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가자 휴전’요구 결의 첫 채택

2024-03-26 13:00:03 게재

14개국 찬성, 미국만 기권 … 이스라엘 강력 반발하며 미국과 갈등 표출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25일(현지시간) 앤서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기 위해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 도착하기 직전 한 시위대가 경찰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백악관은 이날 이스라엘 대표단의 미국 방문 계획이 취소된 데 대해 “당황스럽다. 실망했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신냉전 구도 속에서 존재감을 잃어가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이스라엘-하마스간 즉각 휴전과 인질석방을 요구하는 결의를 개전 후 처음으로 채택했다.

안보리는 25일(현지시간) 공식회의를 열어 결의안에 대한 표결을 진행한 결과 이사국 15개국 중 14개국의 찬성으로 채택했다. 미국은 거부권 행사 대신 기권을 택했다.

이번 결의안은 한국을 포함한 선출직 비상임 이사국 10개국을 의미하는 ‘E10’(Elected 10)이 제안했다. 결의안에는 이슬람 금식성월인 라마단 기간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는 내용과 즉각적이고 조건 없는 인질 석방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의료 및 기타 인도주의적 필요에 대처하기 위해 인도주의적 접근의 보장과 구금된 모든 사람과 관련해 분쟁 당사자가 국제법상 의무를 준수하도록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안보리가 가자지구 사태와 관련해 휴전을 요구하는 결의를 채택한 것은 개전 5개월여 만의 일로 이번이 처음이다. 안보리 결의는 국제법상 구속력을 지닌다.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12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전역에 대한 대대적 보복 공격을 이어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 3만1000여명이 넘게 사망하는 등 집단학살에 가까운 재앙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안보리는 가자지구 휴전 촉구 또는 휴전 요구 결의안을 추진했지만 이스라엘의 오랜 우방인 미국의 세 차례 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무산됐다.

그러다가 최근 미국내 기류가 바뀌면서 결의안 채택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22일엔 미국이 주도해 휴전 관련 내용이 담긴 결의안을 제출했지만 이번에는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됐다. 미국이 제출한 결의안은 이스라엘과 하마스에 ‘즉각적이고 지속가능한 휴전이 필요불가결함을 결정한다’라는 내용이 담겼는데 이를 두고 중국과 러시아가 의미가 불분명하고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는 내용이 아니라며 거부 논리를 폈기 때문이다. 다시 이번에 비상임이사국이 뜻을 모아 결의안을 제출했고 14개국 찬성과 미국의 기권으로 통과됐다.

결의안 채택 후 반응은 극과 극이다. 국제사회는 모두 환영의 뜻을 밝혔다.

특히 당사자인 하마스 역시 결의안 채택 직후 온라인 성명을 통해 “안보리가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한 데 감사한다”며 이스라엘 인질과 팔레스타인 수감자를 즉각 교환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또 이스라엘 군대의 가자지구 철수로 이어질 영구 휴전과 피란민의 거주지 복귀도 촉구했다.

하마스는 “무너진 건물 속에 몇 달째 방치된 순교자들을 매장하고 인도적 요구에 접근하기 위해 교전 중단이 필요하다”며 “우리 민족을 겨냥한 집단학살과 인종청소 목적의 전쟁을 중단하도록 안보리가 점령 세력을 압박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반해 이스라엘은 강력 반발했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안보리 결의 직후 성명을 통해 “인질 석방 조건이 없는 휴전을 지지한 결의안에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한 것은 전쟁 내내 유지해 온 (미국의) 입장과 배치된다”면서 “미국의 기권은 국제사회의 압박을 통해 인질을 풀어주지 않고도 휴전이 허용된다는 희망을 하마스에 심어줌으로써 (이스라엘의) 전쟁과 인질 석방 노력에 해를 끼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에 대표단을 보내기로 한 결정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표단은 네타냐후 총리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전화 통화에서 합의한 것으로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 대한 지상전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전쟁 내내 이어져 온 미국과 이스라엘의 신뢰관계에 큰 균열이 발생한 셈이다.

미국 백악관은 이스라엘이 휴전 촉구 결의 채택에 반발해 정부대표단 파견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에 대해 “매우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존 커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온라인 브리핑에서 “(대표단 방문은) 라파 지상(작전)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실행가능한 대안을 놓고 충분한 대화를 위한 것”이라면서 “대표단이 워싱턴DC에 오지 않는 것은 이상적인 것이 아니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다만 안보리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우리의 정책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인질 협상의 일환으로 휴전을 일관되게 지지해왔으며 결의안은 현지 진행 중인 협상을 인정하고 있다”라면서도 “그러나 하마스 규탄 등 우리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표현이 최종 결의안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결의안을 지지할 수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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