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환조사 이종섭, 출금해제 수순 밟나

2024-03-08 13:00:36 게재

압수물 분석도 안 끝났는데 주호주대사 부임 전 서둘러 조사

공수처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 진실 규명 난항 우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전격 소환조사했다. 출국금지된 그가 주호주 대사로 임명되자 급하게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압수물 분석조차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진 한 차례 조사만으로는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기 어렵지만 이 전 장관은 조만간 출국할 예정이어서 향후 수사 차질이 우려된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전날 오전 9시부터 약 4시간 동안 이 전 장관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지난 4일 주호주 대사로 임명된 지 사흘만, 출국금지된 사실이 공개적으로 알려진 지 하루 만이다.

공수처는 이 전 장관을 상대로 당초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경찰에 이첩한 사건을 회수하도록 지시한 경위, 대통령실 등 윗선 개입 여부 등에 대해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장관은 조사 과정에서 업무수첩은 폐기했고, 휴대전화는 일부만 임의제출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집중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다 순직한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됐다. 그는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경찰에 넘기겠다는 해병대 수사단 보고서에 결재해놓고 하루 만에 이를 뒤집은 바 있다. 이른바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설’을 규명할 핵심 피의자이기도 하다. 앞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VIP(윤 대통령)가 격노해 어쩔 수 없다고 국방부 장관이 말했다’는 얘기를 해병대 사령관에게 들었다”고 주장했다.

실제 공수처는 이 전 장관의 휴대전화 통화 분석을 통해 지난해 7월 31일 대통령실로 추정되는 번호의 전화를 받은 뒤 채 상병 사건 수사결과 발표를 취소하라고 지시한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야당이 탄핵을 추진하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이 전 장관은 지난 4일 주호주 대사로 임명됐다. 하지만 뒤늦게 출금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대사 임명이 적절했는지, 대통령실의 검증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공수처는 지난 1월 국방부와 군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를 본격화하면서 이 전 장관과 함께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유재은 법무관리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김동혁 검찰단장, 박경훈 조사본부장 등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했다고 한다.

당초 공수처는 김 사령관과 유 법무관리관 등에 대한 조사를 먼저 마친 뒤 ‘윗선’인 이 전 장관을 불러 조사를 진행할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조사는 물론 압수물 포렌식 절차조차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전 장관에 대한 조사가 먼저 진행되면서 출금 해제를 위한 명분쌓기용 조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아랫사람부터 수사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윗선을 불러 진술을 받아내는 것이 일반적인 수사과정”이라며 “압수물 분석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소환조사해봐야 제대로 진술을 받기 어려운데 결국 출금 해제 명분을 얻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이미 호주 정부의 아그레망(외교 사절에 대한 주재국의 동의)까지 받아 조만간 출국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 전 장관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는 해제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소환조사 사실을 알리며 “이 전 장관은 앞으로 진행될 수사에도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전 장관이 일단 출국하면 추가 대면조사가 사실상 어려워진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군인권센터는 성명을 내고 이 전 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공수처 수사를 방해해 외압을 가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이 전 장관은 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핵심 피의자로 이 전 장관이 빠지면 진실을 밝히는 일에 난항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8일 이 전 장관 출금 해제와 관련해 “어제 조사를 간단히 받았다고 하고 개인적인 용무나 도주가 아니라 공적 업무를 수행하러 간다고 봤다”며 “그런 점을 다 고려해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본홍 김상범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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