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채상병 사건’ 수사차질 우려

2024-03-13 13:00:04 게재

이종섭 출국 … 수장 공백 장기화

공수처 “주어진 조건에서 수사 최선”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주호주 대사로 임명돼 출국하면서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수사 의지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 전 장관이 이미 해외로 나간데다 공수처장 공백 사태마저 장기화되면서 수사 차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수처 관계자는 이 전 장관에 대해 “반드시 추가 대면조사가 필요하다”며 “소환조사가 원칙이라는 수사팀의 입장은 확고하다”고 밝혔다. 12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다. 지난 4일 이 전 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에서부터 7일 4시간 가량의 공수처 조사, 8일 법무부의 출국금지 해제, 10일 출국까지 일련의 과정이 속전속결로 진행된 뒤 공수처가 내놓은 첫 공식입장이다.

공수처가 수사의지를 재차 밝혔지만 수사 전망은 어둡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집중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다 순직한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됐다. 그는 지난해 7월 30일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경찰에 넘기겠다는 해병대수사단 보고서에 직접 결재했다가 윤석열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음날 언론 브리핑을 전격 취소시키는 등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수사 외압의 당사자이자 윤 대통령의 연루 의혹을 규명할 핵심 피의자인 셈이다.

그런 이 전 장관이 갑작스럽게 출국하면서 공수처 수사 일정은 이미 틀어진 상황이다.

공수처는 지난 1월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유재은 법무관리관,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 등을 압수수색하며 수사를 본격화했다. 당초 공수처는 이들을 먼저 조사하고 ‘윗선’인 이 전 장관을 불러 조사할 것으로 예측됐다. 아랫사람부터 수사해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윗선을 불러 진술을 받아내는 것이 일반적인 수사과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전 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 사실을 언론보도로 알게 된 공수처는 이 전 장관부터 불러 조사했다. 사전 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진행된 이 전 장관에 대한 조사는 4시간 정도에 그쳤다. 수사팀이 원하는 만큼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공수처도 인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수처는 추가 소환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공수처 관계자는 “물리적 거리는 있지만 외교관들도 국내로 들어올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며 “크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이 추가 조사에 적극 협조하기로 한 내용이 수사기록에 다 담겼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미 출국한 이 전 장관이 향후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지는 불확실하다. 이 전 장관은 소환조사에서 본인의 입장이 담긴 진술서와 휴대전화를 제출했는데 그가 제출한 휴대전화는 사건 당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이후 교체한 새 휴대전화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장관은 당시 사용하던 업무수첩도 폐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본인의 휴대전화와 업무수첩을 폐기한 것은 증거인멸죄로 처벌하기 어렵지만 구속 사유 상 증거인멸 우려에는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수처장 공백이 길어지는 것도 변수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가 진통 끝에 지난달 29일 윤 대통령에게 2명의 후보자를 추천했지만 윤 대통령은 2주 가까이 지나도록 최종 후보를 지명하지 않고 있다. 국회 인사청문회 일정을 고려하면 4월 총선 이후에나 차기 공수처장이 임명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장이 없다보니 속도감 있게 수사를 진행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앞서 공수처 관계자는 “여러 가지 주어진 조건에서 수사에 최대한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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