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영국 톺아보기

북아일랜드, 10년 안에 아일랜드와 통일될까

2024-02-29 13:00:01 게재

“오늘은 새 여명을 알리는 역사적인 날이다. 모든 시민에게 동등하게 봉사하고, 모두를 위한 총리가 되겠다.” 지난 3일 북아일랜드 의회에서 총리로 임명된 신페인당의 미셸 오닐(Michelle O’Neill, 47) 부대표 취임 일성이다. 이날 취임으로 2년 가까이 정지됐던 북아일랜드 자치정부가 다시 가동하기 시작했다.

신페인(Sinn Féin)은 아일랜드 말로 ‘우리만이’라는 의미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에서 1905년 영국인들을 몰아내고 독립을 달성하고자 결성된 정당이다. 이런 정당이 북아일랜드에서 제1당이 됐고 총리를 배출했다. 북아일랜드 정치지형이 크게 변했음을 보여준다. 이런 큰 변화를 야기한 중요한 이유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때문이다.

친영파 거부로 21개월 간 무정부 상태

신페인은 2022년 5월 총선에서 29% 지지를 얻어 사상 처음으로 북아일랜드에서 제1당이 됐다. 30년 간의 유혈투쟁을 종식한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에 따르면 총선에서 최다 득표 정당이 총리를 지명할 수 있다. 그러나 득표율 2위 친영파 민주연합당(Democratic Unionist Party, DUP)이 연립정부 구성을 거부했다.

DUP는 브렉시트를 적극 지지했다.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는 바람에 북아일랜드는 영국 땅이기에 원칙대로라면 아일랜드와의 교역에서 국경통제가 다시 도입돼야 한다. 그런데 친영파인 DUP 지지자조차 원치 않아서 북아일랜드는 EU와 상품 교역에서 단일시장을 구성한다고 합의됐다. 이렇게 해야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 아일랜드와의 교역이 브렉시트 이전처럼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합의로 브렉시트가 단행된 2020년 2월부터 영국 본토 물건이 북아일랜드로 갈 경우 북아일랜드 당국이 엄격한 통관을 실시해야 했다. 친영파들의 불만이 누적됐다. EU가 싫어서 탈퇴했는데 여전히 유럽연합의 간섭을 받는다며 이 조항 폐기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2022년 5월 총선에서 신페인당이 제1당이 되자 민주연합당은 이 통관 조항을 이유로 자치정부 구성에 불참했다.

1998년 평화협정에 따르면 아일랜드와의 통일을 원하는 민족주의 정당과 연합왕국(United Kingdom, UK) 영국을 우선하는 친영파 정당이 연정을 구성해야 한다. 이 때문에 올해 2월 초 자치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21개월 간 북아일랜드에서는 정부가 없었다.

작년 3월 영국정부는 통관완화를 골자로 하는 ‘윈저 프레임웍(Windsor Framework)’을 EU와 합의했다. 영국 본토에서 북아일랜드로 반출되는 상품의 경우 북아일랜드 소비용이면 통관을 면제하고 아일랜드로 가는 상품만 통관을 한다. 또 통관 권한과 EU법 적용도 북아일랜드 정부에 권한과 재량권을 대폭 줘 친영파 정당의 불만을 해소했다. 이 규정 시행으로 친영파 정당의 불만이 누그러지면서 자치정부가 복원된 것이다.

무장 투사의 후손이 북아일랜드 총리로

미셸 오닐 자치정부 수반이 취임 일성으로 ‘모두를 위한 총리’를 다짐한 것은 그의 가족사와도 연관이 깊다. 그의 아버지는 아일랜드공화국군(Irish Republican Army, IRA)의 일원이었다. 사촌 가운데 한명도 IRA 전사로 활동하다 영국 공군특수부대(SAS)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다. 1969년 영국군이 북아일랜드에 주둔하자 무장투쟁으로 독립을 쟁취하자며 결성된 비밀지하조직이 IRA이다.

1998년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IRA는 영국군과 친영파 제거를 목표로 활동했고, 친영파 자경단이 IRA와 친아일랜드파에 보복하는 피의 악순환이 계속됐다. 30년 간의 유혈투쟁으로 사망자만 3100명이 넘고, 부상자는 3만6000여명 정도 된다.

