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표준계약서로 공사비 갈등 줄인다

2024-03-19 13:00:18 게재

공사중단·사업지연 사태 대응

구청장 분쟁조정 기능도 강화

공사비 갈등으로 인한 재건축·재개발 사업 지연 사례가 속출하는 가운데 서울시가 조합과 시공사 간 분쟁을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공사비 문제로 사업이 멈춰선 서울 은평구 대조1구역 주택재개발 현장이 최근 공사 재개를 결정했다. 이르면 오는 5월 재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연합뉴스

서울시는 공사비 분쟁을 줄이고 정비사업이 지연 또는 중단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표준공사계약서를 개정해 현장에 배포한다고 19일 밝혔다.

앞서 시는 2011년에 공사계약 체결 시 가이드라인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공사비 산출 근거 공개 등 내용을 담은 표준공사계약서를 마련했다. 공사비 분쟁이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자 국토교통부도 올해 1월 표준계약서를 배포했다. 개정한 표준계약서는 기존 내용에 공사비 갈등과 공사 중단 사태를 막기 위한 대책이 추가된 것이다.

개정된 표준계약서에 따르면 정비사업 주요 단계별로 공사 변경내역을 점검하도록 했다. 필요하면 검증제도를 활용한다. 한국부동산원 또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 공사비 검증을 의뢰할 수 있다. 또 분쟁을 사유로 한 착공지연·공사 중단 행위를 제한했다. 일방 통보가 아닌 상호 협의에 의한 사업 추진을 의무화했다. 구청장의 분쟁 조정 기능도 강화했다. 현행법상 공사비 갈등 중재 주체는 기초 지자체다. 기존에는 쌍방 합의가 있어야만 분쟁위원회가 소집됐는데 이를 바꿔 분쟁 당사자 중 한쪽의 요청만 있어도 위원회를 가동할 수 있게 했다. 양쪽이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위원회의 조정 기능이 작동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이 멈추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정비업계에선 표준계약서 개정과 공공 개입 강화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한다. 한 관계자는 “가이드라인 자체에 구속력은 없지만 서울시와 자치구는 공사 현장 점검 및 감독 권한을 갖고 있다”며 “공사비 증액을 이유로 공사를 함부로 중단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건축 시장 근본적 문제 봉착” = 부동산 당국과 정비업계에선 최근의 공사비 갈등과 관련, 재건축 시장이 근본적 문제에 봉착한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한다. 세계에서 유래없이 수시로, 그것도 막대한 규모로 재건축을 추진하고 그를 기반으로 주택 공급을 유지하는 한국 부동산 시장의 특성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시각이다.

건설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건설현장 공사비는 최근 2~3년 사이 30%가 올랐고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면 50~60%가 인상됐다. 서울 강북의 한 재건축 추진 단지는 현재가가 4억원인데 예상되는 추가 분담금이 5억원으로 나왔다. 공사비 인상이 일시적 갈등이 아니라 재건축 사업 자체를 포기하게 만드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관련 분야 전문가인 전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재건축이 공급 유지, 건설경기 활성화 등 서울 부동산 시장을 떠받치는 역할을 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특정 지역이나 단지에 공공이 지원을 해줄 수는 없는 일”이라며 “공사비 인상이 계속된다면 사업성 부족 때문에 시공사가 나서지 않고 조합도 수익성 악화로 사업을 중단할 수 있다. 그 경우 장기간 사업이 방치되고 지역이 슬럼화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건설사가 욕심만 부리는 것은 아니다. 턱없이 낮은 조달 단가, 오랫동안 제자리인 품셈(공사비 원가)을 현실화하지 않으면 부실공사를 사실상 방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만큼 이제라도 구조적 접근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일방적 공사 중단에 따른 시민 피해를 막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사업 지연은 조합과 시공사 모두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만큼 일방적 중단이 아닌 협의와 조정으로 갈등을 최소화하고 정상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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