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환의 동남아 산책

‘인도네시아 대선 2024’ 동남아스타일 정치의 결정판

2024-03-07 13:00:01 게재

2월 14일 인도네시아에서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동남아 최대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대선은 그 자체로 중요한데다, 특히 이번 대선은 사상 처음으로 총선과 동시에 실시돼 그 중요성이 배가됐다. 무엇보다도 대통령-부통령 세팀 중 압승을 거둔 72세의 프라보워 수비안토(Prabowo Subianto)와 37세의 러닝메이트 기브란(Gibran Rakabuming Raka)은 화제의 중심에 있던 인물들이었다. 또한 비교적 관점에서 보면 이번 대선이야말로 여러가지 의미에서 동남아스타일 정치의 ‘결정판’이라고 부르기에 딱 좋은 선거였다.

그러나 정작 선거는 싱겁게 결말이 나고 말았다. 초기 일부 개표를 통해 결과를 예측하는 퀵 카운트(Quick Count)에서 프라보워-기브란 팀이 58% 전후의 득표를 한 것으로 나와 결선투표 없이 당선이 확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개표 검표 확정과 공표에 통상 한달 이상이 소요된다.

젊은층 선호하는 소셜미디어가 큰힘 발휘

프라보워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대승을 거두리라는 예측은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조코 위도도(Joko Widodo, 조코위) 현 대통령의 장남인 기브란을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지난해 10월 말까지 프라보워는 인도네시아 여당이자 제1당인 투쟁민주당(PDI-P) 후보 간자르(Ganjar Pranowo)와 여론조사에서 백중세를 보이고 있었다.

비록 조코위는 단 한번도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천명한 적이 없지만 아들의 러닝메이트 수락으로 프라보워에 대한 지지를 명확하게 드러냈다. 불과 4개월 반 뒤에 실시된 실제 선거에서 무려 20%를 더 획득한 것은 순전히 조코위의 지지와 지원 효과였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다.

조코위 대통령은 집권 마지막 해인 올해까지 국정지지도 80%에 달하는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실용주의 경제정책, 지속적인 경제성장, 가시적인 인프라 건설 등 성과 덕분이라고 하나 재선 10년 동안 한번도 60%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으니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무조건적 사랑을 받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엄격한 잣대로 보면 성과에 못지않는 실정도 많았기 때문이다.

조코위의 개인적인 인기 못지 않게 인구학적 변화도 중요하다. 인도네시아 유권자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40대 이하의 젊은 층은 프라보워에 대해 제기된 동티모르 파푸아 자카르타에서 일어난 납치 실종 학살사건과 의혹을 잘 알지 못한다. 프라보워는 젊은층이 선호하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불안정한 정서와 공격적인 성향의 위험 인물”로 낙인찍혔던 자신의 과거 이미지를 “껴안아주고 싶을 정도 귀여운 할아버지(kakek gemoy, cuddly grandpa)”로 바꿔놓는 데 성공했다. “중국인을 배척하고 전투적이고 과격한 무슬림 지도자를 가까이하며 대중을 선동하던 포퓰리스트”는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정치인”으로 탈바꿈했다. 이 또한 불과 3~4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였다. 필리핀을 망가뜨린 부패한 독재자의 아들 마르코스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소셜미디어는 인도네시아에서도 큰 힘을 발휘했다.

왕가 건설이 목표였던 조코위가 연출

사실 그 변화의 과정에는 인도네시아인이나 동남아인들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정치적 전개가 있었다. 프라보워는 대선 삼수생이다. 2014년과 2019년 두차례 출마해 모두 낙선했다. 두번의 패배에 모두 승복하지 않아 지지자들의 시위와 폭동이 뒤따랐고, 헌법재판소에 제소해 패소했다. 특히 2019년 대선에서는 무려 10%p 이상 차이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흥분한 지지자들을 방임한 결과 8명이 죽고 737명이 부상당하는 극단적인 소요사태로 발전했다. 두 차례 상대후보는 현 대통령 조코위였다.

조코위는 프라보워를 비난하거나 책임을 묻는 대신 직접 만나 화해를 청하고 급기야는 새로운 내각에 국방장관직을 제안해 수락을 받았다. 그로부터 정확하게 4년 뒤인 2023년 10월, 조코위의 장남 기브란은 프라보워 대통령후보가 제안한 부통령후보직을 수락했다. 이 그림자극(와양꿀릿)의 연출(달랑)은 물론 조코위였다.

