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한 달 넘게 최종후보자 지명 미뤄

2024-04-01 13:00:02 게재

이종섭 사퇴 등 공수처 압박 … 수사차질 우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장 공백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가 2명의 후보를 추천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최종 후보자 지명을 늦추고 있어서다.

공수처장이 공석인 동안 이종섭 전 호주대사 출국과 의정 갈등 관련 고발사건이 잇따르면서 공수처의 부담이 커지는 모습이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월 20일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과 같은 달 28일 여운국 공수처 차장이 각각 임기만료로 물러난 이후 공수처장과 차장 공석이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앞서 공수처장 후보추천위는 8차례 회의 끝에 지난 2월 29일 판사 출신인 오동운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 변호사를 공수처장 후보자로 선정했지만 대통령실은 검증 등을 이유로 최종 후보자 지명을 하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2년 12월 추천위의 추천이 있은 지 이틀 만에 김 처장을 지명한 것과 대비된다.

공수처장 인선이 늦어지는 사이 김선규 수사1부장마저 자신의 검사시절 수사기록 유출 의혹 사건과 관련해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공수처는 한동안 ‘대행의 대행의 대행’이라는 기형적인 체제로 운영되기도 했다. 현재는 김 수사1부장이 다시 복귀해 처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공수처장은 추천위에서 2명의 후보자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이중 1명을 지명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하게 된다. 오는 10일 총선을 앞두고 있는 점까지 고려하면 조만간 윤 대통령이 최종 후보자를 지명해도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하기까지는 한 달 이상 걸릴 것으로 관측된다. 석 달 넘게 공수처장 공석이 불가피한 셈이다.

수장 공백이 장기화되는 동안 공수처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들이 쌓이고 있다.

당장 이종섭 전 호주대사가 지난달 29일 대사직에서 물러나면서 공수처의 부담이 커졌다. 이 전 대사는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로 지난해 7월 국방부 장관 당시 경찰에 이첩된 해병대수사단의 수사기록을 회수하도록 지시하는 등 직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는다.

공수처 수사는 아직 압수물 분석도 마무리하지 못한 단계로 ‘윗선’인 이 전 대사를 조사할 시점이 아니지만 이 전 대사는 자신을 신속히 조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전 대사를 대리하는 김재훈 변호사는 그의 사의 표명 소식을 알리면서 “그동안 공수처에 빨리 조사해 달라고 계속 요구해왔으나, 공수처는 아직도 수사 기일을 잡지 않고 있다”고 공수처를 압박했다.

이 전 대사의 출국과 관련한 고발 사건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4일 호주대사로 임명된 이 전 대사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가 해제돼 그가 호주로 출국하자 조국혁신당과 녹색정의당,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 등은 윤 대통령과 박성재 법무부 장관, 조태열 외교부 장관 등을 직권남용과 범인도피 등 혐의로 지난달 11일 공수처에 고발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이 전 대사 출국과 관련해 같은달 22일 허위 공문서 작성·행사 혐의로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관계자에 대한 고발장을 공수처에 제출했다. 이 전 대사에 대한 고발 내용을 검토한 결과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고 한 대통령실의 언론공지가 허위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의정 갈등과 관련한 고발장도 공수처에 접수됐다. 미래를 생각하는 의사모임과 의대 증원에 반발해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들의 법률지원단 ‘아미쿠스 메디쿠스’는 지난달 11일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을 공수처에 고발한 바 있다.

이처럼 공수처가 수사해야 할 사건들이 쌓여가고 있지만 수장 공백이 길어지면서 수사 차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수장이 없더라도 일상적인 수사는 진행할 수 있겠지만 사건처리 방향 등 중요한 결정은 내리기 어렵다”며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들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공수처 관계자는 “곧 새 공수처장이 임명되지 않겠느냐”며 "공수처는 큰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구본홍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