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트럼프식 통상과 ‘히트 앤드 런’ 전략

2024-03-12 13:00:13 게재

워싱턴에서도 트럼프 2기 가능성에 대한 논쟁과 대비가 한창이다. 여러가지 혼란스러운 캠페인 공약과 레토릭이 남발하고 있지만 몰려오는 파도의 현상보다는 그 파도를 만드는 바람의 방향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바람의 방향은 바이든 트럼프 공히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이는 그간 진행되어 온 미국사회 저변의 변화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1, 2기의 산업통상정책의 키워드는 무역적자 축소, 제조업 부흥, 중국과 전략경쟁으로 일관성이 있다. 트럼프 1기 백악관 출신 한 전직관료는 트럼프가 부동산 사업을 하던 1980년대에 뉴욕타임스 등에 무역적자 급증과 자유무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전면광고를 사비로 할 정도로 소신이 강하다고 전했다. 1기에서는 목적지로 가는데 운전이 미숙해 접촉사고 등이 잦았다면 이제는 경험이 쌓인데다 최단코스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위성항법장치(GPS)를 장착했다. 그 GPS가 관세인상 환율 수출통제 투자통제, 그리고 미국기업 위주 산업정책 등의 정책수단들인 셈이다.

바이든도 트럼프도 국가안보 경제안보 논리 휘둘러

또 하나의 비밀병기가 있다. 최근 들어 바이든 트럼프 구분없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국가안보’ ‘경제안보’ 논리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신일본제철의 유에스스틸(U.S. Steel) 인수, 중국 기업인 틱톡 앱 사용, 미 항구의 중국산 크레인 수입, 중국산 전기차, 핵심광물 등의 사안들에 ‘국가안보’ 위협이라는 잣대로 금지 또는 제한이 가해질 분위기이다. 미국법 체계에는 국가안보 위협이나 긴급 경제위기 시 대통령이 관세인상 등의 일방적 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 다양한 법들이 있다. 트럼프 1기 당시 서고에 먼지에 덮여있던 1962년 무역확장법을 근거로 국가안보에 근거한 철강 232조를 부과한 것이 좋은 사례다.

이렇게 트럼프 세계관 아래 철학 목표 수단을 조합해 보면 트럼프 2기의 예상 운행경로가 개략 나온다. 얼토당토 안해 보이는 모든 국가에 10% 이상의 기본관세를 물리겠다는 것도 이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라이사이저 전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주장처럼 법에 근거해 지난 24년 간 약 18조달러가 누적된 미국의 무역적자로 인한 긴급 경제위기 상황을 선포하고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미국 역사에도 이미 이런 선례가 있다. 1971년 닉슨행정부는 무역적자가 심화됨에 따라 브레튼우즈 체제 아래서 미국 달러를 금으로 태환하기로 했던 것을 중지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으로 모든 수입에 10% 관세를 부과한 적이 있다.

필자가 트럼프 1기 당시 미국 상무관으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위기, 그에 이은 개정협상, 철강 232조 협상 및 자동차 232조 부과 위기 등을 겪으면서 얻은 교훈은 ‘최대한 실용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나라가 트럼프 쇼크로 혼란을 겪던 초기에 우리는 미국의 무역적자 논리와 한미FTA 개정에 반대하던 입장을 바꿔 협상에 나섰고, 철강 쿼터제를 수용하며 신속하게 타결했다. 타결 직후 한국이 왜 자유무역 원칙에 어긋나는 쿼터제를 수용했냐며 냉소적이던 주요국 대사관들도 나중에는 한국이 초기에 스마트하게 잘 빠져나간 것 같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 기업들은 경쟁국들이 무역전쟁의 혼란을 겪는 수년의 기간 동안 안정화된 한미 통상환경 아래서 상대적 이익을 향유할 수 있었다. 야구로 따지면 어려운 경기를 만나 홈런을 노리기보다는 ‘히트 앤드 런’으로 실속을 챙긴 셈이다.

통상정책이 산업정책이고 경제안보정책 되는 시대

미국 정치에 밝은 한 워싱턴 로비스트는 반 농담조로 현 미국정치 상황에서 8개월여 남은 것은 일반인에게는 평생이 남은 거나 마찬가지니 두고 봐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년 이맘 때 백악관의 주인이 누가 되건 미국의 세계관과 경제통상의 패러다임이 이렇게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통상정책이 산업정책이고 경제안보정책이 되는 시대가 왔다.

여한구 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위원 전 통상교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