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넥서스 '탄소순환'

길고 빈번해지는 이상가뭄, 에너지 식량 등에도 영향

2024-03-25 13:00:30 게재

호수 바닥 퇴적물 노출 시 온실가스 다량 배출 ‘악순환’

통합적인 관점으로 수자원 등 관리 체계 전환이 필요해

기후위기가 심화할수록 ‘넥서스(nexus·연결)’ 개념이 강화된다. 온난화로 가뭄이 심해지면 당장 물 부족 문제가 떠오르지만 에너지, 식량, 나아가 토지이용 문제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게다가 바닥이 드러난 호수 등에서는 온실가스들이 뿜어져 나와 온난화를 더 가속화한다. 별개처럼 보이는 사항들이 하나로 연계돼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는 곧 온실가스 배출량 억제를 위해서는 인간의 인위적인 활동 제어뿐만 아니라 자연 본연의 기능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된다. 하나로 연결된 탄소순환의 고리를 제대로 파악해 지구온난화의 속도를 늦추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난해 이베리아 반도와 중앙 및 남서아시아 일부에서는 장기가뭄으로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었다. 중남미에서는 장기가뭄으로 인한 피해가 더 심했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북부와 우루과이의 경우 지난해 1~8월 강우량이 평균보다 20~50% 낮아 농작물 손실과 저수량 부족 현상이 심각했다.

이러한 추세는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25일 기상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100일 이상의 기상가뭄이 나타나는 횟수가 증가 추세다. 1974년 이후 10년 단위로 100일 이상 기상가뭄이 나타난 햇수를 비교했을 때 최근 10년(5회)이 다른 기간(0~2회)에 비해 많고 기상가뭄 일수도 증가했다.

1974년은 기상관측망을 전국적으로 대폭 확충한 시기인 1973년 이후 기상가뭄 일수를 분석하기 시작한 해다. 기상가뭄은 일정 기간 평균 이하의 강수량이 지속되는 현상이다.

◆가뭄 장기화는 에너지 안보에도 영향 = 문제는 가뭄이 장기화되고 발생 횟수가 늘수록 에너지 안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25일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주암댐의 경우 가뭄 기간 발전량이 평년의 45% 수준에 불과했다. 2022년 6월 27일 가뭄 관심단계에 들어간 날로부터 1년 동안 발전량은 3만969MWh로 평년 6만9359MWh 보다 큰 폭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전체 발전량은 4만8767MWh로 평년의 70% 수준에 그쳤다. 평년은 지난 30년간의 기후의 평균적 상태다.

보령댐 역시 비슷했다.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2015년 가뭄으로 평년 대비 발전량이 56%에 불과했다. 가뭄으로 댐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터빈을 돌리는 수압이 덩달아 하강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국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다. 2012년 극심한 가뭄으로 미국의 1/3 이상에 영향을 받으면서 일부 발전소와 에너지 생산 활동에 제약이 걸렸다.

기후위기가 미국 전역 강수량과 기온 패턴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판단해 미국 에너지부에서는 물 자원의 제한이나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 개발을 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물 부족이 에너지 공급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게다가 가뭄으로 인한 환경 변화는 대기 중 온실가스 양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여름의 긴 가뭄으로 넓은 지역에 걸쳐 소양호의 바닥 퇴적물이 노출되었을 때 이산화탄소(CO₂) 메탄(CH₄) 아산화질소(N₂O)가 배출되는 현상이 확인됐다.

수십년 동안 바닥 퇴적층에 축적된 유기물이 가뭄 기간 동안에 분해가 촉진돼 일반적인 호소(늪과 호수) 환경에서 관찰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양이 뿜어져 나왔다.

호소의 퇴적물은 유기물 분해가 지연돼 장기간 저장되는 탄소흡수원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산소가 결핍된 혐기성 분해 과정에서 다량의 메탄이 생성될 수 있다. 이는 곧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는 한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걸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지난 2월 2일 가뭄 비상 상태인 스페인 카탈로니아 지로나 지방의 한 저수지. 물이 말라 바닥이 드러난 상태로 카약 한 대가 남겨져있다. 사진 AFP·연합뉴스
◆OECD회원국 중 가용 수자원량 4번째로 적어 = 에너지를 만들 때도 물은 사용되지만 물을 쓸 때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만큼 서로 상관관계가 높다는 뜻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물 사용량은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다. ‘국가물관리기본계획(2021~2030년) 수립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총 가용 수자원량은 2017년 기준 1367㎥/인으로 세계 평균 1만8651㎥/인의 1/13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평균 1인당 가용 수자원량은 2만8344㎥/인으로 우리나라는 35개국 중 4번째로 가용 수자원량이 적다.

더 큰 문제는 지구온난화 등 기상이변 발생으로 인한 전지구적 가뭄 빈도 및 규모가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역시 미래 가뭄의 전반적인 발생 빈도나 규모가 심화할 전망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많은 지역에서 강수량 연범위가 증가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기온 상승은 여름철뿐만 아니라 전계절에 걸쳐 나타난다. 이는 기온 상승에 따른 대기 수분 요구량의 증가를 일으켜 여름철 이외 계절에도 가뭄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실제로 기록적인 폭염이 발생한 2018년 7~8월에는 전국적으로 한 달 이상 고온현상이 발생했고 이에 따른 지면 증발산 증가로 가뭄이 발생했다.

◆특정 자원의 수요·공급 변화가 다른 곳에도 영향 = 기후변화로 인한 물과 에너지의 변화는 식량 생산에도 영향을 미친다. 토니 앨런 영국 런던대학교 교수는 1998년 물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가상수’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가상수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떠한 제품을 생산하는 전 과정에서 사용되는 물이다.

가상수는 농산물뿐만 아니라 △쇠고기 닭고기 등 축산물 △공산품 등을 생산할 때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쌀 1kg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물 약 5100ℓ가 필요하다. 대두 1kg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물 약 3400ℓ가 쓰인다. 돼지고기 1kg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물의 양은 1만1000ℓ다. 쇠고기 1kg의 경우 물 약 1만5000ℓ가 필요하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이른바 ‘물·에너지·식량·토지(WEFL)’ 넥서스(nexus)가 관심사가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 하나만 보고 정책을 세울 게 아니라 에너지 식량은 물론 토지 이용 부분까지 연계해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넥서스는 별개처럼 보이는 것들이 하나로 연계된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할 때 사용한다.

WEFL넥서스에 대한 연구는 ‘본 2011 컨퍼런스’에서 출발했다. 당시 회의 주제는 ‘물·에너지·식량(WEF) 안보 넥서스’였다. 물 에너지 식량 등 각 분야의 연계성에 주목하면 자원생산성을 높여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물 에너지 식량 등 각각을 생산해 공급하기까지 소모되는 다른 자원 현황까지 파악할 수 있다면 불필요한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본 회의 이후 세계식량기구(FAO)와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등 국제기구들과 각국 정부들은 WEF넥서스의 중요성을 앞다투어 강조했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는 ‘글로벌 트렌드 2030’ 보고서를 내면서 4대 메가트렌드에 WEF넥서스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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