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정의 인도 톺아보기

선거의 달인 모디의 2024 총선 무기는 ‘바라트’

2024-03-21 13:00:01 게재

선거의 해 2024년, 세계 최대 민주주의 선거가 인도에서 열린다. 오는 4월 19일부터 실시되는 인도 총선은 유권자만 해도 10억명에 달한다.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2024년 인도 선거의 키워드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한 인도의 또 다른 이름‘바라트(Bharat)’이다.

구자라트주에서 유세 중인 집권 여당 인도국민당(BJP) 아미트 샤(Amit Shah) 내무장관은 이번 선거는 BJP가 아니라 ‘바라트’, 즉 국가로서의 인도 그 자체에 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거마다 이기는 전략을 짜다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총리의 총선 무대 데뷔는 2014년이었다. 모디는 인도 서부 상업의 중심지인 구자라트에서 무려 13년 동안 연평균 10%가 넘는 고속성장을 기록한 주총리로 인지도를 높였다. 모디가 주총리로 있던 시절 구자라트는 인도에서 최초로 24시간 전력이 공급되는 주가 되었다. 글로벌 투자 이벤트인 ‘바이브런트 구자라트 서밋(Vibrant Gujarat Summit’도 시작하였는데, 격년마다 열리는 이 이벤트에 올해는 140여개국에서 6만명이 넘는 투자자가 모여들었다.

2014년 구자라트에서 뉴델리로 입성한 모디는 ‘경제성장’을 강조하며 젊은층의 표를 흡수했고, 인도 독립 후 76년 동안 55년을 집권한 네루 가문의 인도의회당(Congress)의 집권 가도에 제동을 걸었다. 독신에 신속한 행동파로 알려진 모디는 대를 이어오는 가족 정치와 부정부패로 얼룩진 인도의회당 및 라훌 간디와는 확실하게 이미지를 차별화했다. 그리고 인도 역사상 최초로 BJP가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획득해 정권 창출에 성공했다.

그런데 7%를 웃돌던 인도 경제성장률은 2019년 4~5월 총선을 앞두고 6%대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1억개의 일자리 창출 공약으로 기대를 모았던 글로벌 제조 강국 프로젝트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성적도 초라했다. 실업률도 독립 이후 최고치(6.1%)를 기록했다. 인도 선거를 좌우하는 청년층 농민이 경제성장에서 소외감을 느끼면서 2019년이 시작될 때만 해도 선거 전망은 암울했다. 그런데 2019년 2월 16일 인도 북부 지방에서 파키스탄 무장 조직의 자살폭탄 테러가 선거 판도를 역전시켰다.

테러 직후 모디는 인도 최대 경쟁국인 파키스탄이 테러의 배후에 있다고 지목하고, 유래없이 빠르고 강력한 반격을 단행했다. 인도인의 단결을 호소하면서 인도 국가안보를 지키는 ‘파수꾼 모디’를 선거 캠페인의 중앙에 올렸다. 2019년 선거는 곧 국가의 안보적 위기에서 인도를 지키는 선거가 되었다. BJP는 선거 공약을 결의문이라고 표현하면서 독립 75주년이 되는 2022년까지 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던 부강한 인도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 결과 2019년에는 하원의석 542석 중 303석으로 단독 정당으로는 최초로 과반이 넘는 의석을 확보했다.

2024년 선거, BJP의 키워드 ‘바라트’

바라트(Bharat)는 인도 헌법에 명시된 인도의 공식 명칭 중 하나다. 인도 헌법 1조는 ‘인도는 곧 바라트(India, that is Bharat)’라고 적시하고 있다.

