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총선 금융공약, 앞다퉈 서민금융 지원·투자자 보호 약속

2024-04-04 13:00:09 게재

소상공인 등 금리부담 완화·탕감 주장

경실련 “도덕적 해이 우려·비현실적”

금융권 출신 인사에 벽높은 현실 정치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여야 정당이 일제히 금융관련 정책과 공약을 내놨다. 사회적 약자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각종 금융부채의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공약을 맨 앞에 내세웠다. 투자위험성이 높은 상품에 투자한 사람의 피해 구조에도 앞장서겠다고 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금융시장의 작동원리를 벗어나거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우려도 제기했다.

내일신문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주요 정당이 내놓은 금융관련 공약집을 살펴본 결과, 빠짐없이 서민금융 지원을 약속했다. 민주당은 주요공약의 맨앞에 ‘가계의 대출원리금 부담을 대폭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가산금리 산정시 금융소비자에게 부당 전가되는 항목 제외 △가계대출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추진 △금리인하요구권 주기적 고지 의무화 등을 제시했다.

국민의힘도 서민과 소상공인을 위해 중·저신용자 대출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인터넷은행의 중·저신용자 신용대출 목표 개선 △중·저신용자 신용대출 확대위한 대안적 신용평가 활성화 △은행권의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 확대 등을 내놨다. 이밖에도 올해 들어 가계대출 채무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대환대출서비스’ 시스템 확대 개편과 서민금융종합플랫폼 구축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금융투자자에 대한 보호도 강화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내년부터 시행이 예정된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하겠다고 한 공약이 눈에 띈다. 국민의힘은 “문재인정부에서 도입된 금투세가 외국인과 기관에 비해 높은 세부담과 이중과세 논란 등으로 ‘소액주주 증세안’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면서 폐지 필요성을 강조했다. 금투세 폐지와 관련 민주당은 “세수 결손이 심한 상황에서 근로자 소득으로 세수 부족을 메꾸려는 속셈”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두 정당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활성화에는 같은 입장이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다소 차이가 있다. 민주당은 ISA에서 발생하는 이자 및 배당소득세 상한을 없애겠다고 했고, 국민의힘은 관련 소득세의 상한을 상향하겠다고 했다. 가상자산과 관련해 국민의힘은 가상자산법을 제정해 투자자를 보호하고 코인 발행도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가장자산과 연계한 상장지수펀드(ETF)의 발행과 유통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중소정당들도 금융관련 공약을 내놨다. 녹색정의당은 저소득층과 청년의 부채를 탕감하겠다고 했고, 새로운미래는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IPO제도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개혁신당은 기업이 경영권을 인수할 때 100% 공개매수를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여야 정당의 금융관련 공약에 대해 시민단체 경실련은 4일 오전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금융관련 공약을 평가하는 데 참여한 박래수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팀은 “코로나19 이후 서민의 가계부채를 탕감하고 투자자 보호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공약이 주류를 이뤘다”며 “이러한 공약은 전반적으로 반시장적이거나 다소 모럴헤저드(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우려가 있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특히 민주당 공약과 관련 “반시장적 조치를 포함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며 “금융시장의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는 자생적인 시장정책이 긴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공약에 대해서는 “대부분 현 정부정책을 그대로 베낀 것에 불과해 개혁성 측면에서 새로운 것이 없다”면서 “금투세 폐지와 재형저축제 도입은 가치성 측면에서 불필요하거나 실현가능성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번 총선에 금융권 출신 인사가 일부 출마했지만 여전히 정치권 진입의 장벽이 높다는 평가다. 민주당에서는 금융권 출신 노조위원장 출신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 21대 총선에 출마했다 낙선하고 이번에 경기 평택시병에서 다시 도전하는 김현정 후보는 비씨카드와 사무금융노조 위원장을 지냈다.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로 출마한 박홍배 후보는 KB국민은행과 금융노조 위원장 출신이다.

박홍배 후보는 4일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윤석열정부의 잘못된 금융정책에 제동을 걸겠다”면서 “점포폐쇄방지법을 통해 더 이상 우리동네 은행지점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민주연합 박홍배 후보

국민의힘에서도 금융권 출신 인사가 출마했다. 21대 비례대표 출신으로 이번에 대전 동구에 출마한 윤창현 전 금융연구원장이 대표적이다.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넘어온 김영주 의원(서울 영등포갑)도 옛 서울은행에서 은행원으로 입사해 금융노조 부위원장을 거쳤다. 경기 고양시정에 출마한 김용태 후보는 금융인 출신은 아니지만 국회에서 금융권을 소관하는 정무위원장을 했고, 현재 한국보험대리점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국민의힘 윤창현 후보

금융권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장벽이 금융인에 지나치게 높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금융권 인사는 “여야 정당 후보의 면면을 보면 법조인과 소위 운동권 출신이 지나치게 많다”며 “홍콩ELS사태와 같은 문제가 터지면 금융권에 대한 비판만 하면서 정작 전문가의 영입에는 소홀한 것 같다”고 했다.

업무의 특성상 다른 직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금융인 출신이 지금의 정치권 풍토에서는 활동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옛 미래에셋대우 사장 출신으로 21대 국회에 입성했던 홍성국 의원(세종시 갑)이 대표적이다.

홍 의원은 이번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지난 4년간 국회의원으로서 나름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사회를 바꿔보려했지만 후진적인 정치 구조가 가지는 한계로 인해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카카오뱅크 대표 출신으로 21대 국회에 들어갔던 이용우 의원(경기 고양시정)도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탈락해 총선에 나서지 못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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