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각국에 부는 신도시 건설 붐

2024-03-11 13:00:03 게재

지난 10년 전세계 91개 신도시 발표 … 정부뿐 아니라 유명인사들도 건설 동참

이집트가 건설중인 신행정수도 내에 들어선 국제올림픽시티 전경. 이집트는 이를 바탕으로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 신청을 준비중이다. 성사된다면 아프리카대륙에서 처음 국제올림픽이 열리게 된다. 사진출처:위키미디어커먼스
전세계 국가들과 기업들은 전후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신도시를 계획하고 있다. 이미 많은 도시가 건설중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91개의 신도시 건설이 발표됐다. 지난해에만 15개의 도시가 발표됐다.

이집트 북부에 들어설 신행정수도는 한창 공사중이다. 완공되면 650만명의 인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이집트는 이외에도 5개의 도시를 건설중이며 수십개 도시를 추가로 계획중이다. 인도는 8개의 허브도시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이라크의 경우 바그다드 외곽에 5개의 정착도시를 만들 계획이다. 첫번째 정착지가 최근 착공됐다.

신흥경제국들뿐 아니다. 미국 투자자들은 수년동안 비밀리에 캘리포니아 신도시를 위한 토지를 매입해 왔다. 또 억만장자 빌 게이츠는 애리조나 사막에, 월마트 전 임원인 마크 로어는 네바다 사막에 각각 스마트시티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재선에 도전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10곳의 ‘자유도시’ 건설을 제안했다.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인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도시를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본다. 그는 “돈과 재능의 응집체가 사회를 더 부유하고, 더 똑똑하고, 더 친환경적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기업은 고객과 더 가까워지고 사람들은 직장과 더 가까워지기 때문에 도시가 성장하면 경제도 성장한다. 경제학자들은 도시 인구가 2배 증가하면 생산성이 2~5% 향상된다고 분석한다.

낙후한 기존도시, 신도시로 해결

가난한 세계의 많은 지역에선 토지분쟁과 열악한 인프라 등으로 발전이 더디다. UN 전망에 따르면 2050년까지 전세계 도시인구가 25억명 더 늘어난다. 이미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는 기존 도시들에 이주민들이 더해지면 상황은 더 악화될 수 있다. 때문에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신도시 건설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선 대중교통을 이용한 통근시간이 1시간 이상 걸릴 정도로 혼잡하다. 전직 사모펀드 대표인 스티븐 제닝스가 나이로비 인근에 ‘타투’라는 신도시를 건설하는 이유다. 타투에는 이미 500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제닝스는 또 아프리카 5개국에서 신도시 7곳을 건설중이다.

선진국 도시들에도 나름의 문제가 있다. 실리콘밸리 투자그룹을 이끄는 골드만삭스의 얀 슈라멕은 “‘캘리포니아 포에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샌프란시스코 외곽의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는 미국 서부해안의 극심한 주택부족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투자자 그룹엔 애플 전 CEO 스티브 잡스의 미망인 로렌 파월 잡스, 링크드인 공동창업자인 리드 호프만, 벤처투자자 마이클 모리츠 경 등이 포함됐다. 이 그룹은 올해 11월 ‘주택과 일자리, 청정에너지’ 계획을 공개투표에 부칠 예정이다. 이 계획이 승인되면 현재 농지였던 6만에이커(약 7345만평) 부지에 최대 40만명 주민이 거주할 수 있게 된다. 슈라멕은 “기존 인프라를 개조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든다”며 “주택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면 재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포에버는 도시생활 개선을 목표로 하는 여러 계획도시 중 하나다. 이 프로젝트는 주민들이 자동차 없이도 학교와 직장, 상점에 갈 수 있는 고밀도 개발을 표방하고 있다. 오늘날 도시를 건설하는 사람들은 도보접근성, 즉 ‘15분 도시(15-minute city)’가 중요한 포인트라고 판단하고 있다. 인도의 ‘돌레라’나 빌 게이츠의 애리조나주 ‘벨몬트’처럼 일부 계획도시들은 스마트시티를 내세우고 있다. 센서를 이용해 주민들을 교통체증에서 벗어나게 하거나 가장 친환경적인 샤워 시간을 알려주는 등의 기능을 갖춘 도시다.

도시건설에 사회적 실험도 겸해

몇몇 프로젝트는 사회적 실험을 겸하고 있다. 마크 로어가 짓고 있는 ‘텔로사’(최고의 목적을 뜻하는 그리스어)는 개인 소유권을 없애는 대신 공동신탁으로 토지를 보유하며, 임대료로 얻은 수익을 공공서비스에 사용할 계획이다. 지중해에 계획중인 신도시 ‘프락시스’(실천 속의 이론이라는 뜻의 그리스어)는 ‘인류를 위한 더 활기찬 미래를 창조한다’는 이상을 표방하며 투자자들로부터 1900만달러를 모금했다.