프라보워-기브란 조합이 기상천외한 까닭은 조코위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주고 여당 기능을 수행한 정당은 엄연히 제1당 민주투쟁당(PDI-P)이며 이 정당의 대통령 후보는 프라보워와 경합을 벌인 간자르다. 대통령이 자기가 속한 정당의 공식 후보를 지원은 못할망정 자신의 아들을 내세워 상대후보의 당선을 돕는다면? 게다가 절대적인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던 대통령이 상대후보 쪽에 서면 여당이 패배할 것이 뻔한데, 이 전개를 보고도 침묵한 여당 후보 간자르, 당수 메가와티, 평소 전투적이던 여당 지지자들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지만 이 기묘한 조합에 의아해하는 인도네시아인들은 없는 것 같다. 대중은 대세를 따랐고 엘리트들은 십분 이해한 듯하다.

우리와 다른 문화나 전통을 이해할 수 없다고 그것에 기반한 행태나 선택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조코위가 간자르가 아닌 프라보워를 선택한 것은 복잡하지만 정확한 정치적 계산의 결과다. 간자르를 내세운 정당 PDI-P는 인도네시아 독립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인도네시아국민당(PNI)의 후신으로 창당인은 독립영웅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이고 현재 주인은 그의 딸 메가와티이며, 손주들이 상속받을 채비를 하고 있다. 아무리 인기가 높은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왕가(dynasty)를 빼앗기는 힘들다.

그래서 자신이 두 차례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자신의 왕가를 창건했다. 37세인 장남은 자신을 출세시킨 수라카르타 시장을 거쳐 2년 만에 부통령으로, 32세 사위는 인도네시아 3대도시 메단의 시장으로, 29세에 불과한 차남은 신생 정당 인도네시아연대당(PSI) 당의장을 맡아 올 하반기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소도시 데폭 시장에 출마한다. 프라보워의 정당 그린드라당(Gerindra, 위대한 인도네시아 운동)이 일찌감치 연대와 지지를 표명했다.

전쟁범죄 대통령의 변신은 가능한가

조코위는 10년이 채 안되는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왕가(왕조)를 건설하느라 여러가지 무리수를 두었다. 그러는 사이 조코위에 대해 기대를 걸었던 국내외 개혁주의자 민주세력 인권운동가들은 실망감에 등을 돌렸다. 조코위는 사법부 헌법재판소 부패척결위원회 선거위원회 등 독립적인 감시감독기관에 개입하면서 민주적 공고화를 저해했다. 특히 자신의 매제가 소장인 헌법재판소는 법률로 정해진 정·부통령 출마자격 나이제한을 40세에서 35세로 뜯어고쳐 장남의 출마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무엇보다 인도네시아 역사와 헌정사에 큰 오점을 남긴 프라보워와 타협하고 그를 차기 대통령으로 낙점한 것은 민주주의의 정신인 “포용과 타협”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프라보워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1974년 이후 수하르토 독재가 무너진 1998년까지 특전사령부 지휘관으로 근무하면서 동티모르와 파푸아 등지의 독립운동·분리주의 세력과 주민들에게 저지른 수많은 전쟁범죄와 인권탄압에 대한 주된 책임을 져야 할 인물이었지만 한번도 이로 인해 처벌받거나 기소된 적이 없다. 수하르토 체제가 무너진 1998년에는 학생운동가들을 납치 살해하고, 자카르타 폭동을 유도해 그 와중에 수많은 중국인들의 생명과 인권이 유린되는 과정을 방조 조장한 주범으로 몰려 미국으로부터 입국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이런 의혹과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프라보워가 몇달 후면 인도네시아 대통령에 취임한다. 최근 4년간 조코위 내각의 국방장관으로서 일하면서 보여준 - 과거의 포퓰리즘적 민족주의자가 아닌 - 실용주의적 국제주의자의 모습이나 대통령 후보로서 보여준 – 과거의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인종주의자가 아닌 – 포용적이고 온건한 태도가 단순한 이미지 개선이 아닌 근본적인 환골탈태였음을 다가올 5년 동안 충분히 증명해 주기를 고대해본다.

신윤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