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재건축시장, 공사비 갈등으로 '몸살'

2024-03-12 13:00:03 게재

160개 현장 중 50곳 증액 신청

나머지 단지도 증액 ‘시간 문제’

서울 재건축 시장이 공사비 전쟁을 치르고 있다.

12일 내일신문 취재 결과 서울시가 도시정비법에 따라 관리하는 160개 사업장 가운데 50곳에서 시공사의 공사비 증액 요청이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른 사업장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시 관계자는 “나머지 사업장도 시간 차와 금액상 차이만 있을 뿐 증액 요청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 현대건설은 최근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 조합에 2조6363억원에 책정했던 공사비를 4조776억원으로 증액해달라고 요청했다. 약 55%가 인상된 것으로 3.3㎡(1평)당 공사비가 548만원에서 829만원으로 뛰었다.

서울 정비사업 시장에서 공사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 1월 서울 은평구 한 주택재개발 현장이 공사비 미지급 문제로 공사가 중단된 모습. 연합 류영석 기자

이미 계약을 한 곳도 예외는 아니다. 치솟는 자재값과 물가 인상 등 때문에 기존 계약을 무시하고 새 계약을 추진하는 곳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서초구 신반포22차는 조합이 시공사인 현대엔지니어링과 평당 1300만원 선에서 증액 폭을 저울질 중이다. 이 단지 역시 당초엔 평당 약 500만원에 공사비를 책정했지만 3배 가까이 높아졌다.

공사비 인상은 주민들 사이에 내분을 부채질 한다. 시공사 요구를 수용해 공사비 인상 계약서에 서명한 기존 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새로 구성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현실성 없는 공사비 동결로 되레 시공사가 손을 떼게 만들어 재건축 사업에 지장을 초래한 조합이 퇴출되기도 한다.

재건축 사업 과정에서 공사비 인상은 드문 일은 아니다. 조합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설계를 변경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마감재를 고급화하는 과정에서 기존보다 공사비가 인상되는 경우도 잦다. 하지만 최근 갈등이 심화되는 것은 공사비 인상 폭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시공사측도 할 말은 있다. 선정된 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비용을 현실화해야 하거나 유행 변화에 따라 내장재나 마감재를 고급화해달라는 주민 요구도 반영해야 한다. 용적률 변경 등으로 지어야 할 아파트 동수가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조합 입장에선 부담이 커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특히 소규모 단지의 피해가 크다. 조합원 수 자체가 적기 때문에 가구별로 돌아가는 분담금 액수가 크게 치솟는다.

또다른 문제는 공공기여 축소다. 수익성 악화를 우려한 조합이 임대주택이나 단지 대형화에 따른 인프라 확보에 적정 수준의 기여를 해야 하는데 이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500조 서울 재건축시장 ‘흔들’ = 정비업계에선 현재 서울 재건축 시장 규모를 500조원 정도로 추산한다. 압구정 등 대형 단지는 건설비와 이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각종 2차 건축시장 규모가 5조원을 훌쩍 넘긴다. 부동산 업계에서 “공사비 갈등이 재건축 사업 전반에 지장을 초래하면 건설 경기는 물론 연관된 각종 경제 활동에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더 큰 문제는 연쇄 부작용”이라고 지적한다. 갈등 때문에 공사가 중단되면 집을 헐고 이사갔던 주민들 이주 기간이 길어지는데다 공급이 부족해져 전세대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서울시가 갈등 중재에 나섰다. 11일부터 정비사업 현장 8곳을 직접 방문해 조사하기로 했다. 한국부동산원이 전담하던 공사비 검증에 서울주택도시공사가 참여하는 방안도 서둘러 마련했다.

양지영 R&C 연구소장은 “공공의 중재에 한계가 있지만 그렇다고 방치하거나 뒤늦게 개입하면 더 큰 후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모든 사업장에서 공사비 증액 요청이 예상되는 만큼 갈등이 본격화되기 이전에 조합과 시공사 간 조율을 추진하는 등 적극적인 선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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