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환의 동남아산책

동남아의 ‘미완성 국가’, 그 성공과 실패

2024-04-04 13:00:02 게재

역사가 짧은 나라들이 그렇듯이 애초 동남아의 여러 나라들도 ‘제대로 된 국가’를 확립하는 일이 순탄하지 않았다. 여기서 ‘제대로 된 국가’를 사회학의 거장 막스 베버를 따라 영토주권, 실효적인 군사력, 합리적 관료제 등 세 요소를 갖춘 근대국가로 정의한다면 동남아에는 아직도 국가건설 과제를 해결하지 못해 진통을 겪고 있는 나라들이 여럿 있다.

최근 내전 상태에 있는 미얀마는 그야말로 국가 분열을 넘어 국가 해체를 경험하고 있고, 필리핀은 오랫동안 남부 민다나오 지역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의 분리주의 운동에 시달리며 자기 영토에 대해 군사적으로 실효적인 지배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동남아 국가들도 내란과 군사적 소요사태로부터 벗어나 영토주권을 확립하기까지는 수십년의 기간이 걸렸다. 21세기 초반 인도네시아가 경험했듯 민주화 과정에서 그동안 군사독재에 눌려 있던 소수민족들의 불만이 독립 요구로 분출되기도 했다. 국가 대다수가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 사회로 구성되어 있고, 절반 이상이 권위주의 체제 하에 있는 동남아에는 국가 분열의 불씨가 항상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다.

합리적 관료제 확립 안된 동남아 국가들

동남아의 근대국가 건설은 또 하나의 의미에서 완성되지 않았다. 바로 베버가 합리적 관료제의 확립이라고 부른 측면이다. 사실 관료적 합리성이라는 요건은 국가의 구성적 요건이라기보다는 국가의 근대성 즉 질적 수준과 관련된 문제일 것이다. 현대 국제사회에서 국가 승인은 그 나라가 얼마나 합리적 관료제를 가지고 있으며 국가경영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국제정치적 군사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베버가 단순히 국가라고 하지 않고 ‘근대적’ 국가라고 부른 까닭일 것이다.

따라서 당대에 존재하는 실제 국가 중에서도 베버적 의미에서 근대국가의 마지막 요건을 갖추지 못한 나라가 많다. 우선 동남아의 국가 행정 관료제의 질적 수준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분석들을 살펴본다.

우선 동남아 국가는 ‘연성국가(soft state)’의 대표적 사례로 꼽혔다. 여기서 연성이라는 단어는 ‘부드럽다’라는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단단하지 못하다’ ‘물러 터졌다’라는 부정적 뜻을 담고 있다. 이 개념을 만든 스웨덴 경제학자 미르달은 식민지국가에 대해 불복종, 사보타지하던 저항의식이 독립 이후에도 관료들의 버릇과 타성으로 자리잡아 부패 무능력 비효율성 규율부재를 낳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관료들의 규율부재는 육체적이고 집중적인 노동을 싫어하는 동남아의 문화와 친화적이기도 하다. 실제로 연성국가증후군은 비단 국가 안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는 보편적 현상이라고 미르달은 우려했다.

평생 일본을 연구하다 1940년대 말 태국을 방문한 미국인류학자 엠브레는 일본인들과 너무나 대조적인 타이인들의 사회적 규범과 규율 ‘부재’에 놀라 태국사회를 “느슨하게 짜여진 사회”라고 속단했다. 그 기원이나 요인이 무엇이든 독립 초기 동남아의 국가는 규율과 원칙 없이 느슨하게 움직이는 엉성한 조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느슨한 국가지만 그 구성원들이 동남아의 초기 정치무대를 장악했다. 민주화의 요구와 전통이 생겨나기 이전 동남아의 권력은 관료들에게 집중되어 있어 ‘관료정치(bureaucratic polity)’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여기서 관료는 넓게 정의되어 국가를 구성하는 구성원, 특히 고급 관료와 고위급 장성들이 판을 치는 엘리트정치였다.

정치세력에 비해 국가가 약했던 필리핀으로 눈을 돌리면 태국의 관료나 군인들과 달리, 토지를 소유한 지역유지가문 출신의 정치인들이 등장해 지방과 중앙의회를 장악한 엘리트를 구성했다. 엘리트들이 정치를 독점했다면 왜 엘리트독재가 아니고 엘리트정치라고 불렀을까? 그들 사이에도 국가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태국의 경우 빈번했던 쿠데타를 통해 집권 군부파벌이 바뀌었다면 필리핀은 선거를 통해 집권 지역가문의 변화가 반복되었다.

