROE)를 거래소 홈페이지에 비교 공표하는 내용도 담겼다. 배당성향과 배당수익률은 연 1회 알려야 한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의 투자 판단에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감안하도록 스튜어드십 코드에도 반영하기로 했다. 국민연금 등 ‘큰 손’들의 투자 판단에 활용될 수 있도록 스튜어드십 코드(기관 투자자 행동 지침)에도 ‘투자 대상 회사의 밸류업 노력을 점검해야 한다’는 취지의 조항을 반영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가 타인 자산을 관리하는 수탁자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행해야 할 행동 지침이다.

‘투자 대상 회사가 가업가치 제고 계획을 수립·시행하고 시장과 소통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담아 가이드라인을 상반기 중 개정한다. 이밖에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을 중장기 과제로 추진하기 위한 지원 체계 구축과 상장사들과의 소통 강화 계획 등이 담겼다.

정 본부장은 “거래소 내 전담 부서와 외부 자문단을 구성하는 한편, 기업 밸류업과 관련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제공하는 통합 홈페이지를 개설할 예정”이라며 “공시 교육과 일대일 컨설팅을 제공하고, 상장기업 대상 간담회도 지속적으로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체적 방안 없어 실망한 외국인 기관 ‘팔자’ = 정부는 적극적인 주주 환원을 유도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세제 지원안을 마련해 추후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현금 배당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의 주주환원에 대한 세제 지원안이 검토 대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부 관계자는 “세제 지원안의 발표 시기와 방식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세제 지원책이 공개되지 않는 등 기업들의 참여를 유인할 인센티브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며 26일 코스피 지수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날 오전 9시 33분 현재 국내 주식시장에서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0.59포인트(0.40%) 내린 2657.11을 나타내고 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이 884억원을 순매수한 반면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761억원, 173억원 매도 우위를 보이고 있다. 같은 시각 코스닥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3.81포인트(0.44%) 오른 872.38을 나타내고 있다. 업종별로는 보험(-4.20%), 금융업(-3.19%), 증권(-2.53%), 운수장비(-2.11%), 유통업(-2.57%) 등 대표적 저PBR 업종이 일제히 하락 중이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오늘 국내 증시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공개에 따라 그동안 상승을 보였던 수혜 업종에 대한 차익 실현 출회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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