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친○’보다 오래 기억될 바보들

2024-03-18 13:00:03 게재

총선을 한달 앞둔 정신 없는 선거판이지만 ‘바보’ 이야기를 꼭 짚고 가고 싶다. 민주당 바보 박용진 의원, 국민의힘 바보 하태경 의원 이야기다. 두 사람이 ‘바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유는 각자 다르지만 이른바 ‘친명’이니 ‘친윤’이니 하는 각 당의 주류와는 다른 자신의 길을 갔기에 바보 소리를 듣게 된 점은 같다.

박 의원은 민주당에서 재선을 지냈지만 어느 계파에도 딱히 속한 적 없는 비주류였다. 조국 사태를 비판했다가 당 지지층에게 문자폭탄을 받았고, 이재명 대표의 불체포특권 포기 공약 이행을 요구했다가 비명 딱지가 붙여졌다.

공천 국면에서 하위 10% 통보를 받았다.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 비리유치원 문제를 끈질기게 파고들었던 박 의원이 왜 하위 10%냐는 의아함이 컸지만 어쨌든 경선을 치렀다. 박 의원은 30% 감점의 벽을 넘지 못해 ‘친명’ 정봉주 당 연수원장에게 패했다. 이후 정 연수원장의 각종 막말이 드러나 공천 취소되는 코미디가 이어졌지만 비주류 박 의원은 여전히 배제되는 분위기다.

박 의원은 스스로를 바보라 칭했다. “이 구박과 모욕을 당하면서도 민주당에 남아 있는 바보”(동아일보 인터뷰)란다.

국민의힘 공식 바보는 하태경 의원이다. 하 의원은 3선을 지낸 부산 해운대갑 지역구를 떠나 서울에 출마했다. 서울 중성동을에서 3자경선 후 결선에 올랐고, 이혜훈 전 의원에게 0.71%p 차이로 패했다. 이 전 의원이 결선 여론조사에서 지지자들에게 성별 연령을 거짓으로 응답하도록 권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당의 여론조사 표본에 고연령층이 과대하게 반영됐다는 사실이 추가적으로 밝혀졌지만 소용 없었다. 국민의힘은 하 의원의 이의제기를 기각하고 이 전 의원 공천을 유지했다. 하 의원은 당의 결정을 수용했다.

하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민의힘을 휩쓸었던 중진희생론에 거의 유일하게 응답한 3선 중진이지만 그의 험지 출마 도전이 실패하자 당내에선 ‘역시 버티는 게 최고’라는 평이 나온다. 하 의원도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자신에 대해 “바보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정치권은 전쟁통이다. 지역 선거사무소 개소식이 잇따르고, 경쟁자의 흠집을 찾고 자신들의 강점을 호소하는 후보자들의 입장문이 쏟아지고, 여론조사와 지역·중앙 이슈의 흐름을 봐 가며 공중전을 벌이는 중앙당 논평까지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온다. 그야말로 말의 성찬이다.

당장의 승패가 중요하고 권력이 향방이 중요한 정치권에서 두 사람의 바보 스토리는 금방 덮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지더라도 원칙을 지키며 새로운 길을 모색했던 정치권의 ‘원조’ 바보들의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것을 보라. 아마 이들의 이야기도 ‘친○’들보다는 훨씬 오랫동안 기억되지 않을까.

김형선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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