그러나 정치에서 소외당한 일반 대중들이나 노동자 농민의 눈으로 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민주화의 파도가 밀어닥친 20세기 말 이후에는 동남아의 오랜 관료정치, 엘리트정치의 전통은 ‘과두제’나 ‘정치왕가’의 부활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낳고 있다.

독립 후 거대국가와 경제개입주의로 실패

동남아 국가는 느슨하고 엉성해도 그 구성원들을 철저히 챙기는 ‘국가 자신을 위한 국가(state-qua-state)’의 속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국가는 헤겔이 말하는 절대정신의 대변자도 아니요, 공공선의 실현자도 아니며, 오로지 국가권력의 유지와 구성원의 개별적 이익을 챙겨주기 위해 존재한다.

민족을 실체가 없는 ‘상상의 공동체’라고 불러 센세이션을 일으킨 정치학자 베네딕트 엔더슨은 국가가 국가자신만을 위하게 된 것은 국가가 회사와 다를 바 없었던 식민시대에 그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식민지 국가는 피식민지민의 안위와 복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식민지 정부의 관료들에게 일자리와 보수를 주기 위해 조직되고 활동한 회사와 같은 조직이었다.

실제로 17~18세기 200년 가까이 인도네시아 자와섬과 연안도시들을 통치한 최초의 네덜란드 식민지국가는 동인도회사(VOC)란 이름을 가진 세계최초의 주식회사였다. 엔더슨은 한걸음 더 나아가 1966년 수하르토가 군사쿠데타를 통해 만들어 낸 ‘신질서체제’를 식민초기 자기 직원들만 챙기던 동인도회사, 즉 ‘과거 국가(Old State)’가 부활한 것으로 보았다.

독립 초기 동남아의 신생 국가들은 민족주의 경제 이념과 정책을 통해 ‘거대국가(big state)’의 속성을 드러냈다. 동남아 국가들이 독립 이후 정치적 독립에 상응하는 경제적 독립을 성취하겠다는 의욕과 야심에서 외국자본을 축출하고, 화인의 경제활동을 제어하며, 다양한 정책적 개입을 통해 자력갱생 민족경제를 건설하고자 했다.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계획경제체제를 도입했던 베트남과 라오스는 물론이고 동남아에서 가장 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을 펼치게 되는 태국까지 외국, 외래자본에 대한 통제를 시도했으며 그 핵심에는 강력한 국가 개입이 있었다. 거대국가와 경제개입주의 정책이 단순한 실패로 끝난 게 아니라 국가경제의 위기와 파탄으로 이어졌다. 다행히도 처참한 결과는 값진 교훈이 되어 1980년대 이후 경제자유화와 지역통합을 통한 경제적 번영으로 이어졌다.

정치적 실패와 경제적 성공의 교차

결론적으로 동남아의 근대국가 건설은 아직도 미완성이다. 미완성 상태의 국가는 두가지 모순된 방향으로 동남아를 이끈다. 정치적으로는 선거민주주의를 달성한, 그렇지만 충분한 민주적 공고화를 달성하지 못한 3~4개 국가를 제외하고는 모두 권위주의 체제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영토 내 “합법적 폭력 독점”을 달성하지 못한 나라도 있다.

선거민주주의를 달성했다고 하는 몇몇 나라도 정치왕가 같은 퇴행적 현상의 출현을 막지 못하고 있다. 동남아의 높은 부패 수준 또한 개선되지 않고 있다. 동남아의 권위주의는 민주주의로 가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유형이 아니라 반영구적이고 독자적인 체제유형으로 굳어질까 두렵다.

반면 경제적으로 동남아는 유례가 없는 성공을 경험하고 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경제민족주의의 실험과 실패가 끝난 1980년대부터 동남아 경제는 개혁과 개방, 자유화와 지역협력의 시대를 열었으며 1997년 동아시아위기 이후 이 경향이 더욱 강화되면서 지역협력이 역외로 확산됨과 동시에 역내에서는 지역통합으로 승화되고 있다.

동남아는 혼선을 빚고 있는 정치적 변화와는 달리 경제적 영역에서는 통일된 경제정책과 지역적 경제통합으로 타 지역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제적 성공을 경험하고 있다. 미완성의 국가는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낳았다.

신윤환 서강대 명예교수 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