한 민간기업은 온두라스에 ‘인류 번영의 극대화’를 목표로 암호화폐를 허용하는 자유주의 경제특구인 ‘프로스페라’를 건설하고 있다. 프락시스와 프로스페라는 2019년 신도시 투자를 위해 설립된 벤처투자펀드인 ‘프로노모스(Pronomos)’의 자금지원을 받고 있다. 이 펀드는 시카고학파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의 손자인 패트리 프리드먼이 운영한다. 억만장자 투자자 마크 안드레센과 피터 틸도 이 펀드에 참여하고 있다.

안드레센과 로어, 틸은 도시 운영방식에 대한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부유한 개인들이다. 하지만 정부도 그같은 실험을 원한다. 2010년대에는 풍부한 자본과 낮은 이자율 덕분에 각국 정부가 저렴하게 자금을 빌릴 수 있었다. 현재는 금리가 높아졌지만, 각국은 서로를 모방하며 도시건설에 대한 열정을 이어나가고 있다. 국가재정을 활용해 국내경제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신도시 건설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금융서비스, 제조업, 관광업 등 자국에 부족한 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여러 신도시를 건설하고 있다. 사막에 170㎞ 길이의 건물로 구성된 ‘네옴(NEOM)’은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도시다.

이집트 신행정수도는 국가 관료조직을 위해 특별히 건설되고 있다. 이집트정부는 수도 카이로의 교통혼잡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수도를 기존 자카르타에서 ‘누산타라’로 옮기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나 이집트의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은 새로운 수도 건설을 통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동시에 자신의 업적을 드높이려 한다.

엘살바도르는 암호화폐 도시건설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비트코인으로 이자를 지급하는 채권을 판매할 계획이다. 부탄왕국은 지난해 12월 불교의 상징인 만다라가 반복되는 기하학적 패턴으로 설계된 ‘마음챙김 도시(mindfulness city)’를 건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중국 최대 국영 건설기업인 ‘중국건축공정총공사(CSCEC)’가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중동에서 도시건설을 도맡으면서 공사비가 크게 낮아졌다진 점도 도시건설 붐의 한 이유다.

돈 많이 드는 애물단지 우려도

전기와 인터넷, 도로 등 인프라는 주민이 입주하기 전 갖춰져야 한다. 때문에 초기비용이 많이 든다. 캘리포니아 포에버 프로젝트는 토지매입에만 10억달러가 들어갔다. 1단계 건설공정에만 10억~20억달러가 추가될 것으로 전망된다. 네바다 사막에 텔로사를 건설하려는 마크 로어는 초기 투자금으로 250억달러를 모아야 할 것으로 예상한다. 빈 살만 왕세자는 초기 비용 319억달러를 네옴시티에 투자할 계획이다.

하지만 열정과 자금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럴 경우 거대한 프로젝트는 자칫 ‘하얀 코끼리(비용만 많이 들고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 이집트 경제가 흔들리면서 600억달러 규모의 신행정수도 프로젝트 진행속도가 크게 느려졌다. 말레이시아 포레스트시티를 맡은 중국 개발업체는 2023년 부도를 내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성공한 도시건설 프로젝트엔 공통점이 있다는 분석이다. 20세기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나 인도 펀자브주 주도 찬디가르의 경우 정부기관들이 대거 옮겨가면서 도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됐다. 두 도시 모두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브라질과 인도 사람들은 새로 생긴 도시로 적극 이주하면서 힘을 보탰다. 브라질리아 인구는 매년 1.2%씩 증가하고 있다. 전국 평균의 2배를 넘는다. 찬디가르는 현재 인도에서 1인당소득 기준으로 4번째 부유한 지역이다.

부채를 지기보다 지분참여를 꾀하는 경향도 보인다. 케냐 신도시 타투를 건설중인 제닝스는 프로젝트 지분을 팔고 있다. 그는 “50년이라는 시간을 내다보고 있다”며 “보통 10년 미만의 투자기간을 갖는 사모펀드 투자자가 아니라 친구 등 지인들로부터 자본을 조달했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포에버는 출자금으로만 100% 자금을 조달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타투와 캘리포니아 포에버가 성공하면 투자자들은 보상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그곳에 입주하게 될 주민들도 혜택을 누린다. 이것이 바로 도시가 주는 영광”이라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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