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성’ 위협받는 공수처

2024-03-25 13:00:14 게재

“이종섭 조사 당분간 어렵다” 공수처 입장에

여권 “공수처가 정치질, 책임져야” 연일 압박

총선을 앞두고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혐의를 받는 이종섭 주호주대사 논란이 핵심 이슈로 부상하면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독립성 훼손 우려가 나온다. 이 대사의 귀국을 계기로 여권을 중심으로 공수처에 대한 압박이 커지고 있어서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4일 ‘정치질’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공수처를 비판했다. 그는 “(공수처가 이 대사에 대해) 출금을 계속해왔고, 이슈가 됐는데 총선 직전에서 반드시 소환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고 출국을 허락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냈다”며 “마치 처리가 임박했다는 듯한 메시지를 냈는데 수사기관이 그랬을 경우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건 정치질에 가까운 것”이라고도 했다.

이 대사 귀국 후 공수처가 당분간 이 대사에 대한 소환조사가 어렵다는 입장을 낸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앞서 공수처는 지난 22일 “해당 사건의 압수물 등에 대한 디지털포렌식 및 자료 분석 작업이 종료되지 않은 점, 참고인 등에 대한 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이 대사) 소환조사는 당분간 어렵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공수처는 이어 “수사팀은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대한 수사에 전력을 기울인 뒤 수사 진행 정도 등에 대한 검토 및 평가, 변호인과의 협의 절차를 거쳐 해당 사건관계인에게 소환조사 일시를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수처의 입장 표명 직후에도 한 위원장은 “(공수처의 입장 발표를) 잘못 본 줄 알았다”며 “이 정도면 총선 앞 정치공작에 가까운 것, 선거개입이고 정치질”이라고 했었다.

사실 공수처는 핵심 피의자인 이 대사의 출국이 논란이 되자 그에 대한 소환조사가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을 뿐 당장 그를 조사해야한다고 한 적이 없다. 공수처는 이 대사의 출국금지 해제가 논란이 되자 법무부에 출금 유지 의견을 전달했다는 사실을 밝혔고, 대통령실에서 이 대사가 법무부뿐 아니라 공수처의 허락을 받고 호주로 부임했다는 입장을 내놓자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차원에서 “출국을 허락한 적이 없다”고 했을 뿐이다.

실제 공수처의 수사 진행과정을 보면 아직 이 대사를 소환하기에는 이르다.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해 수사를 본격화한 것은 지난 1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박진희 전 국방부 군사보좌관 등을 압수수색하면서다. 공수처는 아직 압수물 분석조차 끝내지 못한 상태다. 통상 압수물 분석과 관련자 조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윗선을 불러 진술을 받아내는 식으로 수사가 이뤄지는 것을 고려하면 ‘윗선’인 이 대사에 대한 소환조사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럼에도 공수처가 당분간 이 대사를 소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여권이 공세에 나선 모습이다.

박정하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공보단장은 “많은 국민들은 이 사태를 무능한 공수처와 민주당의 여론몰이 합작, 짜고 치는 정치공세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고 했고, 정광재 선대위 대변인도 “공수처의 언론플레이에 더불어민주당이 선동과 공세로 앞장서며 서로 협잡한 명백한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대통령실도 공수처를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공수처가 이 대사의 ‘출국을 허락한 적이 없다’고 하자 대통령실은 “이 대사가 출국 전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았고 다음에 나오겠다 했다. 공수처에서 다음 수사 기일을 정해 알려주겠다고 했다”며 “사실상 출국을 양해한 것 아니냐”고 했다. 대통령실은 또 “이 대사에 대한 검증 과정에서 고발 내용을 검토한 결과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고 판단했고, 공수처도 고발 이후 6개월간 소환 요청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이 대사의 고발 내용에 대한 대통령실의 판단을 밝힌 것으로 일종의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어서다.

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3조에서는 ‘수사처는 그 권한에 속하는 직무를 독립하여 수행한다’고 명시하고 ‘대통령, 대통령비서실의 공무원은 수사처의 사무에 관하여 업무보고나 자료제출 요구, 지시, 의견제시, 협의, 그 밖에 직무수행에 관여하는 일체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수처에 대한 압박이 커지면서 법에서 정한 공수처의 독립성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수사하는 공수처는 무엇보다 독립성이 중요한 기관”이라며 “총선을 앞두고 이 대사에 대한 수사가 정치 쟁점화되면서 공수처의 독립성이 흔들리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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