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 공백 공수처, 잇단 악재

2024-03-06 13:00:04 게재

‘채상병 수사외압’ 의혹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에 수사 차질 우려

차기 처장 후보자 이력 논란 … ‘대행의 대행의 대행’체제로 운영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장 공백사태가 한 달 넘게 지속되는 가운데 공수처 안팎의 악재가 잇따르고 있다. ‘해병대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 수사는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주호주 대사로 임명되면서 차질이 우려되고, 어렵게 차기 공수처장 후보자로 선정된 오동운, 이명순 변호사는 과거 이력으로 논란을 빚고 있다. 처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김선규 수사1부장검사가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공수처는 ‘대행의 대행의 대행’ 체제가 불가피해졌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호주 대사로 임명된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 방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집중호우 당시 실종자를 수색하다 순직한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과 관련해 경찰에 이첩된 해병대 수사단 수사기록을 회수하도록 지시하는 등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됐다. 그는 지난해 야당이 탄핵을 추진하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공수처는 이 사건과 관련해 지난 1월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 등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를 진행해왔다. 당초 공수처는 이들을 먼저 조사하고 ‘윗선’인 이 전 장관을 불러 조사할 것으로 예측됐는데 이 전 장관이 호주 대사로 임명되면서 해외 출국이라는 변수가 생긴 것이다. 일단 해외로 나가면 소환조사도 어렵고 휴대폰 등 핵심 증거물에 대한 압수수색도 힘들어 수사에 차질이 예상된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임명한 대사의 출국을 금지하기도 쉽지 않다. 이 전 장관이 출국하기 전 소환하거나 서면조사할 수 있지만 사전 조사가 마무리 되지 않은 상황에서 얼마나 내실 있게 수사가 이뤄질지는 불확실하다.

공수처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와 관련 공수처 관계자는 “수사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여러 조치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아무리 고발이 됐다고 하더라도 국가를 대표해 공무로 인사 발령이 나서 가는 것도 고려해야 할 요소”라고 말했다.

공수처가 힘있게 수사를 진행하기 위해선 수장 공백 사태를 해소해야 하지만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가 진통 끝에 윤석열 대통령에게 추천한 후보자들은 과거 이력으로 논란을 낳고 있다.

앞서 추천위는 8차례 회의 끝에 지난달 29일 오동운 변호사와 이명순 변호사를 공수처장 후보자로 선정했다.

오 후보자는 과거 미성년자를 상대로 상습 성폭행을 저지른 성범죄자를 변호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오 후보자는 언론을 통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으로 피해자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문제 있는 변론이라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과거 검사 재직 당시 윤 대통령과 함께 ‘불법 대선자금 수사팀’에서 근무한 경력이 문제가 됐다. 당시 수사팀 멤버들은 ‘우검회’(우직한 검사들의 모임)라는 친목 모임을 만들었는데 모임에 윤 대통령과 이 후보자 뿐 아니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원석 검찰총장 등도 속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 후보자가 공수처장으로 공정하게 현 정부 관련 사건을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이 후보자는 언론을 통해 근무 이력이나 경력이 윤 대통령과 다르고 우검회 해체 후 가까운 사이를 유지한 것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차기 공수처장은 윤 대통령이 두 후보자 중 한명을 지명하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하게 된다. 윤 대통령이 인사청문회를 요청하면 국회는 20일 안에 청문회를 진행해야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청문회 일정에 합의하지 못하면 차기 공수처장 임명이 총선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차기 공수처장 인선이 늦어지면서 공수처는 ‘대행의 대행의 대행’이 수장을 맡는 기형적 상황에 처했다. 앞서 지난 1월 김진욱 처장과 ‘처장 직무대행’ 여운국 차장이 잇따라 임기 만료로 퇴직하면서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직무대행의 대행’을 맡아왔는데 김 부장마저 사직서를 제출했다. 김 부장은 검사시절 수사기록을 유출한 혐의로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자 지난 4일 사직서를 내고 장기휴가를 떠났다. 이에 따라 송창진 수사2부장검사가 처장 대행 업무를 이어받았다. 송 부장이 맡았던 차장 업무는 박석일 수사3부장이 대행한다.

공수처 관계자는 “대행의 대행의 대행체제가 됐다”며 “불가피한 조치이긴 하지만 업무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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