바라트는 고대 인도 문헌에 나오는 전설적인 황제인 바라타 왕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인도 아대륙을 정복하고 통일해 다양성 속의 단결이라는 이상을 구현한 인물로 묘사된다. 인도에서 바라트를 강조하는 것은 풍부한 문화적 역사적 유산에 대한 자부심과 함게 오랜 역사와 정통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과거에도 BJP는 정권을 잡을 때마다 인도의 국명을 바라트로 바꾸고, 국가 차원에서 소 도축을 금지하는 등 헌법 개정을 도모해왔다. 그러다가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바라트를 이용한 통치이념화가 시작되었다. 2014년에 출범한 모디정부는 2015년 10월 31일 ‘하나의 인도, 강력한 인도(Ek Bharat, Shreshta Bharat)’ 캠페인을 출범시켰다. 다양성 속에서 단결하는 바라트 정신에 따라 시작한 이 캠페인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다양한 구성원들을 문화행사를 통해 통합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다음으로 등장한 것은 인도의 코로나19 감염자와 사망자수가 세계 최고를 기록했던 2020년이다. 전국 봉쇄조치에 따른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모디정부는 그해 5월 ‘자립인도(Atmanirbhar Bharat Self-reliant India)’ 정책을 발표했다. 자립인도 정책의 목표는 인도의 제조업을 촉진하고, 수입 의존도를 줄이며, 글로벌 공급망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도 GDP의 약 10%에 해당하는 20조루피(미화 약 2700억달러)의 특별 경제 패키지를 중소기업, 농민을 비롯한 개인에게 재정지원의 형태로 제공했다.

인도정부가 최근 실시하고 있는 바라트 캠페인 중에서 ‘발전하는 인도(Viksit Bharat)’도 눈여겨볼 만하다. 청소년 개발, 여성 역량 강화, 농민과 소외된 지역의 사회복지에 초점을 맞춘 ‘모디 키 보장(Modi Ki Guarantee)’이 핵심 의제다. 이들은 이번 총선에 참여하는 유권자들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할 전망이다.

‘바라트’로 승리하게 된다면

이같은 바라트의 개념을 가장 명확하게 설명하고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자이샨카르(S. Jaishankar) 인도 외교부장관이다. 자이샨카르 장관은 ‘바라트가 중요한 이유(Why Bharat Matters)라는 신간을 내고 인도 국영 NDTV와의 인터뷰에서 바라트를 사고방식이자 접근 방식, 특히 지난 수년 간 인도에서 진행된 모든 변화를 요약하는 사고방식으로 설명했다.

자이샨카르 장관에 따르면 정치적으로 바라트는 독립선언이다. 이는 인도가 세계에 참여할 때 반드시 다른 국가들이 정한 조건에 따를 필요가 없다는 선언이라는 것이다. 정치 경제를 넘어 세계의 문명국가 인도가 글로벌 의제를 선도적으로 주도하고 개발의 파트너, 평화유지자, 규칙 및 규범의 수호자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을 주문한다. 국가 정치를 넘어서 세계 속의 문명국가로서 인도가 지는 더 큰 책임과 기여를 시사한다고 주장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인도와 바라트에는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인도가 부유하고 영어를 사용하며 교육받은 계층과 이들이 살고 있는 대도시를 의미한다면, 바라트는 대개 교육과 소득수준이 낮고 생활환경이 열악한 곳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인도의 전통문화가 강하게 남아있는 소위 바라트 계층은 높은 교육열 속에서 점차 더 좋은 생활의 기회를 찾기 위해 대도시에 합류하는 ‘열망계층(aspirer)’을 형성한다. 모디정부의 바라트 정책은 주로 이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세계적인 여론조사 기관인 모닝 컨설트(Morning Consult)가 선정한 국정수행 평가조사에서 모디 총리는 70%가 넘는 긍정평가를 받고 있다. 다양한 바라트 캠페인을 통해 인도 인구 80%에 달하는 힌두교도, 특히 40%가 넘는 기타 후진 계층(OBC)의 표를 성공적으로 흡수한다면 모디정부는 지난 두 차례의 총선 때보다 더욱 강력한 정치적 지지기반을 토대로 2029년까지도 집권을 기대해볼 수 있는 상황이다.

애국심 자긍심 기반 특성 두드러질 듯

모디는 선거와 캠페인의 달인이다. 향후 인도에서 애국심과 자긍심에 기반한 정치적 특성이 한층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모디정부가 추진하는 ‘바라트’ 안에 숨어있는 극우 힌두주의적 요소는 국내적으로 종교, 문화의 경직성과 독재적인 정치 행태를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 외교적으로는 비서구 국가로서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하는 인도 외교의 특징이 더욱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열망계층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하는 모디정부의 부담은 한결 높아질 것이므로 공격적 통상외교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인도 총선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이후의 대응방안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최윤정 세종연구소 인도태평양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