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 사라진다

2024-03-29 13:00:00 게재

러시아 거부권에 임기 연장안 15년 만에 채택 무산 … 감시기능 약화 우려

북한은 지난 19일 오전과 오후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신형 중장거리 극초음속 미사일용 다단계 고체연료엔진 지상분출 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20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밝혔다. 이날 지상 시험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참석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 제재가 잘 지켜지는 지를 감시해 오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전문가 패널 활동이 내달 종료된다. 우크라이나전쟁과 가자전쟁 등을 치르면서 안보리서 사사건건 부딪쳐 온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투영된 결과라는 해석이다.

유엔 제재 자체가 효력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인 이행여부를 꼼꼼히 들여다보던 전문가패널이 사라지면 북한 핵과 탄도미사일에 대한 감시기능 역시 약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유엔 안보리는 28일(현지시간) 회의를 열고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 임기 연장 결의안을 표결했지만 상임이사국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됐다.

표결에서 안보리 이사국 15개국 중 13개국은 찬성했고, 중국은 기권했다.

결의안이 통과하려면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고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5개 상임이사국 중 어느 한 곳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대응한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 1874호로 창설된 전문가 패널은 됐으며 현재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과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 총 8개국에서 각각 파견한 전문가 8명으로 구성돼 있다.

전문가 패널은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위반이 의심되는 각종 상황을 유엔 회원국 등을 상대로 독립적으로 조사한 뒤 연 2회 보고서로 펴낸다. 이를 바탕으로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나 유엔 회원국에 제재 이행 관련 권고를 내놓는 역할도 했다.

실제로 그동안 패널들은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정제유 밀수부터 사이버 공격을 통한 금전 탈취, 무기 제조를 위한 장비·부품 반입, 사치품 금수 위반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한 제재 위반 의심 행위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북한 제재 선박의 이동 경로를 쫓아 불법 환적 정황을 포착하거나 해외에서 제재 위반 행위를 벌이는 북한인 행적을 추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전쟁 그리고 미중 전략경쟁으로 국제질서가 진영화되고, 안보리 내에서 서방과 중국·러시아의 분열이 심화하면서 패널 운영도 어려움을 맞았다.

특히 가자지구 휴전촉구 결의안에 대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이 번번이 거부권을 행사에 안보리가 진영화되고, 무력화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관측된다.

안보리는 매년 3월께 결의안 채택 방식으로 전문가 패널의 임기를 1년씩 연장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이날 안보리 회의에 앞서 한일 등 총 10개국과 연 공동 기자회견에서 “전문가 패널은 안보리 결의에 대한 유엔 회원국의 의무를 완전히 이행하는 데 크게 기여해왔다”며 “안보리는 14년간 매년 만장일치로 패널 임기를 연장해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결의안 채택이 불발되면서 전문가 패널 임기는 오는 4월 30일로 종료된다. 러시아는 대북제재에 일몰 조항을 신설하자는 자국 요구가 이번 결의안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제재를 변경할 수 있는 기본적인 메커니즘이 없으며 특정 개인을 제재 대상에서 제외하는 공정한 절차 조항도 없다”라며 “개별국가에 대한 모든 남은 제한 조치는 궁극적으로 현실적인 목표를 갖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검토를 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이번 결의안에 전체 대북제재 결의 내용에까지 적용되는 일몰 조항(특정 시한이 지나면 효력이 자동으로 사라지게 하는 조항)을 넣자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몰 조항은 패널 임기에만 적용됐는데, 이를 대북 제재 자체에까지 적용하자는 주장이다.

러시아 제안대로라면 1년 뒤에 새로운 결의를 채택해 기존의 안보리 대북제재를 갱신해주지 않으면 전체 안보리 대북제재가 무효로 되는 것이다. 결국 대북 제재를 지키기 위해 전문가 패널을 포기한 것으로 보여진다.

전문가 패널이 사라지면 안보리는 대북제재 위반 사항을 유엔 회원국에게 신뢰성 있게 알릴 중요한 수단을 잃게 된다.

황준국 주유엔대사는 이날 안건이 부결된 후 “마치 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에서 CCTV를 파손한 것과 비슷하다”면서 “현시점에서 러시아는 핵무기 비확산 체제 수호나 안보리의 온전한 기능 유지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탄약 및 탄도미사일 공급을 위해 북한을 두둔하는 데 더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비판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오늘 (러시아의) 무모한 행동은 미국과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여러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응하기 위해 부과한 매우 중요한 제재를 더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한국 외교부도 대변인 성명을 통해 “유엔의 대북제재 이행 모니터링 기능이 더욱 강화되어야 할 시점에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안보리 이사국의 총의에 역행하면서 스스로 옹호해 온 유엔의 제재 레짐(체제)과 안보리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크게 훼손시키는 무책임한 행동을 택했다”고 비판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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