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난차량 천국 캐나다, 시민들 ‘발동동’

2024-03-08 13:00:11 게재

연간 9만대 도난, 피해금액만 약 1조원 … 법무장관 차량도 세차례나 잃어버려

국경서비스국 조사요원이 컨테이너 안에 있던 도난 차량을 찾아내 확인시켜주고 있다.
캐나다에서 이미 일상화된 차량절도는 범행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연방 법무부장관 차량도 최근 3년 새 세차례나 도난을 당했다. 데이비드 라메티 전 법무장관이 몰던 도요타 하이랜더는 2021년 2월 도난 피해를 입었다가 운좋게 곧바로 회수됐다.

하지만 법무장관이 아리프 비라니로 바뀐 뒤에도 지난해 11월 등 두차례 더 도난피해를 입었다. 밥 해밀턴 국세청장의 2019년형 하이랜더도 2022년 도난을 당해 피해 차량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소재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연방정부는 캐나다에서 해마다 약 9만대의 자동차가 도난당하고 있다며, 피해금액을 10억캐나다달러(CAD, 약 9800억원)로 추산했다.

도난차량 눈앞에 두고도 회수 못해

광역 토론토에 사는 마이클 워커씨는 최근 집 앞에 세워둔 2023년형 토요타 타코마를 잃어버렸다. 다행히 그는 주변에서 차량절도가 빈발하자 차량 내부에 추적장치를 숨겨뒀다. 토론토 인근 철도기지에 있는 컨테이너 안에서 차량신호가 잡혔다. 경찰에 바로 신고했으나 차량을 회수하기까지는 무려 17일이나 걸렸다. 특히 차량 위치가 정확하게 확인됐음에도 영장없이 컨테이너를 열 수 없다는 이유로 절도범들이 움직일 때마다 애를 태우며 추적에 나서야 했다. 그래도 워커씨는 운이 좋았다.

CBC뉴스에 따르면 지난해 8월 토론토의 한 남성은 집 근처에서 2022형 GMC 유콘 차량을 도둑 맞았다. 같은 차종을, 같은 장소에서, 같은 해에 두번이나 잃어버린 것이다. 지난해 5월 같은 모델의 SUV를 도난당했던 앤드류(가명)씨는 8월 초 휴가를 보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진입로에 주차해둔 SUV의 스티어링 휠이 구부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수상하다고 생각한 그는 저녁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다른 차량을 이용해 앞을 가로막을 계획이었지만 SUV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었다.

이미 도난 피해를 경험한 앤드류씨도 차량 내부에 추적장치(Apple AirTag)를 숨겨뒀다. 스마트폰과 연결된 추적장치는 토론토 시내 곳곳에서 신호를 보내다 토론토 북쪽의 철도(CPKC) 터미널에서 멈췄다. 그는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관도 철도 차량기지 컨테이너에서 신호가 잡히는 것까지 확인했다. 그러나 경찰은 컨테이너를 수색할 권한과 영장이 없다는 이유로 차량을 회수하지 못했다. 앤드류씨는 철도경찰에까지 도움을 요청했으나 소용이 없었고 그 사이 차량을 실은 컨테이너는 몬트리올로 향했다.

사라졌던 추적장치 신호는 지난해 9월 초 유럽의 벨기에 앤트워프 항구에서 떴다. 같은달 26일 위치추적 신호는 토론토에서 약 1만1000㎞ 떨어진 중동 두바이 근처 항구에 나타났다. 앤드류씨는 차량을 되찾기 위해 두바이의 사립탐정과 인터폴에까지 도움을 요청했다. 얼마 후 사립탐정은 트럭 옆에 주차된 유콘 사진을 보내왔다. 앞 유리를 통해 보이는 차량식별번호(VIN)는 앤드류씨가 도난 당한 차량의 번호와 일치했다. CBC뉴스는 이 차량이 두바이 근처에서 약 8만CAD에 판매된 것을 확인했다.

CBC뉴스는 철도공단과 토론토경찰, 국경서비스국(CBSA) 등 여러 기관에 이 사건과 관련해 질문했으나 대부분 답변을 받지 못했거나 “조사 중”이라는 대답만 들었다고 전했다.

