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대구는 ‘남한 제일의 도회지’

2024-02-27 09:28:20 게재

대구시 ‘대구안내’ 번역문 공개

일제강점기 전후 대구모습 소개

일제강점기  ‘대구안내’ 번역자료 공개
대구시는 일제강점기 일본어로 대구를 소개하는 ‘한국 대구안내’라는 소책자의 한국어 번역본 자료를 공개했다. 사진 대구시 제공

대구시는 일제강점기 대구의 상황과 변화를 알 수 있는 사료인 ‘대구안내’ 연작물 중 1905년판과 1918년판의 국문번역문이 공개됐다.

대구시가 27일 일본어로 된 대구안내를 한국어로 번역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대구안내’(1905)에는 “대구는 경상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남한 제일의 도회지로서 부산과 경성 사이의 요충지이고 경부철도의 큰 역이다”라고 소개됐다.

또 “1905년 대구와 주변 지역의 주요 교통편은 기차였고 1918년에는 기차 외에 정기 자동차편이 생겼으며 1905년 대구에서는 한국 화폐가 쓰였으나 1918년 대구에서는 일본 화폐가 통용됐다”는 내용도 공개됐다.

1905년부터 발간된 ‘대구안내’는 대구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대구를 바라보며 대구 외부의 자국인에게 대구를 소개하기 위한 책으로 이후 1910년대, 1920년대, 1930년대까지 5번 발간됐다.

1905년 6월 대구실업신보사가 처음 발간한 ‘대구안내’(당시에는 ‘한국 대구안내’)는 80여쪽의 소책자다. 당시 대구의 지리, 일본인 거류민 상황, 명승고적, 한일 관공서와 회사 및 종교시설, 교통, 그리고 당시 대구의 일본인 점포의 광고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8년 발간된 ‘대구안내’는 120여 쪽으로 늘어났다. 대구의 인구 행정 사법 세금 교육기관 산업(농업·공업·상업) 등에 대해서도 상세한 통계자료를 제시해 일본인 거주 이후 변화하는 대구의 모습을 강조했다.

특히 1905년 ‘대구안내’의 서문에서는 대구를 ‘남한의 대도회지’로 소개했다. 부산을 고베항, 대구를 오사카에 비유하며 대구의 발전 가능성을 강조했다. 당시 일본인들의 시각에서는 부산보다 대구가 남한의 중심지였으며 발전 가능성을 가졌다고 보았던 것으로 해석됐다.

1905년 책자에는 한국화폐 세는 법이 있었지만 1918년에는 빠졌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1910년 이후 일제강점기로 ‘한국화폐’가 사라졌기 때문으로 추정됐다.

대구시는 2016년부터 ‘대구부읍지’ ‘영남감영사례’ ‘대구부사례’ ‘대구민단사’ ‘대구요람’ 등 과거 대구의 상황을 알 수 있는 한문·일본어 고서들을 매년 꾸준히 번역해 대구시청 누리집에 ‘대구사료총서’로 공개해 왔다.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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