이런 가족사를 지닌 오닐은 평화협정 이후의 정치 1세대로 투쟁 대신 평화를 앞세워왔다. 2022년 총선에서 신페인이 제1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경제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주택문제 같은 일상적 이슈로 유권자들을 파고들었기에 가능했다. 1998년 자치정부 수립 후 신페인은 그동안 꾸준하게 유권자들의 지지세를 넓혀왔다.

영국의 진보 일간지 가디언은 오닐 총리를 소개하면서 “그의 등장은 수십년 유혈 분쟁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정치세대로의 전환을 상징한다”고 강조했다. 오닐 수반도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도, 되돌릴 수도 없지만 더 나은 미래는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통합의 정치를 전면에 앞세웠지만 북아일랜드 경제는 그리 좋지 않다. 영국정부가 자치정부 복원 후 33억파운드(약 5조3000억원)를 긴급 수혈했지만 당장 현안을 해결하는 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북아일랜드 공무원들은 지난 1월 급여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을 벌였다. 당장 임금인상에 필요한 돈이 7억파운드 정도인데, 자치정부는 이보다 1억파운드 적은 돈을 책정했다. 영국의 건강보험 상황은 최악이다. 긴급 진료를 제외하고 진찰을 기다리는 사람의 수가 지난해 말 42만8858명이다. 2022년 5월 자치정부 붕괴 후 15%p나 급증했다.

자치정부가 복원되고 정치적 안정이 유지된다면 투자지로서의 이점이 있다. 북아일랜드에서 생산된 제품은 EU 시장에 관세나 통관절차 없이 곧바로 수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6년 6월 말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의 경우 잉글랜드 지역에서는 53.4%가 탈퇴를 지지했다. 하지만 북아일랜드는 55.8%가 브렉시트에 반대했다. 이 지역의 친영파이자 개신교의 85%가 브렉시트를 지지한 반면, 아일랜드와의 통일을 원하는 가톨릭교도 85%가 EU 잔류를 지지했다. 북아일랜드는 영국의 구성 지역 가운데 낙후지역이 많아 EU 예산의 지원을 많이 받았다. 또 북아일랜드 평화협정 과정, 그리고 체결 후 EU가 평화의 보장자로서 기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브렉시트는 평화협정이 그간 억제해왔던 종교·인종·역사적 갈등을 다시 끄집어냈다. 1998년의 평화협정은 이곳의 미래를 주민투표에 맡긴다고 규정했다. 당시에는 친영파인 개신교의 비율이 55% 남짓했다. 그러나 2021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가톨릭 비율이 45.7%로 개신교보다 2.2%p 높았다. 191만여명의 북아일랜드 인구 가운데 가톨릭 비율이 개신교도를 추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0년 전 인구조사 때만 해도 개신교도가 3%p 정도 많았다.

분리독립 주민투표는 언제 가능할까

인구구성이 변했다고 곧바로 주민투표를 치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북아일랜드 다수의 주민이 아일랜드와의 통일을 원한다고 영국정부가 판단했을 때 주민투표를 시행한다고 평화협정에 규정돼 있다.

2021년 여론조사업체 유거브에 따르면 10년 안에 UK 영국의 구성에 변화가 있으리라고 여기는 시민들이 절반을 넘었다. 이 가운데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EU 잔류 비율이 제일 높았던 스코틀랜드는 연합왕국 탈퇴를 묻는 제2 주민투표가 어렵게 됐다. 영국 대법원은 2022년 11월, 탈퇴를 묻는 주민투표가 자문적이라고 해도 영국의 미래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에 중앙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판결했다. 집권 보수당은 2014년 9월 UK에서 탈퇴를 묻는 스코틀랜드의 주민투표가 마지막이라고 분명히 못박았다.

이런 스코틀랜드와 다르게 북아일랜드는 주민투표를 법적으로 보장받았다. 주민투표의 실시 및 시기 여부는 신페인이 이끄는 자치정부의 성과에 달려 있다.

UK는 영국 역사의 산물이다. 브렉시트라는 정치적 사건이 UK에 균열을 가져왔고 이 균열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북아일랜드에서 가톨릭 인구 비중이 계속해서 개신교도보다 높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10년 안에 북아일랜드에서 아일랜드와의 통일을 묻는 주민투표가 치러진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연합왕국(UK)는 영국 역사의 산물이다. 브렉시트라는 정치적 사건이 UK에 균열을 가져왔고 이 균열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북아일랜드에서 가톨릭 인구 비중이 계속해서 개신교도보다 높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10년 안에 북아일랜드에서 아일랜드와의 통일을 묻는 주민투표가 치러진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대구대 교수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