차량절도 대응 시스템 실패

지난 2월 8일 오타와에서는 연방정부와 여야 정치권, 지방자치단체, 사법기관 등 관계자들이 모여 자동차절도 피해 대책회의를 열었다. 쥐스탱 트뤼도 연방총리는 이 자리에서 가나와 나이지리아 등 캐나다에서 사라진 차량이 거래된 것으로 확인된 일부 아프리카 지역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지난 수년간 드러난 피해 증가는 우려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동차 절도를 막는 것은 법 집행 기관이나 국경서비스국, 항만, 자동차 제조업체 및 보험회사 등이 힘을 모을 때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방경찰도 더 이상 자동차 절도 피해를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강력한 대처와 처벌을 강조했다. 연방정부는 차량절도를 막을 구체적인 대책을 곧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차량절도가 가장 빈번한 온타리오 주정부는 피해예방 노력에 지난 3년 간 1800만CAD를 지출했다고 밝혔다. 또한 절도단을 근본적으로 뿌리 뽑기 위한 태스크포스까지 출범시켰다. 자동차 보험회사들은 운전자들에게 차량에 추적장치를 설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토론토에서 도요타 타코마 차량을 두차례나 도난당했던 마이클 워커씨는 “차량 안에 추적장치를 설치할 수는 있지만, 결국 경찰이 재빠르게 움직이지 않는다면 돈 낭비에 그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자신의 차량이 실린 컨테이너 앞에서 5시간을 기다렸다. 그러나 경찰은 “모든 서비스 요청은 출동 우선순위에 따라 분류된다”며 “이번 차량도난 사건의 경우 용의자가 현장에 없거나 부상자가 없는 경우로 대응 과정에서 최우선 순위가 아니다”라고 했다. 캐나다철도청은 이 사건과 관련해 언급을 거부했고, 결국 국경서비스국 관계자들이 컨테이너를 열고 그의 트럭이 안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까지 2주 이상 걸렸다.

이처럼 복잡한 관할권 문제도 늦장대처를 부추긴다. 국경서비스국은 항만에서 선적하는 컨테이너를 검사할 책임이 있고, 도난으로 의심되는 차량이 컨테이너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관리관이 검사할 때까지 세관통관이 보류되기도 한다. 국경서비스국 관계자는 “특정 상황에서는 관할 지역경찰이 수색을 실시할 수도 있다”고 밝혔지만 지역경찰측은 철도기지나 항구는 어디까지나 연방 관할에 속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지역경찰이 컨테이너를 수색하기 위해서는 철도경찰, 국경서비스국과의 협조가 먼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2월 초 열린 연방정부 대책회의에는 주목할 만한 보고서가 공개됐다. 국경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다루는 수사관들의 기본훈련이 부족하다는 감사결과였다. 국경서비스국 감사보고서는 최근 수년 동안 캐나다의 항구와 국경에서 범죄를 추적하는 임무를 맡은 대부분의 범죄 수사관들이 기본훈련조차 받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들은 여행자나 수입업자 수출업자 등의 국경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검찰청(PPSC)에 사건을 넘기는 일을 하지만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범죄 수익은 높은데 처벌은 약해

퀘벡주 몬트리올에 본사를 둔 차량추적장치 개발업체 측 관계자는 “아마도 캐나다에는 세계 최고수준의 자동차 도둑들이 몰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업체는 지난해에만 온타리오에서 400대, 퀘벡에서 375대의 도난차량을 회수했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토론토에서 도난당한 차량은 1만2170대다. 그중 4494건은 주거지에서 발생한 절도였다. 토론토경찰은 지난해 9월 이후 차량탈취 전담반을 운영하면서 89명을 체포하고, 차량 109대를 회수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경찰의 실적은 도난 피해와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캐나다보험국(IBC)은 2022년 캐나다의 도난차량 보험청구액이 12억CAD를 넘었다고 밝혔다. 사상 처음으로 10억CAD를 돌파한 것이다. 온타리오주에서 청구된 7억CAD 중 약 5억CAD는 광역토론토 지역의 피해였다. 온타리오 운전자들이 지불하는 보험료 중 약 130CAD가 매년 도난 자동차 피해보상 청구를 해결하는 데 사용된다고 IBC는 밝혔다.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일부 보험사는 운전자들이 도난 추적장치 시스템을 설치하지 않을 경우 수백CAD의 추가 요금을 부과하기도 한다.

토마스 캐리크 온타리오주 경찰청장은 일반적으로 차량 절도범에 내려지는 형사처벌이 충분히 강력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 절도는 수익성은 높은 데 반해 위험도는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훔칠 차량을 식별하는 일종의 브로커들은 대당 100CAD 정도를, 수출업자는 1대당 최대 8만CAD를 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2019년형 레인지로버 SUV차량을 토론토 집 앞에서 세차례나 도난 당한 부동산중개인 크리스틴 셴셀씨는 “이 나라에서 이 자동차 절도로 큰돈을 벌지 못한다면, 범죄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물론 사법당국이나 보험회사, 심지어 자동차 제조사들도 절도 피해를 막는 데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김용호 언론인 캐나다 토론토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