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 낳는 ‘재건축 사업’ 옛말되나

2024-03-04 13:00:07 게재

수익성 악화, 시공사 선정 잇단 불발

건설사 재건축 사업 외면, 공급 지연

서울 재건축 시장이 주춤하고 있다. 4일 내일신문 취재에 따르면 최근 다수의 서울 재건축 단지들이 시공사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준공 후 30년이 지난 아파트에 대해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절차를 간소화했다. 사진은 강북구 북서울꿈의숲에서 바라본 노원·도봉구 일대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송파구 잠실우성4차와 가락삼익맨션, 서초구 신반포27차 등 3개 단지는 최근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을 진행했지만 불발에 그쳤다. 세곳 모두 입찰에 응한 건설사가 1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말 설명회 당시엔 현대건설 포스코이앤씨 대우건설 등 쟁쟁한 건설사 8곳이 관심을 보였지만 실제 입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이전에도 강남 3구를 제외한 타 지역 소규모 재건축 단지들이 사업성 때문에 시공사 선정에 애를 먹는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시공사 선정이 불발된 곳들 모두 서초구 송파구 등 이른바 강남3구 소속 단지들이란 점에서 시장에 끼칠 파장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용을 살펴보면 우려가 더 커진다. 신반포27차의 경우 공사비를 3.3㎡당 900만원대까지 올렸지만 건설사들은 이마저도 모자라다고 봤다. 그도 그럴것이 인근 신반포22차 재건축 조합과 시공사(현대엔지니어링)가 협의 중인 공사비는 3.3㎡당 130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타 지역이 아닌 강남권 재건축까지 줄줄이 유찰되는 것은 부동산 경기 하락·원자재값 인상·고금리·PF 위험성 확대 등 관련 사업 여건이 총체적으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건설 주요 자재인 시멘트 가격은 2022년 이후 20~30% 올랐고 건설 분야 물가지수인 건설공사비지수는 2020년 118.30에서 지난해 153.30까지 상승했다. 10대 건설사의 정비사업 수주 총액은 지난해 17조5000억원으로 2022년(41조원) 대비 반토막이 났다.

◆규제 풀렸지만 사업자 못 구해 = 정부는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 혹은 면제하는 등 재건축 시장 활성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정비업계에선 규제 완화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관측이 나온다. 재건축은 정부가 아닌 민간 건설사가 참여해야 가능한데 사업자가 나서지 않으니 진행 자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건설사들은 원가 인상으로 수익성이 낮아진 국내 재건축 대신 해외 수주 및 비주택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올해 수주 목표치에서도 주택건축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을 크게 낮췄다.

재건축 사업은 그간 건설사들의 현금 확보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이른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면서 시공사 선정을 둘러싼 과당 출혈경쟁, 심지어 입찰 비리까지 벌어졌지만 이마저 엣말이 된 것이다.

문제는 재건축 사업이 위축되면서 서울 주택 공급 전반에 차질을 빚게 됐다는 점이다. 서울은 신규 택지가 부족해 재건축 재개발이 아니고선 원활한 주택공급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해당 사업이 멈추면 간신히 안정 추세를 보였던 집값이 또다시 출렁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재건축 사업 지연으로 총비용이 상승되면 조합원들 부담액은 계속 치솟는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될 경우 공공기여 갈등이 재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사비 인상으로 수익성이 낮아졌는데 여기에 임대아파트 등 공공기여까지 제공해야 하니 조합과 서울시 간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시가 공공기여 대상과 조건을 대폭 완화한 것도 이 같은 우려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압구정과 여의도외엔 모든 재건축 현장이 시공사 선정 등 사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사업자간 수익성 확보를 위한 다툼이 벌어지는 상황이라 공공이 손댈 수 있는 영역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라며 “조합도 시공사도 모두 사업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은 “정부가 나서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관련 시장 전체가 침체되는 사태를 사전에 예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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