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견 칼럼

아직도 멀고 먼 우리의 ‘금융 국제경쟁력’

2024-03-12 13:00:01 게재

세계 곳곳에서 부동산거품이 터지면서 해외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에 투자했던 국내 금융업체들이 유탄을 맞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S&P는 지난주 말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의 신용등급전망을 강등했다. 이들이 국내외 부동산투자에서 막대한 손실 위험에 직면했다는 이유에서였다. S&P는 특히 미래에셋이 수천억원대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진 해외부동산 투자에 대해 “해외대체투자 관련 신용위험이 크다고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 증권사들의 해외 상업용 부동산 익스포저는 주로 미국과 유럽에 분포되어 있다. 2023년 4분기 미국의 사무실 공실률은 더딘 사무실 점유율 회복으로 인해 약 20% 수준으로 상승했다”고 덧붙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금융사의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잔액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56조4000억원에 달한다. 투자대상은 대부분 상업용 부동산이다. 대다수 투자지역에서 상업용 부동산값이 급락하면서 막대한 손실이 우려되고 있다.

S&P는 국내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도 “향후 1~2년 내에 크게 반등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다”며 이미 상당한 손실을 보고 있는 국내 금융업체들의 손실이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부동산거품 파열이 중국·홍콩주가 급락으로 이어지면서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한 국내 금융업체와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안겨주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홍콩 H지수 기초 ELS 판매잔액은 39만6000계좌에 18조8000억원에 달한다. 판매사별로는 은행이 24만3000계좌 15조4000억원 상당, 증권사가 15만3000계좌 3조4000억원 상당을 판매했다. 65세 이상 고령투자자에 판매된 계좌는 21.5%인 8만4000계좌다.

올해 들어 2월까지 홍콩 H지수 기초 ELS 만기도래액 2조2000억원 중 총 손실금액은 1조2000억원, 누적 손실률은 53.5%다. 지난달 말 현재 지수(5678포인트)가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추가 예상 손실금액은 4조6000억원 수준으로, 전체 예상 손실금액은 6조원에 육박한다.

외환위기 후에도 국제경쟁력은 제자리

이같은 해외투자 손실은 아직 우리나라 금융사들이 구미의 투자은행들과 같은 ‘국제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금융 국제경쟁력’은 우리 금융계의 오랜 과제였다. 특히 1997년 IMF 외환위기가 국제 금융계에 무지한 결과였다는 자성 때문에 그러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4반세기가 지났지만 최근 발생한 일련의 해외투자 손실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의 금융 국제경쟁력은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2007년 미국 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해 미국 거대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자 한 국내 유력지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리먼 브라더스를 인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먼을 인수해 월가에 들어가면 단박에 세계 최고의 금융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황당한 주장이었다. 리먼의 잠재 부실이 얼마인지는 월가조차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리먼은 청산과정을 밟았고 숨겨진 잠재부실은 무려 60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유력지 말을 믿고 리먼을 인수했다면 우리나라는 제2의 IMF사태를 겪어야 했을 뻔했다. 이렇듯 우리의 금융 국제경쟁력은 금융계든, 주류 언론이든 일천한 수준이다.

IMF사태 때 금융계에 스타가 출현했다. 증권사 사장이던 김정태씨는 주택은행장을 맡아 월가보다도 혹독한 심사기준으로 숨겨진 부실을 모두 드러내 ‘적자 발표’를 하면서 국내은행들의 흑자 발표에 강한 불신을 갖고 있던 외국인투자가들을 매료시켰다. 그후 주택은행 주가는 외국인 매수로 수직상승했고, 그 여파로 국민은행까지 인수해 국내 굴지의 리딩뱅크가 됐다.

다음 김 행장이 눈을 돌린 것은 해외진출이었다. 그는 당시 위기에 처해있던 인도네시아의 두번째 규모 은행을 인수했다. 금융당국 및 세간의 반대와 우려가 컸다. 왜 투명하지 않은 후진국 부실은행을 사들이는 거냐는 비판이었다. 이때 김 행장의 답은 “은행의 투명도는 그 나라 경제성장과 정비례한다”였다. “자원대국 인도네시아는 앞으로 계속 고속성장을 할 것이고,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민주주의도 함께 발전해 사회의 투명성이 높아질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은행 투명성도 높아져 잠재부실도 줄어들게 되니, 지금이 투자 적기”라는 것이었다.

정확한 상황 판단 따라 장기접근 해야

그의 판단은 정확했고, 그의 강퇴 후 후임행장이 금융당국의 눈총을 받고 있던 인도네시아 은행을 서둘러 팔아치웠지만 불과 몇년 새 인수가격보다 3배 이상 남는 막대한 차익을 거둘 수 있었다. 지금도 국민은행 사람들은 인도네시아 은행을 팔아버린 것을 가슴 친다.

국제 금융경쟁력은 한탕주의로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정확한 상황판단에 따라 장기적 접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직도 우리 금융당국과 금융계는 모르는 것 같다.

뉴스앤뷰스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