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신평 “국내 증권사 ‘이례적 자본거래’로 몸집 불려”

2024-03-06 13:00:01 게재

한투, 계열사간 주식매매로 자기자본 8조원 넘어

대신, 495억원 현금 유입에 4801억원 자본 증가

국내 증권사들이 사업영역을 넓히기 위해 계열사 간 ‘이례적 자본거래’를 통해 몸집을 불린 사례를 두고 ‘재무안정성 저하’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금유입 없는 계열사 간 자본거래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기보다 실질적인 자본확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은 5일 ‘증권사 대형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국투자금융그룹과 대신금융그룹의 자본거래 방식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우선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2022년 12월 자회사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과 모회사 한국투자금융지주로부터 카카오뱅크 지분을 각각 23.2%와 4.0% 인수한 바 있다. 취득금액은 총 3조4000억원으로, 이 거래 이후 한국투자증권은 카카오뱅크 지분 27.2%를 보유한 2대 주주가 됐다. 주식매매 이후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한국투자증권의 자기자본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한국투자증권의 자기자본은 계열사들의 주식 매각이익 관련 배당금과 유상증자 자금 유입으로 2022년 9월 말 별도 기준으로 6조2000억원이었던 자기자본은 8조원을 넘어섰다. 이로 인해 한국투자증권은 IMA(종합투자계좌) 사업자 자격 취득을 신청할 수 있게 됐다.

대신증권은 작년 10월 대신에프앤아이·저축은행·자산운용 등 5개 자회사로부터 배당금 4801억원을 받고 4306억원을 다시 해당 5개 자회사에 출자했다. 대신에프앤아이에게는 배당금 4401억원을 받아 3906억원을 출자, 나머지 4개사에게는 배당받은 금액을 그대로 다시 출자했다. 현금흐름을 보면 대신에프앤아이에서 495억원이 유입되었고, 나머지 4개사에게는 배당금을 받은 즉시 동일금액을 출자해 실질적으로 자금이동이 없었다. 하지만 자본거래 이후 대신증권의 자기자본은 크게 늘어났다. 2023년 9월 말 별도 기준 2조1702억원에서 2조6503억원으로 자회사의 배당금 유입 총액만큼 증가한 것이다. 이 본부장은 “실제 자금유입은 495억원에 불과했지만 자기자본이 4801억원 증가하는 마법이 일어났다”며 “여기에 3500억원 정도만 추가로 증가하면 대신증권의 자기자본은 3조원대에 진입한다”고 설명했다.

윤유동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대신증권의 작년 4분기 별도 자기자본은 2조8500만원 수준인데 부족한 부분은 본사 사옥 매각 등 자본조달을 통해 가까운 시일 내 충족할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상반기 중 자기자본 3조원을 달성해 국내 10번째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신청을 할 예정”이라고 전망했다.

증권사가 이와 같이 이례적인 자본거래를 한 이유는 자기자본 규모에 따라 영위할 수 있는 사업 범위가 다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증권사는 자기자본 규모가 크면 클수록 할 수 있는 사업이 다양해지며 수익원이 다각화된다. 이에 따라 종투사 인가를 받은 대형 증권사와 중소형 증권사 간의 수익 양극화는 심한 상황이다.현재 증권사의 자기자본이 8조원을 넘으면 IMA를 신청할 수 있다. IMA는 증권사가 원금을 보장하면서 고객예탁금을 기업대출, 회사채 등 다양한 부문에 투자해 이익을 추구하는 계좌다. 자기자본의 2배까지만 발행이 가능한 발행어음과 달리 IMA는 발행 한도에 제한이 없어 대규모 자금조달에 유리하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지정 시, 기업신용공여, 전담신용공여 등으로 사업기반이 확대되면서 사업경쟁력과 시장지위가 제고될 가능성이 있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에 대해서는 자본시장법상 업무 범위 확대 외에도, 순자본비율 산정 시 일부 대출채권에 대해 차감항목에서 제외해주는 등 특례가 부여되어 있다. 때문에 증권사들이 사업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계열사 간 자본거래로 몸집을 키운 셈이다.

문제는 현금유입이 동반되지 않은 자기자본증가라는 점이다. 이 본부장은 “신평사는 자기자본의 질을 중요하게 본다”며 “자기자본 증가의 원천 중 가장 좋은 것은 유상증자나 현금성 이익 발생이며, 현금 유입이 동반되지 않은 자기자본 증가는 자본의 질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낮다”고 평가했다. 후순위채나 신종자본증권 발행이 회계기준상 자기자본으로 인정되지만 이자지급과 상환의무가 있기 때문에 자본의 질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받는 것과 같다.

또 이 본부장은 “종투사나 초대형 IB 및 IMA 사업자 자격을 획득하면 영업 규모가 많이 증가하고 이는 규모의 경제 진전과 수익원 다각화 측면에서 좋은 일”이라면서도 “영업 확대는 위험투자와 차입금 증가를 의미해 실질적인 자본 확충이 크지 않은 상태에서 위험투자와 차입금이 대폭 늘면 종합적인 재무안정성은 오히려 저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최근 발생하는 대규모 주가연계증권(ELS)·파생결합증권(DLS) 판매에 따른 촉발된 마진콜 사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규모 등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항상 그 중심에는 증권사가 있다. 이 본부장은 “이제 대형 증권사에게는 권한만 주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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